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hill & 캐러멜 마끼아또
난 96학번이다. 1996년 대학생이 될 때까지는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모범학생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가자 모든 게 자율인 세상이 찾아왔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18년 동안 타율에 익숙해지다 자율로 모든 생활을 하려니 뒤늦게 찾은 자유시간에 뭘 할 줄 몰랐다. 그냥 놀며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 그러다 담배를 피우게 됐고 96년 8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무려 14년 가까이를 하루 1갑 반 정도의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의 종류도 This → This Plus → 군대에서는 군 마크가 있는 88 → Marlboro medium → Dunhill로 변했다. 그냥 한 대 피우는 게 좋았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면 모닥불이 타는 것처럼 내가 담배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주황색 불이 빛나며 담배가 타들어간다. 그냥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다 보니 여러 일화도 생겼다. 2003년 12월 C0이란 회사에 붙어 신체검사를 받을 때의 일이다. 하루에 한 갑 이상씩의 담배를 피우다 보니 26살의 건장한 청년임에도 혹시 담배 때문에 폐에 문제가 생겨 신체검사 불합격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때 내 신체조건은 172cm, 65kg이었다. 다행히 나만의 걱정이었고 담배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회사에 우수한 성적으로 최종 합격했다.
영업 뛸 때의 일이다. 영업사원들은 월말이 되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해서 그때쯤이면 하루에 2갑씩 담배를 피워대기도 했다. 담배가 떨어질 때마다 매번 사러 가는 게 귀찮아서 아예 차 트렁크에다 한 보루씩 사놓기도 했다. 그땐 지갑에 돈 떨어질 때는 있어도 담배가 손에서 떨어지면 안 되었다. 그만큼 골초였다. 술은 맥주 1병 정도밖에 못 마시지만 담배는 그 누구보다 많이 자주 피울 자신이 있었다. 그땐 그랬다.
2009년 회사를 그만두고 소방관 시험을 준비할 때였다. 그동안 담배를 끊어보려 여러 차례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했었다. 그러다 시험을 준비하는 이번 기회에 담배를 끊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금연을 시도했다. 일부러 기억하기 쉽게 10월 31일까지만 담배를 피우고 남아있던 Dunhill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때 마지막으로 쓰던 300원짜리 일회용 라이터는 한 5년 정도 우리 집 부엌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땐 정말 소방관 시험 합격이 간절했기에 금연을 통해 수험생의 의지를 불살랐다. 정말 시험 합격이 절실했고 그 결과 금연도 시험 합격도 모두 성공했다.
그렇게 2009년 11월에 담배를 끊는 대신 커피로 내 마음이 옮겨 갔다. 5살 무렵 이모할머니의 옆에서 커피를 마시게 됐다. 그땐 할머니 껌딱지여서 할머니가 계신 곳이면 어디든 내가 있었다. 할머니가 옆집 다른 아주머니들과 얘기를 나눌 때 커피를 드셨던 것 같다. 커피포트에 물을 넣은 후 끓이면 일단 소리도, 냄새도 모두 달랐다. 커피잔에 커피와 프림, 설탕을 넣고 끓인 물을 넣어 조그만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마셨을 때의 달콤함이란 5살 꼬맹이가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마냥 좋았다. 원래 아이는 커피를 주지 않는데 하도 떼를 써서 2~3잔씩 할머니 옆에서 커피를 얻어 마셨다. 어렸을 때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던 소리와 커피잔에 놓인 커피:프림:설탕이 2:2:2로 어우러진 다방커피는 내가 좋아하던 커피 메뉴였고 아련한 향수였다. 행복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는 추억이었다. 그때 마셨던 커피가 좋아서였을까?
담배를 끊고 난 후 평소보다 더 자주 커피를 마셨다. 하루 10잔의 커피를 마셔도 저녁에 잠을 잘 잤기 때문에 커피의 양은 아무 상관없었다. 원래 커피와 담배는 한 세트로 움직이지만 담배를 끊어서인지 평소 마시는 양보다 1.5배 정도는 더 마셔댔다. 특히 커피믹스의 달달함이 좋았다. 또 커피의 쓴 맛과 달콤한 캐러멜 시럽이 어우러진 캐러멜 마끼아또는 내 단골 커피 메뉴였다. 아메리카노는 쓰기만 하지 설탕을 넣지 않고서는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몇 번 아메리카노를 마시려고 시도해봤지만 맛이 없었다.
그렇게 10여 년간 커피믹스를 마시다 보니 어느덧 40대가 되었고 그동안 마셔댄 커피믹스의 프림이 내 베둘레햄이 되어 허리 치수가 27살 27인치에서 어느덧 40대 34인치가 되어 있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지만 식단 조절을 하지 않은 채 맘껏 먹어서인지 체지방률 25%의 돼지가 되었다. 그중에 커피믹스도 한몫 단단히 했다.
40대 중반인 지금 식단 조절을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운동과 식단의 비율은 4:6 정도 같다. 특히 나같은 체질은 더욱 식단 조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젠 커피믹스는 하루에 2잔까지만 먹고 캐러멜 마키아토는 그동안 많이 마셨으니 연한 아메리카노에 설탕 시럽 1~2번을 넣어서 마신다. 그렇게 설탕 섭취를 줄이고 커피를 마시며 얻는 칼로리도 최대한 줄이며 내 유일한 기호식품인 커피를 즐기려 한다. 20대엔 캐러멜 마끼아또 → 40대 중반에는 헤이즐넛 또는 설탕 시럽을 넣은 연한 아메리카노로 바뀌었다. 내년엔 반백살이 되는 5년 후엔 단골 커피 메뉴는 뭘로 바뀌게 될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