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혹은 내 아이 친구의 엄마와 친해지려고 노력해 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육아라는 전쟁을 나 홀로 견디기보다 의지하고 함께 나아갈 동지를 가지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용기 내어 말을 건네봤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또래 엄마들과 친해지고 싶어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번호를 물어보던 때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주변에 물어볼 곳도 없었고 말도 잘 못하는 아기와 하루 종일 있으니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조리원 동기가 없었기에 만날 수 있는 아기 엄마들이 없던 나는 문화센터를 다니며 처음으로 아기 엄마들을 만났다.
수수한 차림에 나와 비슷한 몰골의 엄마들이 모인 곳.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다들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내 옆에 아기에게도 같이 눈 마주치며 웃어주고 칭찬을 해주며 자연스럽게 몇 마디씩 주고받았고 그러다 같이 커피도 마시고 키즈카페도 가며 친해진 엄마들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아기 엄마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니 다들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다는 동질감과 서로의 고충을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며 꽤 많이 위로를 받고 에너지를 충천하였다.
그때의 만남이 좋아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갔을 때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을 사귀고 싶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엄마들이니 아이가 하원하면 같이 놀이터에 데리고 가 시간도 보내고 가끔 아이를 등원시키고 브런치를 먹으러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았고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보를 주고받으며 꽤 많이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서로의 속 사정을 너무 잘 알게 되었고 그들과 나를, 우리 아이를, 집안을 비교하게 되었다.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이다 보니 앞에서 사이좋게 지내면서도 혹시나 내가 한 무슨 말이, 어떤 행동이 서운하게 들리지는 않을까 조심하게 되었고 사소한 일이나 어떤 말에도 괜히 나 혼자 상처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점점 아이 친구 엄마들을 새로 사귀는 것에 지치기 시작했다.
새로 사귀게 된 엄마랑 친해지며 또 말하게 되는 나의 이야기들, 나의 사정들 우리 아이와 그 집 아이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편한 일들 등
관계에서 얻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만큼 감수해야 할 감정 소비도 많았다.
그래서 해가 갈수록 되도록 새로운 엄마들을 마주치는 일들을 피했고 어쩌다 반에 모임이 생긴다 해도 일부러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는 거기에서 정보를 얻어야 하고 서로 교류를 하며 지내야 좋다고도 했지만 나는 더 이상 일부러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누군가 '아이 친구 엄마들과 꼭 친해져야 할까요?'라고 물어본다면 '굳이 애쓰지는 말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본인이 너무 외롭고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다가간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 관계에서 좋은 점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들 무리가 형성되다 보면 그중에 또 그룹이 나뉘기도 하고 개중에 못마땅한 엄마가 꼭 한 두 명씩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뒷말이 나오고 싸움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엄마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지면 아이들끼리 친해도 더 이상 아이들은 어울리지도 못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어렵지만 특히 '내 아이'가 낀다면 그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나와 상대방 일대일의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아이가 껴버리면 그것조차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괜히 아이들만 친구와 멀어지게 만드는 꼴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그때 사귄 엄마들 중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진짜 속내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엄마가 있다.
이제는 진짜 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도 있지만 수없이 연락하고 지냈던 많은 엄마들 중에 아직도 연락을 유지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그때는 영원할 것 같았고 내 오래된 친구들보다 더 친해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지나와보니 남을 사람만 남았다.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이 엄마는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엄마들이 있다. 나와 결이 맞는 엄마 한두 명만 잘 사귀어도 충분하다.
일부러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아도 괜찮다.
어린이집 등 하원 때 웃으며 인사 나누고 있는 엄마들을 봐도, 놀이터에서 다 같이 모여 즐거워 보이는 엄마들을 봐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하고 일부러 어울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내 아이는 알아서 친구랑 잘 논다.
아이 때문이 아닌 나 혼자 쓸쓸한 것 같다 느껴져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에 다가간다면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엄마가 내가 생각했던 성격이랑 다를 수도 있고 나와 가치관이 다를 수도 있다. 아이끼리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잘 놀다가도 자주 싸우고 돌아설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엄마와도 왕래하는 일이 적어질 수 있다. 그때마다 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신중히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것 다 감내하고도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으니 다가가고 싶다면 먼저 웃으며 인사 건네보자. 열에 열은 반갑게 인사해 줄 것이다.
다른 이유가 아닌 진정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그들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