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칠마루 Jun 12. 2024

스스로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2024. 5월 이후

5월 초, 우리 집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4월 중순 경, 큰 아이가 학교에서 자신을 놀린 같은 반 친구들을 때렸던 사건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로부터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학교에서 자신을 놀렸던 그 아이들과 또 부딪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5월 2일에는 큰 아이가 남을 때리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에 같은 반 남자아이 4명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지만 기특하게도 잘 참았던 일이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학교 폭력의 경우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 본인이나 그 부모가 학교폭력신고서를 담당선생님에게 제출할 수 있습니다, 그때 썼던 신고서에서 일부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5월 2일 학교폭력 신고서 중

점심 식사 이후 상기 아이 4명이 00이 옆자리로 앉거나 모임 → 00 이를 교실 구석으로 몰고 감 → 4명이서 00 이를 에워싸고 “이 학교를 나가라, 병신, 찐따” 등 부모 욕이 포함된 여러 욕을 함 → 00 이가 5분 정도 그 욕을 듣는 동안 같은 반 아이들은 말리는 사람 없이 모두 그걸 방관함 → 00 이는 싸우지 않고 그 언어폭력을 참았으나 생각할수록 너무 억울해 5교시 수업이 시작되었어도 울고 있었음 → 수업 중인 선생님이 아이가 우는 걸 보고 담임선생님에게 알림 → 담임선생님의 훈계 조치 → 하지만 양측 아이의 부모에게는 알리지 않음

     

담임선생님의 대응이 정말 답답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해서 아이를 욕한 4명과 언어폭력을 당한 큰 아이의 상황설명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큰 아이는 4명의 친구들이 부모욕을 포함해 여러 욕을 했다지만 4명의 아이들은 욕을 하지 않았다고 선생님께 얘기했다네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는 4명의 아이들을 야단치고 조용히 끝내려고 했습니다. 부모인 저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은 채로 말이죠. 며칠이 지나서야 우연히 큰 아이를 통해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이미 큰 아이를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4월 초, 큰 아이가 학교폭력을 일으킨 전력이 있기에 이번은 4명의 아이들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끼리 일어난 일인데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이 흘러 큰 아이의 운동회 날이었습니다. 오후 1시 넘어서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흥분해서 친구들과 싸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큰 아이 혼자 교무실 옆 상담실에 있었습니다. 2~3분 뒤 도착한 담임선생님은 또 색안경을 낀 채 이런저런 설명을 합니다. 본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5월 초 언어폭력을 가한 4명 중 3명의 아이들과 치고박는 싸움이 났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크게 흥분했고 일종의 Black out 상태가 되어 이성이 날아간 채 자신을 말리는 옆 반 선생님과 같은 반 2명까지 때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일의 선후과정도 제대로 설명 못하는 담임선생님이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00가 이상한 것 같아요, 친구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자기를 욕했다고...” 정말 담임선생님의 그 발언을 문제 삼고 싶었지만 큰 아이를 진정시켜야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대뜸 말꼬리를 잡는 학부형이 되고 싶지 않아 꾹 참았습니다. 하지만 편견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며 일방적으로 큰 아이가 이상하다는 선생님의 태도는 문제가 많아 보였습니다. 아이가 일부러 행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말리는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을 때린 것은 잘못한 게 맞기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고개 숙이기에 바빴습니다.     


학교폭력을 처리하는 학교의 태도는 뭐랄까, 예전 아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사라졌고 직업이 교사인 사람들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선생님 폭행), 학교폭력위원회(4월 1건, 5월 2건)의 대상이 되어 보호자가 써야 하는 서류(학교폭력 신고서, 보호자 확인서 등)를 써달라는 연락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A4 1장인 서류를 6장 정도 썼습니다. 보고서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정확한 표현, 어투에서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습니다. 1장 쓰는데 2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5월 10일 학교폭력 신고서 중에서

평소 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던 같은 반 체육부장이 00 이가 체육대회에서 출전하기로 한 종목을 임의로 삭제 후 자신(체육부장)이 나가는 걸로 바꿔놓아 00 이의 기회를 박탈 → 점심 식사 이후 00 이가 체육부장에게 자신의 출전 기회 박탈에 대해 얘기하자 체육부장이 00, 00을 불러 00 이를 에워싸고 부모 욕 등 여러 욕을 함 → 00 이는 5분 정도 다른 학생들 앞에서 그 욕을 듣다 눈물이 터졌고 분에 겨워 누군가를 한 대 때렸음, 그 뒤 누군가가 00 이의 뒤통수를 세게 치고 목을 잡아 뒤로 밀어 나무에 부딪힌 것만 어렴풋이 기억해 냈습니다.      


큰 아이는 5월 10일 위의 일 이후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열흘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알게 된 것이 저 내용이었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자세한 상황을 몰랐고요, 그런 와중에 저희 부부는 교권보호위원회, 학교폭력위원회 등으로 교감선생님, 학교폭력 선생님(일을 처리하는 동안 고생 많으셨던 분입니다)과 대화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교감선생님이 큰 아이에게 이상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크게 놀랐습니다. 교감선생님은 상담 관련 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학기 초부터 큰 아이가 여러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담임선생님을 대신해 아이를 면담해 주셨습니다. 저희는 감사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교감선생님은 본인의 상담대학원 경력만으로 저희 아이가 상대를 봐가며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가 단계별로 화를 표출한다 이런 식으로 단정 지어 생각하셨습니다. 저희 부부가 그게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네,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그런 말로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 문제로 정신없는데 교감선생님의 선입견까지 없애야 하는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저절로 떠오르는 일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전문가만이 선무당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10년 가까이 상담해 오신 상담선생님(상담경력 20년, 00대 출강)께 소견서를 받고 5년간 아이를 진료한 의사 선생님에게 진단서를 받아 학교에 제출했습니다. 두 선생님은 당시 아이 상황을 듣더니 아이의 구체적인 상태와 현재 치료경과 등 아이가 일부러 선생님과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는 내용의 서류를 써주셨습니다. 교감선생님은 태세 전환이 참 빨랐습니다. 진단서와 소견서를 보시더니 “아,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이 한마디로 넘어가시더군요, 아이 부모의 마음에 큰 불을 질러놓고서는 정말 무책임한 모습이었습니다. 저희는 너무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는데(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 줄입니다)....     


1. 교권보호위원회 진행, 결과

아이에게 맞았다는 선생님께 직접 만나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거부로 만남, 전화 연락 등 어느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는 이 일을 교육청에 보고 후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려 아이는 출석정지 10일, 심리치료 20시간을 해야 한다는 결과를 통지받았습니다. 이건 누가 뭐래도 아이의 잘못이니 부모인 저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다만 당사자인 선생님께 제대로 사과드리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2. 학교폭력위원회 진행, 결과

학교 측에서는 그저 학교 폭력 신고를 한다는 의사만 물어 서류를 받아 교육청에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얼마 전에 법이 바뀌어 그렇다고 하는데 학교폭력 신고를 조장하는 것 같아 썩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한 저희 입장에서 보자면 학교는 중간에서 제대로 안내하는 것도 없고 그저 방관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이상 학교 측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원래는 4월 아이의 첫 학교폭력 때부터 당사자인 학부모님들과 통화하고 싶었지만 학교 측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해서 따로 연락드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직접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를 통해 4월부터 5월까지 아이 문제와 관련된 학부모님들의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인 저희가 “문제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상대 아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물어보니 그제야 상대 부모님들의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아무런 연락이 없었는지 화가 나다 지쳐 궁금하기까지 했다는 반응부터 학교에서는 왜 아무런 안내도 없느냐, 저희 아이는 왜 학교를 나오지 않는 건지 여러 내용의 통화를 했습니다. 2주간의 기다림과 수차례의 통화 끝에 여러 학부모님들이 아이들끼리 학교 다니다 보면 여러 일이 있을 수 있다, 굳이 학교폭력 신고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좋게 해결되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주셔서 학교폭력위원회 일은 5월 말이 되어서야 우리와 상대측 모두 신고를 취하하고 화해하는 걸로 종결 처리됐습니다. 그 일이 있기까지 흘린 눈물과 주위 분들의 숨은 기도가 정말 많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고심 끝에 큰 아이를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 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으니 차라리 1년 정도 쉬면서 홈스쿨링이나 다른 대안학교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모인 저희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아이를 대하는 교감선생님, 담임선생님을 보며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큰 아이는 5월 10일 이후 다니던 태권도도 끊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같은 학교 아이들이 태권도장에 많아서 마주치기 싫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1주일에 2시간씩 상담을 받고 집에서 공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일단 아이의 마음이 전보다는 더 편해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만 정해진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아이를 바라보며 걱정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부모인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겠죠. 새삼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는 길고 달이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