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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29. 2022

나의 기부 이야기(2004년 ~ 지금)

월드비전, 한국컴패션

해양경찰로 제주에서 근무할 무렵,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근무하는 파출소로 찾아와 쪽방에서 하루 밤 묵을 15,000원 또는 밥 사 먹을 5,000원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끔씩 어선들이 정박하는 곳을 순찰할 때면 돈이 없어서 하루나 이틀을 굶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가 있었고 선임들 몰래 파출소 식당으로 올라가 라면을 대접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돈이 없어 밥을 굶거나 제대로 된 숙소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군인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시간이 흘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월급 50만 원 정도로는 학비를 모으기는커녕 한 달 살이 인생을 계속해서 이어갈 뿐이었다. 학교를 다니며 취업할 때까지는 당장 쓸 돈이 급했다. 아무래도 취업할 때까지 정기적인 기부는 형편상 무리였다.      


그러다가 2004년 2월 C 0회사에 취직을 한 후 두 번째 월급을 받자마자 서둘러 월드비전에 정기후원 신청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가 많아서 월급이 하나도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한비야 님이 긴급구호 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갔다. 한비야 님의 책을 읽고 나서야 한국전쟁 때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세운 구호단체가 월드비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2004년 내가 받은 연봉은 2200만 원으로 월급으로는 180만 원이 나왔다. 대기업치고는 참으로 연봉이 짠 회사였다. 그중 매달 3만 원 정기후원을 선택했다. 내 후원금으로 아이는 사회복지관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후원한 첫 아이의 이름은 김 00이었다. 초등학생 때 후원을 시작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총 7년 정도를 후원했고 그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 후원이 끝났다. 그 뒤로 2~3명의 아이를 거쳐 지금은 이 00이라는 아이의 후원을 하고 있다. 후원한 지 15년쯤 되었나? 그때 월드비전에서 무슨 기념 카드를 받았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 후원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뿌듯했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께 칭찬받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컴패션 네이버 검색 이미지


국내 아동을 위해서 후원을 시작한 지 5년이 넘을 무렵, TV에서 차인표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해외에 나가 사회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내용 중 차인표가 봉사현장에서 여러 아이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선뜻 결정하는 장면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사회생활 5년 차, 아직 회사에 재직 중인 때였고 1명에서 3명으로 정기후원을 늘리는 건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아내와 상의 후 차인표가 후원하는 구호단체인 한국컴패션에 가입해 두 아이의 후원을 결정했다. 가나와 우간다에 있는 아이 1명씩 총 2명의 아이를 2008년 말부터 후원하게 됐다. 지난 7월 초, 두 아이 중 1명의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어 후원을 마쳤고(컴패션에서는 졸업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 아이가 성인이  때까지 후원을 마쳤다는 파란색 배지가 집으로 배송된다, 지금 그 배지는 우리 집 냉장고에 자랑스럽게 달려 있다.) 다시 필리핀에 있는 7살 아이에게 새로 후원을 시작하게 됐다.      


월드비전에서 국내 아동 1명을 후원한 지 이제 18년, 한국컴패션에서 해외 아동 2명을 후원한 지 14년이 지났다. 2010년부터는 부끄럽기도 하고 멋쩍기도 해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내게 보낸 편지만 읽고 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친절은 낯간지럽기도 해서 드문드문 생각날 때마다 후원 아동들이 쓴 편지를 읽었다. 그 편지 내용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후원 아동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 한편이 따스해졌다.     

  

1년에 후원금으로 150만 원 남짓한 돈을 쓰지만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서인지 크게 아깝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질 때면 간혹 후원을 그만둘까 하는 유혹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살짝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그냥 우직하게 후원을 지속해왔다. 한 번 후원을 시작하면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후원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후원 아동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참 소중하고 그 일을 통해 돈을 벌고 그걸로 한 아이를 도울 수 있다는 게 내가 주님께 받은 큰 축복임을 새삼 알게 된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받았던 호의를 조금이나마 되갚아 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자,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국내든, 해외든 아동 정기 후원의 세계로 빠져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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