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의 00 교회를 근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00 구역(요즘은 구역이란 말 대신 목장, 구역장이란 말 대신 목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회기역 근처의 장로교회에 다닙니다. 이상한 교회 아닙니다. 오해 마시기를)에 속한 지는 음,,, 어디 보자 큰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니까 만 13~14년쯤 되었겠네요. 목자(구역장)님 부부는 저보다 딱 10살 많은 큰 형님, 큰 누님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제가 신앙으로나 회사 생활면에서나 참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이번엔 그 목자님 부부의 일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목자님은 30년 동안 A회사에 다니다 얼마 전 퇴사하셨습니다(구체적인 회사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분은 윗사람에게 줄을 서는 대신 본인이 맡은 일 또는 위에서 맡기는 일(일은 많지만 해도 티 안나는 일, 그러나 누군가 그것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예시 코로나 때 본사 운영 관리 등)을 언제나 성심성의껏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에서 나서기보다는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마치고 묵묵히 선배나 후배의 뒤에서 조용히 일을 돕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하고 성실히 3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임원이 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본인의 평판이나 업무 성과가 아닌 부하 직원의 잘못으로 인해, 발도 담그지 않았던 사내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결국엔 임원으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분의 성실함과 좋은 인품은 회사의 회장님께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임원이 되지 못한 대신 퇴직할 때 2년의 유예기간을 얻었고 그 기간이 끝난 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퇴직하는 과정에서 임원도 아닌데 2년의 유예기간이라니, 비밀엄수 기한이 있던 직업군이 아닌데도 그런 기한을 준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진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원래 직장인들은 사직서를 내면 그냥 끝입니다. 회사에서 그 사람을 붙잡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의를 표하자 회장님께서 직접 지시를 내려 회사와 관련 없는 분야에서 2년 정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던 회사원들의 모습과는 달라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그분은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자영업을 하다 보니 회사에 있는 동안 머리로만 알았지 몸으로 깨우치지 못한 일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총 세 가지였습니다. 1. 매출 극대화 2. 고객에게 친절하게(악성 재고 줄이기, 고객 불만 해소) 3. 다음 달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영업이익 만들기입니다. 일단 가게에서 매출이 생겨야 가게를 운영해 나갈 수 있습니다. 내 가게에서 물건을 잘 팔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팔 때 제대로 파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고 합니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욕심에 제품을 싸게 팔면 이윤이 남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했지만 매출이 안 나올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하고 1달 동안 힘들게 일한 결과가 월세 빼고 남는 게 예전 월급의 1/3 도 되지 않아 힘이 빠질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영업을 하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최선을 다해 회사를 다닌 내게 임원이 될만한 자격이 없었을까,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주님은 날 여기까지 이끄셨을까 등의 원망과 후회를 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자님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는 몇 개월동안 집안에서도 마음이 쓰일만한 여러 일들이 있었고 안팎으로 복잡한 사정을 겪으며 "아, 내 인생이 정말 보잘것없구나, 그나마 회사 다닐 땐 00장이라는 직함이라도 있었지, 지금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자괴감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분은 그럴 때마다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속이 상할 때마다, 가게에서 하루 종일 일했지만 처참한 매출 마감 결과를 마주할 때, 집안일로 인해 마음이 번잡할 때(직접 얘기를 들었을 때의 표현 대신 제가 순화한 표현을 썼습니다) 교회에서 속상한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아버지, 이러이러한 일들로 인해 마음이 아픕니다.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 붙들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저와 제 가정 모두 주님께서 주신 것이니 주님이 책임져 주시고 이 기회를 통해 더욱 굳센 믿음, 단단한 믿음을 허락해 주세요(직접 기도 내용을 말씀하진 않았지만 제가 아는 그분의 성향으로는 아마 이렇게 기도하셨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회사 생활하는 분이라면 다들 아실 겁니다. 회사는 한 번 떠난 사람을 다시 부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떠난 분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일은 아마 회사 다니며 1~2번 겪은 사람이 전부일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본사에서 그분에게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새로운 자회사를 출범할 예정인데 그 회사의 임원 후보자로 선정됐다, 면접에 참석할 의향이 있느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차후 면접장에 들어서자 회장님과 사장님 이하 다른 임원진들이 있었습니다. 회장님은 새로운 회사를 출범하며 이 회사에 어울리는 임원은 00, 00, 00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의중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동안 면접 봤던 후보군 중 그 누구도 회장님의 마음에 맞는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질문이 자영업을 하며 느꼈던 깨달음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목자님은 아주 편하게 본인이 겪었던 일화를 예로 들며 가게를 운영해 보니 때가 되면 월급이 나오는 회사가 정말 좋은 곳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가게를 이어가려면 매출도 많아야 하고 고객 관리를 잘해야 하며 적정한 이윤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게를 운영할 뿐 이득을 내지 못해 결국 문을 닫게 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었던 회장님은 아주 흡족해하며 "우리 회사에서 장사해 본 사람이 누구 있을까? 다들 장사 한 번씩 해봐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씀을 하시며 "난 맘에 드는데 어디 다른 질문할 사람들 없어?"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자리한 임원 중 어느 누구도 다음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그분은 새로운 자회사의 No.2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목장 모임에서 그 얘기를 듣는 동안 어느 집사님은 성경에 나오는 요셉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노예로 팔린 일, 이집트에서 보디발의 총관이 되고 다시 그곳에서 누명을 쓴 일, 감옥에서 전직 고위 관료들에게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해 배운 일, 결국엔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된 일화가 마치 우리 목자님의 회사 생활과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노예의 자리에서 총리대신이 된 요셉과 퇴직 후 부사장의 자리에 올라간 목자님의 모습이 겹치며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주님의 때에 주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모습을 성경이 아닌 실제로 사는 동안 체험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저는 모르지만 주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겠지요, 언제든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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