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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ug 28. 2022

불멍하는 나,
김광석 콘서트에서 졸았던 나

2022. 8월 포천 글램핑

2022년 8월 휴가를 2주나 써버렸다. 14일부터 아내 확진, 15일은 작은 아이 확진, 16일은 큰 아이 확진, 그리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나마저 19일 코로나에 걸렸다. 병가를 쓰고 복귀하니 벌써 8월 말일이 다가왔다. 원래 계획한 여름휴가는 8월 17일 ~ 19일에 글램핑장에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시원하게 예약을 날리고 자가격리 마지막 날인 25일 이후에 아이들과 원래 예약했던 글램핑장을 가기로 했다.   

    

운좋게도 26일 1박 예약을 할 수 있어 다시 그곳으로 갔다. 날씨도 좋았고 뒤늦은 여름휴가인 탓에 차도 막히지 않았다. 오후 3시 40분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글램핑장에 있는 간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느라 바빴다. 산속이라 금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6시가 될 때쯤 아이들이 기대하는 숯불구이를 위해 얼른 불 피울 준비를 했다. 숯과 장작 세트 모두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예전보다는 쉽게 토치로 불을 붙였다. 또 캠핑장 주인장이 나 같은 초보들이 쉽게 불을 피울 수 있도록 동영상을 작성해 각 텐트별로 QR코드까지 작성해 붙여놓았다. 1차로 돼지 목살, 2차로 바닷장어 초벌구이, 3차로 아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새우를 숯불 위에 구웠다. 미세하게 불 조절을 해가며 좋은 재료가 타지 않게 신경을 썼다. 작년처럼 여기저기 새까맣게 탄 고기를 먹일 수는 없었다.     


1시간 정도 먹거리를 굽고 나니 이젠 나 혼자만 남았다. 천천히 장작을 한두 개씩 얹어가며 혼자 불멍을 시작했다. 주황색으로 타오르는 불을 보며 긴장을 풀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연스레 중 2 수학여행 때 대익이가(아마도 이름이 정확하지 않음) 불렀던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라는 곡이 떠올랐다.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중학교 2학년 15살 청소년이 부르기엔 이르지 싶은데 당시 대익이는 조숙했나 보다 짐작할 수 있는 선곡이었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2학년 전부가 운동장에 모여 어느 정도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면서 들었던 그 곡은 인상 깊게 마음속에 남아있었나 보다. 그때 처음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1994년 고등학교 2학년 때다. 학교 서클 모임으로 “Hi-Y”라는 활동을 했었다. 그냥 YMCA에 소속된 고등학교 동아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열심히 활동했었기에 주말이면 시내에 있는 YMCA를 자주 갔었다. 그 해 여름, YMCA 강당에서 김광석 공연이 있었고 난 바로 앞에서 1시간 정도 직접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김광석의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 당시 나는 공연을 즐기지 못했다. 왜냐고? 지루해서 앞자리에 앉아 졸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천금 같은 기회를 흘려보내다니. 그땐 먼지가 되어라는 곡만 알았지 가수가 누군지도 몰랐다. 바로 눈앞에서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땐 이상하게도 재미없게만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기회인데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다니, 아마 지금 내가 94년 그 소극장 공연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가수의 노래에 공감했을 텐데, 인생의 단 맛, 쓴 맛, 온갖 맛을 본 지금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온몸으로 당신의 공연을 즐기고 있음을 알려줄 수 있을 텐데... 지금 아쉬워하면 어쩌리?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혼자 불멍하다 절호의 기회를 날린 김광석 콘서트가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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