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같이 근무했던 팀장님과 팀원들을 1년 만에 만났다. 팀장님은 정년퇴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얼마 쉬지 않고 퇴임 후 1달 만에 학교 보안관 일자리를 구하셨다. 직원들에게 자상하고 현장에서 명쾌하게 지시를 내리는 팀장님이 정말 좋았다. 팀장님과 근무하는 1년 반동안 적극적인 현장 대처방법, 간단한 차량 수리, 직급으로 내리누르는 부당한 상황에서 아랫사람들을 대표해 윗사람에게 맞서던 일 등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국제결혼(사모님이 미국인)을 하셔서인지 식당 이모님이 쉬는 휴일에는 늘 점심을 직접 요리해서 직원들 먹으라고 차려주셨다. 누구나 맛있게 먹은 다음엔 설거지는 하기 싫어하는데 팀장님은 마무리까지 본인이 직접 하셨다. 윗분이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데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사발령으로 인해 뿔뿔이 헤어진 지 3년이 지났지만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끼리 서로 마음이 맞아 아직까지도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오고 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팀장님이 폐 섬유화 진단을 받으셨다며 내시경 수술 자국을 보여주셨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예전에 장비 보급이 형편없었던 시절, 공기호흡기 없이 불 끄던 선배님들은 순직하거나 아니면 퇴직 후 10년도 채 못 살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이젠 그 순서가 팀장님으로 이어지나 보다 생각하니 즐거운 술자리가 갑자기 쓸쓸하게 느껴졌다. 왜 소방관은 퇴직 후 빨리 죽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다 갑자기 교육 때 들었던 교관님의 얘기가 생각났다.
“여러분, 화재 출동할 때 불 다 꺼졌다고 해서 공기호흡기 벗으면 절대 안 됩니다. 보통 화재현장에서 잔화정리(불꽃이 없고 연기만 남은 상태, 하지만 여러 물건이 겹쳐진 상태에선 물을 뿌려봐야 아랫부분에선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경우가 많음, 그래서 굴삭기로 화재 잔여물을 다 걷어내며 물을 뿌려 마무리하는 현장 활동을 일컫는다, 잔화정리하는데 최소 1~2시간 이상 걸림)할 때면 공기호흡기가 무겁고 불편하다며 벗어버리는 선배님들이 많아요. 이젠 불 다 꺼졌는데 무슨 상관이냐? 공기호흡기 벗고 편하게 작업하자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절대 벗으면 안 됩니다. 잔화정리는 불이 완전히 꺼진 게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불꽃만 없을 뿐이지, 불씨는 살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연기들 그거 한 모금 마시면 담배 200개비 피우는 것보다 더 몸에 안 좋아요. 여러분, 소방관이 퇴직 후 빨리 죽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잔화정리할 때 마시는 각종 유독가스, 분진 등이 폐암이나 호흡기 질환, 기타 암의 유발원인인 거예요. 교육 마치고 실전 투입되면 여러분들이라도 꼭 공기호흡기 쓰거나 그게 어렵다면 잔화정리용 마스크라도 꼭 쓰고 작업하세요.”
아래 사진은 예전 교관님이 말씀하셨던 잔화정리용 마스크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잔화정리할 때 마스크를 써본 적이 없다. 2015년도인가 처음으로 지급받았지만 교체해서 써야하는 필터가 지속적으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화재현장에서 공기호흡기를 썼지만 예비 실린더(공기가 충전된 용기, 스쿠버용 장비와 비슷하게 생김)가 다 떨어지면 나 역시 선배님들처럼 맨몸으로 때워야 했다. 잔화정리용 마스크는 현장에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정말 필요한 장비 중 하나지만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예전보다 장비 보급이 많이 좋아진 지금은 아래와 같은 마스크와 정화통을 지급받아 가지고 있다. 향후 사비를 들여 조금 더 나은 면체와 정화통을 구입할지 고민 중이다. 예산 문제로 인해 정화통에서 걸러주는 가스가 중간 정도 수준인 것을 보급받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돈을 더 들였다면 지급받은 것보다 보호성능이 확실한 것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3M 6200(면체) + 3M 6006K(정화통)
향후 구입예정인 3M 7522(동양인의 얼굴에 맞는 면체), 정화통은 60928K나 60926의 조합이 소방관에게 좋음
예전 교육 때 추천받은 면체와 정화통의 조합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잔화정리할 때 쓸 수 있는 마스크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화재현장을 누볐던 선배님들은 퇴직 후 연금도 몇 년 못 받고 여러 질병으로 시들어가다 결국은 사라진다. 이게 과연 잔화정리할 때 연기를 들이마셨던 소방관만의 잘못일까? 도대체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사람을 갈아 넣어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 어느 누가 이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있을까? 항상 돈이 문제다. 돈과 안전 중 무얼 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