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2. 11 ~ 2. 15 타이베이
2월 11일 수요일 : 19,095걸음
청주공항에서 에어로케이 RF000편을 타고 타오위안 공항에 내렸습니다. 처음 가는 곳이라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특히 영어 대신 한자가 가득한 주변 상황에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유심 4개와 이지카드 4개를 미리 구매했기에 공항에서는 공항철도 개찰구 앞에 있는 업체에서 예약한 물건을 받기만 하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만에선 18세 미만은 유심을 살 수 없다고 하는 안내가 있었지만 무시했습니다. 이 상품을 구매한 다른 이들의 후기 역시 안내만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 미성년자인 아이들 것도 살 수 있다고 쓰여 있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제가 미리 구매한 상품의 바우처를 업체 관계자에게 내밀자 Ezfly 부스에 있던 여직원은 여권을 달라고 했습니다. 여권을 보던 여직원은 18세 미만이라 아이들에겐 유심을 팔 수 없다고 강하게 판매를 거부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아내가 나서서 영어로 얘기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부스 직원은 계속 중국어로만 얘기하며 판매 불가라는 메시지만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번역기와 몸짓으로 대신 뜻을 전달했지만 계속해서 안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지나가던 70대 대만 현지인이 대뜸 가게 점원에게 뭐라고 야단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어를 모르니 이유도 모른 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어르신이 점원에게 계속 뭐라고 하더니 저희 가족을 보며 "대만에 온 걸 환영한다, 대만사람들 친절하다"라고 영어로 얘기하며 제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습니다. 아마 "안 돼요"만 외치는 점원과 당황한 제 표정에 어르신이 지나가다 참견한 듯한 눈치였습니다. 대만 여행 책에 친절한 대만 사람들이라고 쓰여있더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점원의 무례한 거절과 현지 어르신의 따뜻한 환영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용 유심과 이지카드는 한국으로 돌아와 환불받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대만 온 지 한 시간 만에 온 가족의 힘이 죽 빠쳤습니다.
점심도 거른 채 오후 2시경 숙소인 시저 메트로 타이베이 호텔에 들러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미리 구글에서 봐놓은 식당을 갔으나 위생상태가 엉망이었습니다. 어딜 가야 하나 헤매다 아이가 "저곳이요"라고 말한 만두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용산사역 바로 옆 팔방운집이라는 곳인데 만두와 우육면이 맛있었습니다. 그 식당에서도 네 명이 함께 있을 자리가 없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대만 커플이 자리를 양보해 주어 우리 가족은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대만 사람들 참 친절합니다!!
다시 숙소로 들어와 짐정리를 하고 잠시 앉았습니다. 그 유심 교환 문제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탓인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원래 가려던 국부기념관과 쑹산 창의공원을 건너뛰고 잠시 쉬었다 다시 나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대만 첫날이라 그랬을까요? 잠시 쉬기로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1시간 반이나 코를 골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위해 타이베이 101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타이베이 101 전망대 입장권을 사려했지만 입장권이 늦은 저녁시간 외에는 매진이라 건물 5층까지만 둘러보고 지하 푸드코트로 갔습니다. 싱가포르 푸드코트에서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해물 뚝배기 종류로 선택했습니다. 결과는 역시나 망했습니다. 이상한 맛의 김치나베 우동이 나왔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음식에서 미묘한 향과 정체불명의 맛이 나는데 이것은 찌개도 아니요, 새콤한 식초의 맛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딸려 나온 오징어튀김과 공깃밥만 후다닥 먹었습니다.
전망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타이베이 4대 야시장 중 하나인 닝샤야시장 방문으로 대신할까 생각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을까요? 제가 대만 오자고 강력 추천했는데 대만이 무서워집니다. 막 야시장으로 출발하려는 찰나 작은 아이가 힘들어서 쉬고 싶다고 했습니다, 덩달아 큰 아이도 숙소로 들어가자고 합니다. 저도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서 못 이긴 척하고 들어오니 저녁 8시였습니다. 내일은 예스폭진지(예류, 스펀, 스펀폭포, 진과스, 지우펀) 버스투어가 예약되어 있어 얼른 자야겠습니다.
2월 12일 목요일 흐림 : 21,897걸음
오늘은 예스폭진지 투어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 7시에 일어나 호텔 바깥에서 출근하는 대만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새삼 여기가 대만이구나 실감했습니다. 어제 실패한 메뉴 선정을 오늘은 경험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호텔에서 100미터 떨어진 아침식사 맛집으로 향했습니다.
딴삥(대만식 팬케이크) 3개, 밀크티 2개, 샌드위치 1개를 시켰습니다. 우리가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 사이 사람들이 대여섯 명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만 관광객들이 추천하는 딴삥, 입에서 사르르 녹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모두 만족하는 아침식사였습니다.
9시 40분 시먼역 5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투어에 왔습니다. 사람 수가 많아 가이드 한 분이 버스 1대 43명을 담당한다네요, 그런데 우리 가이드(별명 짱가이드) 노련함이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능숙하게 사람들을 조별로 나누고 유의사항을 말했습니다. 첫인사 때 사람들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환호를 이끌어내는 모습이 마치 배구선수 김연경과 닮았습니다.
예스폭진지 투어는 많이 걸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만큼 걸었습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온 느낌이었습니다. 예류지질공원은 특이한 바위 공원, 스펀은 천등 날리기, 스펀폭포는 무늬만 그럴듯한 폭포, 진과스에선 광부도시락 먹기, 지우펀은 우롱차와 수신방의 누가크래커, 펑리수 사기, 홍등이 켜진 주변 경관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노련한 가이드님 덕분에 즐겁게 둘러보고 왔습니다. 원래 계획은 야시장에 가려고 했지만 가족들 모두 과감히 패스, 얼른 숙소로 가서 누웠습니다.
2월 13일 금요일 : 15,028걸음
우라이 지역에 있는 풀 문 스파(명월온천)에 가려고 10시에 타이베이 메인역 M8 출구 인근에서 849번 버스를 탔습니다(원래는 9시 탑승 예정이었으나 다들 늦잠을 자서 1시간 늦게 출발). 대만에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는데 우리나라 버스와 거의 비슷한 모양이었습니다. 풀 문 스파가 시설은 세련되지 않지만 수질이 좋고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온천이라고 해서 일부러 이쪽으로 왔습니다. 다만 버스로 오는 길이 커브길이 많고 안내방송이 중국어로만 나와서 우라이에 도착하고도 이곳이 버스종점인 우라이인 줄 몰랐습니다. 다행히 현지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온천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주중이라선지 온천 안은 한가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온천이란 말처럼 남탕에는 어르신 다섯 분만 있었습니다. 대만의 다른 온천처럼 유황 냄새가 나지 않고 남탕 벽이 뚫려 있어 우라이의 초록빛 자연과 반신욕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아내는 대만 여행 내내 몇 번씩 이 온천이 좋다고 얘기했습니다, 꼭 가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온천욕을 마치고 간식거리 200여 미터를 둘러봤습니다. 아각산저육향장이라는 곳에서 소시지를 먹었는데 아이들이 지금까지 먹었던 대만 소시지 중 가장 맛있었다는 평을 했습니다. 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저는 다른 가게에서 대만식 부침개인 총좌빙을 샀으나 별로였습니다. 다시 849번 버스를 타고 시먼역으로 가는데 신디안역(대만 지하철 초록라인 종점으로 여기서 우라이행 버스를 타면 3-40분 걸립니다)에서 갑자기 버스를 세우더니 승객들더러 다 내리라고 합니다. 중국어로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 다른 사람들이 내리자 눈치껏 내렸습니다. 신디안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먼역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시먼역에 내리자마자 마치 서울 명동에 온 것처럼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푸항우육면이 아들의 인생우육면이 되었고 삼형매 망고빙수는 한국과 똑같은 맛이었습니다. 다리가 아파오자 커피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1시간을 쉬었다 18시에 가이드 추천이었던 난지장 야시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거리가 3km쯤이라 걷긴 멀고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이 전부 한자라서 거기서 헤매다 20분을 허비했습니다. 거족 4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아까 헤맨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가서 202번 버스를 탔습니다. 세 정거장 뒤 내려서 500미터를 걸어갔습니다. 걷다 두리번거리니 지나가는 현지인이 이쪽이라면서 길을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오전에 탄 849번 버스는 영어 안내방송이 없었지만 202번 버스는 소리도 잘 들리고 영어 방송도 되어 외국인 입장에서 편했습니다.
책에는 랴오허제 야시장을 추천했지만 예스폭진지 가이드에게 듣기론 난지창 야시장이 사람 수나 가격이 적당하다고 합니다. 다른 야시장(랴오허제, 스따, 스린 등)들은 사람도 넘쳐나고 가격이 전보다 1.5배 이상 오른 상태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난지창 야시장에서는 호떡, 초밥, 소시지, 어묵,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데 그냥 어릴 적 마트가 없을 때의 80년대 시장 느낌이 났습니다.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편의점 ATM에서 호출한 택시를 타고 호텔 이름을 말하니 기사님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10분 정도면 갈 거리라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습니다. 어라, 점점 숙소랑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속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기사님이 목적지라며 도착한 곳은 시저 파크 호텔이었습니다. "여기 아니에요" 다시 중국어로 목적지 주소를 보여주니 그제야 기사님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억울하게 택시비를 더 낼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습니다(보통 한국에선 이럴 경우 기사님이 도중에 미터기를 끄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적당한 가격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제 바람과는 달리 대만 택시 기사님은 꿋꿋하게 미터기를 켜놓고 운행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나온 275원의 요금 중 200원만 달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만큼만 낼 생각이었는데 다투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아, 오늘 제 인생 최고의 대만 음식을 만났습니다. 아종면선의 곱창국수 강력 추천합니다. 가쓰오부시 향이 가득한 맛있는 국물애 잘게 부순 면발, 곱창 몇 조각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거기에 칠리소스와 마늘 소스 1~2 스푼을 넣으면 기가 막히는 곱창국수가 완성됩니다. 고수를 싫어한다면 "부야오 샹차이"라고 말하면 고수 없이 맛있는 곱창국수를 즐길 수 있습니다. 먹거리 천국 대만에 와서 잘 먹지 못했는데 아종면선 곱창국수는 하루 3번이라도 먹을 수 있는 제 인생 최고의 대만 음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