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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ug 05. 2022

닮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

30년 지기 XX 친구 이야기

30년 지기 친구가 있다. 1993년, 고 1 때 처음 만난 그 녀석은 3년 내내 같은 반에 같은 YMCA 서클까지 계속 붙어 다니게 되었다. 대학은 달랐지만 군대 가서도, 제대해서도 그리고 각자 회사에 취직한 사회 초년생이 되어서도 우정은 죽 이어졌다. 서로의 결혼식에 가서 신혼여행 가는 공항까지 차를 운전하기도 하고 1~2달에 1번씩 만나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며 지내왔다. 이번엔 그 친구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일단 내 친구는 운동을 잘한다. 그 녀석은 태권도 5단, 합기도 2단, 킥복싱 1단, 검도 2단 합계 10단이다(정확하진 않은데 암튼 10단은 맞다).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한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그 녀석 주변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잘 웃지 않아서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친해지면 말도 잘하고 편한 성격인데 약간 낯을 가린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팔뚝은 어찌나 두꺼운지, 아마 고등학교 일진 녀석들도 내 친구를 보는 순간 쟤는 건드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했을 것이다.    

  

직장인 시절,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괴롭히는 상사 탓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어하자 내게 땀 흘리며 운동하라고 조언해준 것 역시 그 녀석이다. 그래서 극진가라테를 배우게 됐고 땀 흘리며 하는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그렇게 좋은 줄 처음 알게 됐다.      


그 녀석은 가끔 킥복싱 대회나 태권도 대회에 나가 실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물론 나이가 40대 중반이라 20대 초반의 아이들처럼 날아다니지는 못한다. 다만 그동안 열심히 운동한 경력이 있어서 선수끼리의 시합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우승 직전 인 3~4회전까지 출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 녀석에 비해 내 실력은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자에서 간신히 몇 걸음 더 나간 수준이다. 간혹 둘이 만나면 다른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기보다는 동네 체육관에서 1~2시간 운동한 후 밥 먹고 카페 가는 것이 전부다. 물론 일일 코치는 전부 그 녀석 담당이다. 내 복싱 코치가 되어 3~4라운드 미트를 잡아주기도 하고 어퍼컷 등 기본자세도 알려준다. 매도우 복싱(세게 치지 않고 가볍게 툭툭 상대방을 맞추는 복싱 겨루기)을 할 때면 늘 내 공격이 막히거나 내가 당하기 일쑤여서 슬쩍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배우는 점도 많기에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또 공부도 열심히 한다. 학창 시절만 해도 그 녀석 역시 나 못지않은 4차원이었다. 다들 영어 단어장 들고 다닐 때 그 녀석은 단어장 대신 권법 책을 들고 다녔다. 뭐냐 하고 물어보면 이상한 권법 책을 보고 오늘 다 익혔다며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00 회사에 다닌다. 3년 정도 IELTS를 준비하더니 원하는 점수를 얻어 2021년에는 영국에 가서 석사 학위까지 받아왔다. 주중에는 8~9시경 업무를 마치고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다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는 걸 반복하고 주말에 대여섯 시간 이상 공부하고 그걸 내리 3년을 했다. 대단한 놈이다. 독한 놈이다. 이제는 영국 다녀와서도 1주일에 2~3번은 1시간 정도 외국인과 화상 통화를 하며 영어로 말하는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친구가 그렇게 노력하는 사이 나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한방에 계급 세 개를 뛰어넘기 위해 00 시험에 하루에 3~4시간 자고 현직으로 일하면서 공부했지만 아쉽게도 그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8년 동안 세 번을 응시한 그 시험에서 처음엔 0.4점 차이, 두 번째는 2점 차이, 마지막 시험은 단념하라는 하늘의 뜻인지 한 과목이 과락을 겨우 면한 40점이었다. 그 점수를 보고 나니 깔끔하게 그 시험을 접게 됐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래서 관련 자격증(소방설비기사 전기)을 따고 승진을 위해 TOEIC 가점을 채우고 워드프로세서 자격증도 취득했다. 친구가 옆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보는 내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나 역시 그 녀석에게 내세울만한 뭔가를 해야 했다. 


30년 지기 친구라 아내도 그 녀석을 잘 안다. 가끔 같이 만날 때면 그 녀석은 아내가 못마땅해하는 내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누라랑 사진 찍는 게 뭐가 힘들다고 아내 서운하게 놀러 가서 사진도 안 찍었냐”부터 “귀찮더라도 애들하고 많이 놀아줘라, 품 안에 있을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2~3년 안에 너보다는 친구 좋다고 가버린다” 등 끝도 없었다.      


30년 전에 이 친구를 만난 게 내게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30년 동안 이 친구는 내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공부든 운동이든 내가 꾸준히 갈고닦게 만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4일 후면 영국에서 석사 졸업식을 마치고 오는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담아 마중을 나가야겠다. 그 녀석은 내가 이렇게 고마워하는 줄은 아직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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