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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ug 07. 2022

팔팔 끓는 뜨거운 초계국수

2022. 8월 여름날

초계국수의 뜻은 차게 식힌 닭 육수에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하고 살코기를 얹어 먹는 메밀국수라고 두산백과에 나와 있다. 요리에 관심이 있거나 초계국수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냉면 육수처럼 차가운 육수에 면이 있는 요리를 떠올릴 게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내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회로가 작동했고 초계국수의 시원한 느낌 대신 따뜻한 육수를 끓이고 있었다. 그렇다, 이번엔 뜨끈한 국물의 초계국수를 먹을 뻔한 얘기다.      


먼저 아내와 나에 대해 설명하겠다. 낼모레면 결혼한 지 만 20년이 된다. 2004년 10월에 결혼했으니 만 20년까지는 2년쯤 남았다. 20년을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결과 분명하게 아는 것 몇 가지가 있다. 아내와 나는 아주 분명하게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난 해양경찰로 군 복무를 해서 어쩔 수 없이 요리를 배우게 됐다. 그곳에서는 따로 취사병이 없었다. 함정근무를 할 때는 취사 인원이 셋이면 내 밑으로 세 명의 후임이 올 때까지 내가 취사병 역할을 해야 했다. 별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요리를 배웠다. 물론 처음 하는 요리가 재미있을 리는 없었다. 또 군대에서 배웠으니 요리하다 선임들에게 맞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 이후로 요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다. 요리할 수 없는 게 아니고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장모님이 가정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요리를 배우려면 기초부터 심화 과정까지 아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과정을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가정이 너무 싫었단다. 마치 내가 수학이 너무 싫었던 것처럼. 나물무침을 할 때 나물마다 왜 다듬고 삶는지, 소금 간은 언제 하는지 모든 게 이해도 되지 않을뿐더러 이런 걸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당연히 요리를 잘 못한다. 그나마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본인도 노력을 많이 해서 된장찌개까지는 끓일 수 있는 수준으로는 올라왔다. 얼마 전에는 돼지고기 수육에 도전해 성공하기도 했다.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며칠 전 초계국수 세트(육수와, 면, 야채 고명, 발라놓은 닭고기 살 200g)를 아내가 반찬가게에서 사 왔다. 원래 사 오면 바로 먹지만 요 며칠간은 1학기 동안 못했던 아이들의 안과, 치과 정기 검진을 하다 보니 그 초계국수 세트는 냉장고 안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드디어 어제 모든 병원 검진을 마친 후 아이들 저녁으로는 간단히 고기를 구워주고 아내는 초계국수 세트를 먹겠다고 했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아내는 내가 자신을 위해 요리해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도 귀찮았지만 내가 초계국수를 해주마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다만 아직 운동(사이클 하루 1시간)이 끝나려면 10분 정도 남아있으니 그동안 면 삶을 물을 끓여놓으라고 얘기했다. 아내는 알았다고 하더니 냄비를 꺼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난 아내가 당연히 물을 끓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오산이었다.     


어느덧 10분이 지나 운동을 마친 내가 면을 삶으려고 인덕션 앞에서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냄비를 내려다본 난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해보시라. 냄비 안에는 내가 부탁한 면을 익힐 물 대신 초계국수의 육수가 아주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일을 어찌할까?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빨래를 개키던 아내를 이쪽으로 와보라고 불렀다. 바쁜데 왜 부르냐며 살짝 짜증을 내려던 아내는 내가 펄펄 끓고 있는 육수를 손으로 가리키자      


아내 : 아까 냄비에 끓이라며 나 시킨 대로 다 했는데

나 : 아니, 면 삶을 물을 끓여야지, 육수를 끓이면 어떡하냐

아내 : 육수에 면 삶는 거 아냐?      

너무나 당연하게 대답하는 아내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다시 물어봤다.

나 : 초계국수가 뭔지는 알아?

아내 : 아니, 잘 몰라, 그냥 반찬가게에서 파는데 맛있어 보이길래 사 왔어

나 : ....     


요리에 관심이 별로 없는 아내라지만 당연히 초계국수라는 요리를 알고 있을 줄 생각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요리명을 들으면 바로 완성된 요리를 떠올리는데 아내는 그게 아닌가 보다. 무슨 요리인줄도 모르고 사 왔으니, 당연히 완성된 요리의 모습을 떠올리는 나와 아내의 오해생길 수밖에. 아내에게 초계국수의 완성된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고는 팔팔 끓은 육수는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 놓자고 했다. 그래서 살얼음이 낀 시원한 육수가 되면 다시 맛있는 초계국수를 해 먹자고 했더니 그제야 알았다고 하며 다시 빨래를 개키러 간다.      


20년 가까이 살던 부부라도 가끔씩 이렇게 사소한 오해로 인해 어이없는 순간들을 겪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좋게 웃으며 넘어갈 때도 있지만 큰소리치며 내가 옳다고 다툴 때가 훨씬 많았다. 그래도 어제는 부드럽게 잘 지나갔다. 앞으로도 살다 보면 서로 어이없어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어제의 뜨거운 초계국수처럼 웃으며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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