나의 신혼집은 5층짜리 빌라였다.
신혼생활을 하고 큰 아이가 아직 아기일 때만 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가 생기고 점점 넘쳐나는 아이 용품들로 집이 좁게 느껴졌고 집 앞으로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 앞을 지날 때면 부러움에 눈길이 가기도 하였다.
큰 아이가 세 살에 집 근처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는 큰 아이 친구 엄마들과 깊게 친해지지 못하여 왕래를 잘 하지 않았고 문화센터에서 친해진 엄마들하고만 연락하고 지낼 뿐이었다. 그때 친해진 엄마들도 모두 빌라에 살고 있었기에 크게 비교가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둘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둘째가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가질 때는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과 동네 카페에 가 수다를 떨며 금방 친해지게 되었는데 나와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고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언니들부터 터울이 제법 나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듯한 언니들까지 짧은 시간 만에 깊어졌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침이면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이 하원하면 우르르 아파트 안 놀이터로 몰려가 노는 것이 매일 루틴이었다.
그때 친해진 엄마들은 우리 집 앞 대단지 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민들이었다. 자연스레 나는 그 안에 있는 놀이터로 드나들었고 그 언니들이 없을 때도 아이들을 데리고 놀다 오고는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리고 있는데 한 엄마가 어떤 아이를 보고는 "쟤는 어디서 온 앤데 여기서 놀고 있지"라는 말을 하는 게 들렸다. 우리 역시 입주민이 아니었기에 괜스레 그 말에 찔려 잠시 후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때가 시작이었는지 같이 어울리던 언니들 입에서도 요새 그런 말들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입주민이 아닌데 내가 여기서 놀아도 되는지 걱정하자 "넌 우리랑 있으니깐 괜찮아"라며 언니들은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눈치 보였고 친구들 따라 들어가 본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의 놀이방에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우린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할 때면 마음이 미어지기도 했다.
왜 못 들어 가냐고 묻는 아이의 말에 '우리가 여기 살지 않아서'라고 말하려다 목이 메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음에는 반드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쩔 수 없이 천안으로 내려가며 얼떨결에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꿈에 그리던 아파트 생활에 아이들과 놀이터에 놀러 나올 때면 예전 생각이 나 괜히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였다.
커뮤니티센터에 놀이방은 유아들이 가기에 적당한 곳이라 아이들은 이용하지 않았지만 그 앞을 지날 때면 들어가고 싶어서 칭얼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친하게 지내던 언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같이 어울려 다니던 언니 중 한 명이 입주민 외 아파트 놀이터 이용을 금지하는 데 찬성하며 입주민 회의에서 강력히 주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그 회의 후 아파트 놀이터엔 펜스를 치고 비밀번호를 누른 후 들어갈 수 있게 바뀌어 입주민 말고는 이용을 철저히 제한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는 관리비로 놀이터를 관리하는데 비용이 들어가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돈도 내지 않고 이용만 하는 다른 아이들이 오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앞에서 '넌 괜찮다'라고 말해주던 언니가 속으로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 놀이터에서 놀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비단 놀이터 이용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도 못 하게 하는 부모들 때문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고 묻는 것은 물론 몇 동에 사는지까지 물어보는 시대가 왔다.
몇 동에 사는지 왜 묻느냐?
몇 동에 사는지 알아야 그 집이 몇 평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강남 어느 동네는 그 집이 자가인지 아닌지 떼어서 보기까지 한다니 자신의 아이들과 어울릴 '급'인지를 판단하는 부모들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그래서 나는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혹시 오는 데 너무 오래 걸린 건 아닌 건지 집에 갈 때 금방 갈 수 있는지 묻기 위해 '집이 어디야?'라고 단순히 물어보던 질문도 이제 하지 않으려 한다. 혹시나 내가 묻는 질문에 그쪽 엄마가 '우리 집이 어딨는지, 그건 왜 물어본 거지?'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못 사는 것도 서러웠는데 아파트도 급을 나누고 거기에 임대 아파트에 사는 서러움도 심심치 않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새 뉴스에 나오는, 임대 아파트에 살면 같이 못 놀게 한다는 기사의 일을 내 친구의 친구가 실제로 겪었다 한다.
어린이집에서 잘 어울리던 엄마들이 갑자기 단톡방이 조용해지고 잘 만나지 않자 궁금해하던 찰나 자신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아이들과 키즈카페에서 놀다가 마주쳤다고 한다.
자신만 배제시키고 만난 이유가 알고 보니 결국 자신이 임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었다며 내 친구 앞에서 이야기를 하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나의 또 다른 친구는 자신의 아이가 학교 부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엄마가 부회장이 된 거를 알고는 그 앞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한다.
"옆에 OO 학교는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전교회장이 돼서 엄마들이 쫓아와 반대하여 취소가 되었데"
'굳이' 이런 얘기를 왜 했을까?
내 친구가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뻔히 아는 그 엄마는 친구네 아이가 부회장이 된 걸 알고는 그 얘기를 해주었다는데 그 말을 한 저의가 무엇일까? 그리고 아이가 임대 아파트에 산다고 회장을 못 하게 한 그 부모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점점 아이를 올바르게만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흔들린다.
나만 우리 아이를 올바르게 키운다고 되는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에겐 중요하지도 않은 내 친구의 집이 몇 평이고, 자가인지 세를 사는지 아니면 임대 아파트에 사는지를 묻고, 그 집 차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부모들 때문에 그걸 귀로 들은 아이들이 고대로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그러했듯 내가 너보다 더 잘난 아파트에 산다, 더 넓은 평수에 산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친구를 한 명 사귀더라도 부모의 기준에 맞지 않는 친구라면 사귈 수 없게 되는 걸까? 단지 남보다 잘 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조차 되지 못 하게 만드는 지금 이 현실이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