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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n 22. 2022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C00, B00, 벤처회사 Medical Representative

영업 중의 3D 영업이 무엇일까? 대부분 보험, 자동차, 제약 위 세 가지를 들 것이다. 그런데 난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5년간 일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국내 대기업(C00), 외국계 회사(B00), 중소 벤처회사에서 MR(Medical Representative, 의약정보 담당자)로 있었다. 무슨 일을 하냐고? 일단 제품을 잘 팔면 일의 80%는 끝난 거다. 대략 아래와 같이 예를 들 수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제약회사 영업사원 일을 설명하겠다.


1. 제품 판매

영업사원을 설명해 주는 한 문장이 있다. 영업 조직에 있었던 분이라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숫자가 인격이다.” 여기선 숫자란 매출액을 뜻한다. 보통 한 지점에서 지역별로 담당자가 지정이 된다. 그 지역에 맞춰 매월 판매금액이 정해진다. 사원별로는 매월, 연간 판매금액이 정해져 있으며 초과 달성 시 성과급이 나온다. 지점별로도 마찬가지로 월별, 연간 판매금액이 정해져 있다. 초과 달성한 지점이나 영업사원은 인사 고과에서 플러스 점수를 얻게 된다.

물건을 잘 파는 사람은 회사 생활하기 편하다. 모든 품의를 쉽게 통과한다. 영어로 치면 free pass라고 할 수 있다. 쉽게 판촉비를 타내고 거래처를 늘려 가며 한 달중 20일쯤이면 그 달 목표금액을 채우는 뛰어난 영업사원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회사 생활하기 아주 좋고 재미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아주 탁월한 5% 미만의 영업사원 얘기다.


2. 판매대금 수금

내가 직장생활 초기 2년 동안 다닌 대기업은 특성상 수금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다른 회사에서 거래처에서 잔액의 30% 이상을 수금받으러 노력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매월 말일이면 병의원에서 정장 차림으로 대금 결제를 위해 거래장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영업사원들이다.   


3. 병원 관계자들과 친분 쌓기

이게 제일 어렵다. 우리나라 제약회사의 개수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똑같은 성분인데도 만드는 회사가 50개, 100개가 될 수도 있다. 제품명 역시 그렇다. 그 100개 중에 내가 파는 1개 제품이 선택받아야 병원에서 처방이 나오고 매출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과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영업사원의 역할이다. 이를테면 A병원에서 고혈압 약을 많이 처방한다고 한다. 그 병원과 거래를 트기 위해 몇 군데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방문할까? 보통 제약회사 마케팅팀에서는 IMS 데이터를 기준으로 일정 금액 이상의 약을 처방하는 자료를 얻어 분석 후 각 지점에 뿌린다. (IMS는 글로벌컨설팅 시장조사업체인 한국아이큐비아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로, 약국 외에도 의원, 병원, 도매업체 등 다양한 패널을 활용한다. IMS는 패널 요양기관들이 공급업체, 즉 제약사로부터 받는 유통‧사입 자료를 토대로 데이터를 구축한다. [출처] [Pharm&Tech] 유비스트? IMS? EDI? 의약품 처방액 데이터를 알아보다| 작성자 JW그룹 미디어 채널)


위 자료를 토대로 영업사원들은 각기 할당된 구역에서 의약품을 많이 처방하는 병원에 있는 의사를 만나고 설득한다. 보통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려면 2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진료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환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의사를 만나는 것이라 만남 시간도 길어야 3-4분 내외다. 처음 만나면 상대방은 나한테 관심도 없을뿐더러 내가 건네는 명함과 제품 브로셔를 받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리고 인사하고 끝난다. 그 사이에 상대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이 친구의 제품은 써주고 싶게끔 만드는 게 영업사원의 일이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신입사원 때는 잘 나가는 선배들의 여러 일화를 모방하며 나만의 색깔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신입사원 시절 우리 지점의 지점장님은 매주 월요일이면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본인이 영업하면서 겪었던 여러 일화를 말씀해주셨다. 정말 그 이 00 지점장님은 현역으로 일할 당시 자기가 맡은 지역을 평정하셨던 분이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본인이 새로운 수액 제품을 한 대학병원에 납품할 당시 제품에 대한 클레임을 예방하기 위해 한 달간 퇴근 후 지점의 모든 사원을 병동별로 저녁 11-12시까지 배치해서 무마했다는 얘기, 신입사원의 한 달 매출 목표액이 1000만 원인데 본인은 2000만 원을 달성하게 된 얘기, 그 과정에서 겪었던 힘들었던 이야기, 거래처 의사 선생님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일 등 내겐 무협지 같은 일들이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펼쳐졌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후 나 역시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잘 나가는 영업사원이 되기 위해 담당 거래처 의사, 간호사 선생님(처방은 의사가 하지만 직접 환자를 대하고 주사를 놓는 분은 간호사)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거래처 현지 맞춤형 전략을 써봤다. 아주 잘 먹혔다.


B내과는 투석하는 사람들로 인해 아침 7시 정도면 문을 연다. 그럼 난 7시 30분쯤 병원 근처의 제과점에서 회사 법인 카드로 양손 가득 먹거리를 사고 병원 문을 연다. 그리고 원장님과 수간호사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먹거리를 안긴다. 그날 병원 상황에 따라 간단히 나올 때도, 운 좋으면 의사 선생님과 차 한잔 하면서 10분 정도 얘기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A회사의 영업사원인 내 존재를 거래처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C 소아과에서는 의사 선생님에게 손편지도 써봤고 막내 간호사 선생님에게는 후배와의 소개팅 주선을,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다른 간호사 선생님에게는 다이어트 음료를 박스째로 사서 안겼다. 물론 그 당시는 지금처럼 판촉 제한 같은 것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D내과의 의사 선생님은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진료시간은 환자가 항상 2-30명 정도 기다리고 있어서 진료시간 때 비집고 들어가 만나는 일은 시간 대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의 집을 여쭤본 후 자택을 방문하는 전략을 썼다. 간혹 의사 선생님 대신 사모님이 계실 때가 많았지만 그럴 경우를 대비해 약 3만 원 내에서 중년 남녀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서 드리곤 했다.


선배들이 써먹었던 여러 전략, 내가 새로 개발한 방법들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내 매출액 달성은 점점 쉬워졌다. 이 일에 적응할 때까지는 정말 힘들었다. 거래처에 처음 들어갈 때 잡상인을 대하는 듯한 관계자의 눈빛, 원래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야 하는 마음속의 갈등, 월말이 다가오는데 매출액을 채울 수 없을 때의 다급함, 회사에서 매주 영업 회의하며 받는 스트레스, 이기적인 선배와의 마찰 등 어려운 점은 항상 있었다.    


4. 리베이트

일단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일이다. 당시엔 내가 파는 제품을 병원에서 처방하면 병원에 10~15% 정도의 현금이나 상품권을 제공했었다. 그걸 당연히 여겼고 그 때문에 회사 법인카드로 한 달에 2천만 원 가까이 써본 적이 있다. 리베이트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같은 가전제품으로 대신할 때도 있었고 주유소에서 5만 원짜리 매출전표로 만들어서 거래처에 전달했던 기억도 있다.


5. 운전

보통 사람들이 1년 주행거리가 2만 km 내외다. 난 2년 동안 6만 km를 뛰었다. 야간 운전하다 졸려서 사고 날 뻔한 적이 부지기수다. 운전 미숙으로 차를 여기저기 긁었던 일, 접촉사고, 택시 등 여러 차들과의 사고 등 차량 관련 일은 수시로 터졌다. 더군다나 신입사원 시절 중고로 샀던 대우자동차의 누비라는 엔진만 빼고 차의 다른 부분은 모두 수리할 정도로 심각했다. 변속기 교체, 서모스탯 교체, 냉각수가 새서 고속도로 요금소 앞에서 차가 멈췄던 일, 브레이크 밀림, 타이어 이상 등 누비라를 타며 차 수리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배울 수 있었다.  


6. 정장 차림, 회집에서 느낀 점

영업사원의 특성상 접대도 많이 한다. 그래서 맛있다고 유명한 고깃집과 일식집은 많이 가봤다. 또한 소득이 높은 의사 직업군의 특성상 선택 메뉴 역시 최고급이었다. 그런 접대를 많이 하다 보니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먹는 것 수준은 의사 수준으로 맞춰져 버렸다.

 

영업 사원 3년 차 국내 대기업에서 외국계 회사로 막 이직하기 전 가족들과 회를 먹기로 했다. 동생이 음식점을 예약했고 막상 들어간 음식점은 보통 집 근처에서 볼만한 회센터였다. 한참 음식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데 “나 혼자서만 왜 맛이 없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접대를 많이 하다 보니 높아진 내 입맛을 깨닫게 됐다.


또 일할 때 입는 옷이 정장 차림이다 보니 매해 양복은 2-3벌 정도, 구두 1-2 켤레, 셔츠와 타이는 10벌 정도 사야 했다. 또한 너무 싸 보이는 옷은 안되니 일정 브랜드 이상의 제품으로 사다 보면 그 역시 한두 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영업사원 일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난 초기 1년간은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영업사원 직무도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고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외향적인 사람인 것처럼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발굴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있었다. 맘속에 배수진을 쳤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잘한다고 인정받은 후에 떳떳하게 나가고 싶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1달이 되고 계절이 바뀌고 1년이 지났다. 그 1년 동안 일요일 저녁이면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싫어 울 때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쌓은 노력이 변곡점을 맞이해 겨우 살아남았다.


못한다고 질책을 받을 때도, 잘한다고 윗분들에게 칭찬받을 때도 있었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있있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 의자에 앉아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릴 때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듀스의 노랫말이 머릿속에 맴돌지만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볼 땐 웃고 있지만 내 속 사람은 가뭄에 시든 땅처럼 차츰 말라갔다.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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