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큰 아이는 ADHD 매거진을 읽어 보세요) 5월 그 사건 이후로 큰 아이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 이후 할머니댁에서 2주 정도 지내며 상담(상담 선생님은 1주에 3일은 동탄, 3일은 강남에서 일하셔서 어쩔 수 없이 동탄 할머니 댁으로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네요)을 하며 학교에서 요구한 교권보호위원회 상담 이수 목표 시간(총 20시간)을 채웠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5월 말과 6월 초 사이도 아이에게 하루 4시간 국, 영, 수만 EBS를 보며 공부하는 걸로 했습니다. 넌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 다만 그 장소가 집일 뿐이다, 아이에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아이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지만 5월 초 일을 떠올리면 사건을 일으켰던 친구들이 미워지기도 한다며 복잡한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상담 선생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주문한 건 한 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 지금 아이의 상태는 참을성과 자존감이 바닥이다, 그래서 반 친구들과 부딪혔고 참지 못해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부모가 역할을 나눠) 엄마는 공부를 도와주며, 아빠는 운동을 통해 참을성 길러주기(힘들어도 정해진 범위까지 공부나 운동을 끝내기→ 그 결과 아이의 자존감, 참을성 향상)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항이라는 표현이 적당할까요? 6월~9월까지 아이와 공부하는 아내(아내는 국, 영, 수를 직접 풀어보며 아이와 같이 공부했습니다. 6월 중순부터 강의 나가는 일을 잠시 쉬고 아이의 공부를 전담해 왔습니다. 마음이 불안정한 아이 홀로 집에 둘 순 없었습니다) 수학을 공부하다 조금만 어려우면 포기하고 아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도 이해하기 힘들어했습니다. 그때마다 짜증은 기본이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매번 아프고 힘들다며 할 일을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아내 역시 참다 참다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오죽하면 이웃집에서 시끄럽다고 항의하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담당한 운동 분야에선 여름이라 덥다는 핑계로 설렁설렁 운동했습니다. 땀 흘리고 숨이 차는 운동보다는 집 근처 산책로를 사뿐사뿐 걷기도 했습니다. 내리는 비 때문에 집에서 맨몸운동(제가 하는 운동 강도의 10분의 1 수준으로 시켰으나 조금만 힘들어도 큰 아이는 금세 포기했습니다. "아빠, 힘들어요" 운동하다 힘든 그 시점을 견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아이를 보니 답답했습니다. 여러 번 참다가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생겼습니다)을 시켰지만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아이더러 집에 있는 실내 사이클을 타라고 시키는 게 제일 효과가 좋았습니다. 다만 상담 선생님이 요구하는 힘든 상태를 견뎌내고 과정을 마무리한 후 얻는 참을성과 뿌듯함은 거의 얻어내질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9월 중순이 됐습니다(8월 말, 교권보호위원회의 상담 목표시간인 20시간을 채운 이후 아이는 2~3주에 1번씩 개인 상담을 하고 매주 사회성 향상 치료를 해왔습니다). 개인 상담을 해주신 선생님께 부모인 저희가 혼났습니다. 아이가 몇 달 전에 비해 나이진 게 하나도 없다며 부모가 조금 더 신경 써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란은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저는 마음을 다잡고 아이와 함께 상담선생님이 내준 숙제(힘든 과정을 참고 이겨내서 자존감과 참을성 향상)를 잘 해내기로 다짐했습니다.
아내는 아이와 공부할 때 최대한 야단치지 않고 부드럽게 설명해 주기(아내는 석 달 넘게 아이와 공부를 해왔기에 특별히 할 게 없었습니다), 더워서 쉬거나 아이가 힘들어해서 운동을 쉬엄쉬엄 했던 제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운동이 좋을까 고민하다 아이와 수영이나 등산을 하기로 협의했습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불안장애도 있어서 수영을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까지 설득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와 제가 같이 수영을 하거나 동네 뒷산을 오르기로 했는데 수영은 추첨에 떨어져서(신청자가 많아 신규 신청은 늘 추첨합니다. 그런데 우린 한 명도 뽑히질 않았습니다) 포기하고 3일 중 (제가 일하는 날인 하루만 빼고) 이틀을 등산하는 걸로 했습니다. 등산은 왕복 3.5km 거리로 성인 기준 1시간 3~40분 코스였는데 아이와 함께 가니 2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더구나 6번째 등산까지는 원래 목표로 한 지점에 도착하지도 못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이후 많이 먹고 운동을 게을리하던 큰 아이가 살이 쪄서 힘들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목표를 조정했습니다. 완주 지점까지의 거리를 10으로 나눠 세 번째 등산에는 6까지만 네 번째는 8까지만 가는 걸로 아이와 출발 전에 합의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난 힘든데 왜 자꾸 등산을 강요하냐며 산을 오르는 내내 아이와 입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아이와 하루종일 공부하느라 답답한 아내의 마음이 저절로 이해가 됐습니다. 아내는 기질이 비슷한 아이와 제가 등산하는 게 못 미더웠는지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등산하고 오라며 신신당부를 했더랍니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여러 차례 쉬고 헉헉대던 아들도 차츰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가면 몸이 힘들고 느린 속도로 가면 모기가 달려들었습니다. 오르막을 오를 때면 숨이 가빠지고 땀이 흘러내리는 아들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었을 겁니다. 아빠는 속도 모르고 계속 "할 수 있어, 조금만 힘을 내" 이런 말을 하지, 목표 지점은 보이지 않지,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외치고 싶었을 겁니다. 또한 벌레를 무서워하고 처음 가본 길이 불안한 아들은 등산하는 내내 뒤를 힐끔힐끔 쳐다봤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따라오는 듯 1분에 한 번 꼴로 뒤에 누가 오나 안 오나를 확인했습니다. "누가 쫓아오는 것 같아 그래?"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는 하는데 제가 볼 땐 영락없이 쫓기는 입장 같았습니다. "아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안심해"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안심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힘들다고, 올라가기 싫다며 짜증도 냈지만 그때마다 아빠와 너는 상담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해야 된다며 같이 힘을 내서 오늘 등산을 마무리하자고 오백 번도 넘게 달랜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사람이라 처음에는 화도 냈지만 아이를 달래 가며 한 발 한 발 내딛게 하는데 조금씩 요령이 생겼습니다. 아이가 오래 쉬려고 하면 모기 핑계를 대며(정말 멈춘 지 30초도 되지 않아 산모기가 금세 달려들었습니다. 모기에게 사랑받는 저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움직였고 목표지점에 올라서는 자랑스레 인증사진도 찍어 아내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신청한 심리지원 바우처(경기도 시범사업)에 선정되어 사회성 상담을 받던 센터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원래 아이는 두 가지 상담을 받고 있었습니다. 개인 상담(동탄 또는 강남에서 진행, 월 1~2회 )과 사회성 발달 상담(주 1회)이었는데 이 바우처에 선정된 이후로는 경기도에 등록된 상담센터를 이용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원래 사회성 상담을 하던 곳은 경기도에 등록이 되지 않아 별 수 없이 새로운 곳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검색의 달인인 아내가 나서서 집 근처에 있는 상담센터로 옮기게 됐습니다. 새로 옮긴 상담센터에서는 첫 상담 전부터 아이와 보호자에게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안내와 전화상담을 해주셨습니다. 다만 아이와 직접 상담해 보니 개인 상담과 사회성 상담을 각각 주 1회 진행하자고 하셔서 기존에 진행하던 개인상담(장소가 두 곳이라 동탄 또는 강남에서 상담해 옴, 큰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10년 가까이 상담해 주신 선생님) 선생님과 상의를 해야 했습니다. 걱정이 됐습니다. 괜히 상담센터를 옮겼을까? 괜한 문제를 만든 건 아닐까? 아이를 오랫동안 봐준 상담선생님의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여러 걱정이 앞섰지만 상담 선생님은 흔쾌히 집 근처의 다른 상담선생님께 상담받는 것도 괜찮다며 본인과는 2~3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아이의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새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우리 부부는 홈스쿨을 중단하고 학업중단숙려제(학업중단 징후 또는 의사를 밝힌 초·중·고 학생들에게 Wee 클래스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에서 전문 상담을 받으며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숙려 하는 제도-나무위키)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올 12월부터 학교에 나가 최소한의 시간만 버틴 후 조퇴하는 식으로 아이의 출석일수를 채우고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새로 옮긴 상담선생님도, 다시 학교에 나가는 것도 모두 좋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가 무사히 이번 위기를 잘 넘기고 친구들과 기분 좋게 학교에 다니길 바랍니다. 힘들게 아이를 지켜보는 아내와 동생, 장모님을 위해, 가장 힘들 큰 아이를 위해 틈틈이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