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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n 22. 2022

내가 운동을 하게 된 계기 그리고 가라테

2006년 초 ‘거칠마루’라는 영화를 늦은 밤 보게 됐다. 내용은 무술 고수들이 한 산에서 만나서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다. 가라테, 택견, 유도, 킥복싱, 우슈, 절권도 등이 나왔었다. 보는 내내 “멋있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동작의 날렵함, 보는 순간 “저 사람은 나보다 세겠구나, 건드리면 안 되지”라는 일종의 전쟁 억지력 같은 원초적인 느낌이 부러웠다.


예전부터 늘 강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몇 번 노력한 대로 잘 되지 않으면 금방 접어버리는 내 성격상 몸 쓰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운동신경의 발달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디고 순발력이 나쁘며 힘도 없었다.


당시 직장인 4년 차였던 나는 29살이지만 얼굴은 피곤에 절어 부어있고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불룩 나온 ET가 되어 있었다. 그 영화를 보는 순간 결심했다. 이젠 나도 배부른 ET에서 자연스레 상의를 벗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남자가 되어보자고... 급한 성격 탓에 결심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합계 10단이 넘는 무도인인 가장 친한 친구가 생각났다. 이번엔 그 녀석을 활용했다. 그 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을 지낸 00 친구다. 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 단어장 대신 권법 책을 들고 다니는 특이한 놈이었다. (나 역시 4차원이다.)


그 친구에게 물어 운동을 배울 도장을 선택했고 그 기준은 이러했다.

- 도복을 입고 운동하는 곳

친구 曰 “도복 안 입고 운동하는 곳에서는 예의보다는 주먹질을 먼저 배우기 쉽다. 운동하기 전 먼저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복싱이나 킥복싱보다는 도복을 입고 수련하는 곳에서 운동하라는 얘기였다.

- 집에서 가까운 곳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장은 자연스레 운동을 하지 않게 된다, 등록하기 전 꼭 1시간 정도는 운동하고 관장님과 상담할 것, 먼저 그 도장의 분위기를 체험해보고 왜 운동하는지, 여긴 어떻게 운동하는지 물어봐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총 2곳이었다.

집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00 복싱과 극진가라테 도장이었다. 복싱 체육관에 갔으나 10분 정도 봐주시더니 나머지 시간엔 혼자 운동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던 관장님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난 운동 처음 시작하는데 혼자서 줄넘기와 원투만 해야 한다면 금세 포기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극진가라테 도장, 열댓 명이 되어 보이는 수련생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체력단련 방식이나 배우는 모습들이 어릴 때 다녔던 태권도와 비슷했다. 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등록했다.


그곳의 수업은 요일별로 달랐다. 월수금은 1분짜리 쿠미테(대련이라는 일본어라고 하는데 15년 전 용어라 정확하지 않다)를 번갈아 가며 한 후 태권도의 품세와 비슷한 카타를 배운다. 그리고 미트 치는 시간도 있는데 그 시간이 가장 통쾌하면서도 아픈 시간이었다. 머리를 뺀 몸통 전체를 가리는 미트와 발차기를 할 때 쓰는 미트가 따로 있는데 실제로 미트를 잡고 있을 때의 충격량은 생각보다 꽤 컸다. 고1짜리 애가 차는 미들킥을 여러 번 받아주다 보면 온몸에 힘을 줘야 버틸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편으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미트를 잡고 있는 팔은 킥이 날아올 때마다 감전된 듯 찌릿찌릿했다. 1분씩 발차기를 하거나 몸통으로 된 미트에 정신없이 주먹을 날릴 때면 그동안 나약했던 내가 사라지고 “거칠마루”에서 나온 주인공처럼 멋있는 내가 되어가는 것 같아 흐뭇했다.

미트치는 모습

쿠미테를 하다가 여러 번 다치기도 했다. 몸은 안되지만 마음만 앞섰던 시절 되지도 않는 공격을 하다 내 손등과 상대의 팔꿈치가 부딪혀 손등에 금이 가기도 하고 발가락이 삐거나 무릎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정권 단련을 위해 주먹 쥐고 푸시업을 하다 보니 양손 정권에 껍질이 까진 상처가 매주 사라지질 않았다.


히딩크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체력훈련은 항상 화, 목요일에 했었다. 1시간 동안 서킷 트레이닝처럼 정해진 종목을 줄 서서 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두꺼운 도복이 땀에 젖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재밌었다. 다칠 때면 “내가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면서도 2년간 꾸준히 가라테 도장을 다녔고 배부른 ET에서 어느 정도 봐줄 만한 몸매의 31살 아저씨가 되었다. 그런데 난 선수할 수준은 아닌 모양인지 생각만큼 실력이 늘진 않았다. 그냥 힘든 체력 운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한창 운동할 당시의 체육관 사정은 열악했다. 여름에는 선풍기가 전부였고 겨울엔 난로가 따로 없었다. 우리가 열심히 운동해서 하얗게 수증기가 맺힌 창문을 보는 게 뿌듯했다.   


일본에서 극진가라테 총재와 여러 사범님들이 오셔서 한 자리에 모여 운동했던 기억도 난다. 올림픽 체육관의 한 건물 지하에서 서울, 수도권의 극진가라테 수련생들이 모여 간단하게 대련도 하고 체력훈련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시합에 나갈 정도로 잘하진 못해 응원만 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가라테를 배운지 2년이 지났고 점점 다른 운동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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