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2010년 전농동 단독주택
2004년 10월 결혼한 후 1년 6개월 동안 주말부부로 지냈다. 난 광주에서 회사를 다니고 아내는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1달에 2~3번 꼴로 KTX와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며 서울에 왔었다. 그러던 중 이직을 했고 서울로 발령을 받아 드디어 주말부부를 끝내고 진정한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나와 아내는 2층에 전세로, 집주인은 1층에서, 그 아래 반지하 셋방이 있는 구조의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보통 광주에선 이사할 때면 집주인이 도배, 장판을 해주는데 서울은 세입자가 부담해야 했다. 세입자가 필요해서 하는 거니 당연히 비용은 그쪽에서 내는 거라는 집주인의 생각에 어이가 없었지만 아쉬운 건 내 입장이니 그러려니 했다. 신혼인데 이 정도는 해야 분위기가 살지라고 생각하며 도배, 장판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던 중 10년 된 보일러가 고장 났다. 일단 집주인에게 알리러 1층으로 내려갔다. 외출하셨는지 만날 수 없었다. 3월이라 아직은 추울 때였다. 난방이 급하니 먼저 수리를 했다. AS 결과 18만 원의 수리비가 나왔다. 영수증을 들고 집주인과 얘기하러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집주인은 수리비 얘기를 꺼내니 손사래를 치며 그런 건 세입자가 부담하는 거라는 대답과 함께 들어가 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도 성질이 났다. 그 후로 하루에 1번 꼴로 집주인을 만나러 1층에 내려갔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부동산에 문의해보고 주변에도 여기저기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소송 또는 협의였다. 이런 문제로 소송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보름 내내 집주인을 만났고 계속해서 수리비 얘기를 꺼냈다. 억울하게 내가 전부 부담할 수 없었다. 결국엔 집주인도 지쳤는지 수리비의 절반만 주기로 합의를 했다. 겨우겨우 얻어낸 승리였다. 그것도 법 조항 들이밀면서 얘기하니 겨우 얘기가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교장선생님까지 하시다 퇴직하셨다는데 이렇게 앞뒤 꽉 막히고 본인 할 말만 하는 사람은 처음 겪었다.
지은 지 20년 넘은 집이라 슬슬 집 곳곳에서 문제가 생길 시기였다. 곧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주말 아침이었다. 9시도 안 돼서 집주인이 내가 사는 2층 현관문을 두드렸다. 집주인이 사는 1층 천정에서 물이 샌다고 했다. 보일러 배관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데 수리하려면 우리 부부가 사는 2층에서 공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오후에 공사 시작하니 현관문을 열어 놓으라는 통보였다. 나도 사생활이 있는데 이런 식의 통보는 정말 짜증이 났다. 보일러 수리비 협의할 때는 계속해서 뒤로 미루더니 자기 사는 곳 공사는 아주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입장에 화가 났다. “공사도 좋지만 저희도 사생활이 있어서요, 일단 오후에 문은 열겠지만 다음부터는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알려달라”라고 말씀드렸다. 도리어 주인이 역정을 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지, 집주인이 집 고치는데 세입자 사정 봐주면서 하냐고” 투덜거렸다. 참, 할 말이 없었다.
공사업자 확인 결과 예전에 지어진 집이라 보일러 배관이 동으로 만들어졌고 이게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어 물이 새는 거라 했다. 누수 부위가 많아 거실 전체 바닥을 부수고 보일러 배관을 플라스틱 호스로 교체하는 공사를 하는데 3일 정도 걸릴 거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상상도 못 할 집주인의 말이 이어졌다.
집주인 : 공사하는 3일 동안 우리는 괜찮으니 늦게라도 와서 우리 집 욕실을 이용해
나 :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음), 잠시 아내랑 상의하고 올게요, 그때 다시 말씀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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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 나 1층 주인집 욕실에서 못 씻어. 그게 말이 돼?
밤늦게 퇴근해서 옷 들고 주인집 욕실로 내려가 씻는다고 지금이 60년대야?
오빠가 다시 내려가서 안된다고 말해, 숙박비 지원받아 와, 차라리 호텔 가자
나 : 응, 알았어, 호텔은 어려울 거 같고, 모텔비라도 준다면 다행이지 않을까?
일단 말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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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조금 전 말씀은 고맙지만 저희가 저녁 9시 넘어 퇴근하는데
늦은 저녁 아내가 여기까지 와서 욕실을 쓰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차라리 공사기간 동안 다른 곳에 갈 테니 숙박비 지원해주세요
거실만 공사한다고 하니 방문 다 잠그고 현관 열쇠를 드릴게요
집주인 : (돈을 들이기 싫다는 표정이 역력한 채로) 아니, 우리가 괜찮다는 데도
나 : 아뇨, 남자인 저도 그럴 수 없는데, 어떻게 야밤에 여자 혼자 내려보냅니까?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그 뒤로 여러 차례 공방이 이어졌다)--------------------------------------------------------------------------
집주인 :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영수증 가져오면 줄게
나 : (내심 보일러 고장 날 때처럼 수리비 반만 줄까 봐 얼른 말했다)
그러지 마시고 3일 동안 집을 못쓰니까 3일 치 숙박비 15만 원 주세요,
요새 모텔비 그 정도 합니다.
집주인 : 모텔비가 그렇게 비싸?
나 : 네, 지금 숙박비용까지 마무리해주세요
집주인 : 아니.....(단호한 내 표정을 보더니) 알았어, 영수증 가져오면 줄게
나 : 아뇨, 지금 주세요. 지금 주셔야 짐 싸고 나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저희도 현관 열쇠 못 드립니다.
집주인 : 알았네, 알았어, (지갑을 꺼내더니 바로 돈을 준다)
그렇게 집주인과의 협상이 끝났다. 원래 호텔 가서 묵고 영수증 청구하려 했는데 참았다. 그랬다면 집주인은 내가 찾아갈 때마다 못 들은 척하고 날 피해 도망 다니며 차일피일 주지 않을 게 뻔했다. 아내도 별말 없이 그 정도면 마무리 잘하고 왔다며 오히려 칭찬을 했다.
집주인과의 갈등은 이번 일만 있지 않았다. 평소에도 옥상에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면서 아내와 내가 사는 2층으로 올라왔다. 이 집은 옥상에 가려면 2층으로 올라와서 보일러실에 설치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다. 평일에도 우리가 출근한 10시쯤에나 옥상에 올라가니 문을 열어달라며 아내와 내게 전화를 해댔고 회의나 다른 일로 인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엄청나게 짜증을 냈었다. 그 집에 사는 동안 적어도 10여 차례 이상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매번 좋게 말씀을 드렸으나 바뀌지 않았다. 자기 집이니 자기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집주인의 인식을 바꿀 수 없었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현관 열쇠를 본인에게 맡겨달라고 했다. 절대 안 된다고 그 자리에서 못 박았다. 그동안 당한 게 있어 나도 이번 기회에 소소하게 복수 좀 했다.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걸 요구하고 받는 거지만 별난 집주인을 만나 별의별 경험을 다 한 나로서는 이것도 이긴 거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더워서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해도 집에 구멍을 뚫으면 안 된다고 해서 선풍기로 버텼다. 방충망이 오래되어 구멍이 났어도 그건 세입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벌레와 살기 싫은 내 돈으로 방충망을 달았다. 집주인은 세입자인 내가 요구하는 것 중 자기에게 손해가 되거나 돈이 들어갈 만한 것들은 깡그리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옥상의 물 빠짐 문제를 해결한다며 수시로 우리 부부가 사는 2층으로 올라왔다. 참으로 이상한 집주인이었다. 서울 살려면 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그래야 집을 마련하는 건가 싶었다. 보일러나 방충망 같은 고정설비는 집주인이 수리비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 이사 와서 살다 보니 당연한 일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가 세입자니 최대한 좋게 좋게 얘기하고 집주인을 어르고 달래 가며 살았다. 그래도 이 집만 이러겠지, 다른 집은 괜찮은 집주인을 만날 거야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건 큰 오산이었다. → 집수리 이야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