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약과 헌혈
요새 우리 사무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탈모약이다. 40대인 난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미혼 남성인 후배들은 90% 이상 탈모약을 먹는다. 왜 먹냐고 물어보니 탈모 증상에 관계없이 예방 차원에서 먹는다고 한다. 머리가 빠지면 모양새가 나지 않으니 연애할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런가 보다 이해했다. 후배들의 얘기로는 종로에 00 병원이 성지로 유명하다, 충남의 어느 곳에서는 1년 치 약을 얼마에 처방해준다는 말을 듣다 보니 나도 솔깃했다. 실은 나도 정수리가 3cm 정도 훤한 상태고 몇 주전 가족들과 같이 보는 EBS “명의” 프로그램에서 탈모약은 부작용이 거의 없으며 안전하니 탈모가 있는 사람은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이 탈모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봤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야 결혼 20년이 다 되어가니 탈모가 심해지면 머리를 삭발하고 다녀야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지만 약을 먹어서 탈모가 좋아진다면 나도 병원에서 처방받아 탈모약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2~30대 젊은 후배들보다는 차라리 내가 탈모약을 먹어야 하는 당사자인데, 정작 탈모약을 먹어야 하는 나로서는 망설이는 이유가 딱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헌혈 때문이다.
난 평범함 그 자체인 사람이다. 남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의지가 굳센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운동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재테크 쪽 재주가 뛰어나지도 않다. 언변이 좋은 것도 아니며 윗분들에게 아부하는 건 천성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인 내가 할 수 있는 선행 중 하나가 헌혈이다. 원래는 40대 중반의 나이에는 못해도 헌혈 80회는 하려 했는데 사정이 있어 12년 정도 헌혈을 쉬어야 했다. 그 이유는 헌혈을 하면 C형 간염검사를 하는데 헌혈의 집의 피검사에서는 내가 위양성(양성이 아닌데 양성 가까운 수치가 나오는 경우를 뜻함, 그때 뽑은 피는 폐기 처분되며 향후 재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헌혈할 수 있음, 다만 병원 정밀검사에서는 아무 이상 없는 걸로 나옴, 난 지극히 정상이지만 헌혈 검사 방법을 통과하지 못해 헌혈 불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12년 동안 헌혈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2020년 겨울 다니던 교회에서 헌혈 캠페인을 하길래 동참한 것이 다시 헌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헌혈 주관 기관은 한마음혈액원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2곳이 있다. 그중 난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서 헌혈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한마음혈액원에서는 헌혈 가능 판정을 받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올해 6월 헌혈의 집을 찾아가 재검사를 했고 다시 헌혈 가능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은 2달에 1번씩 집에서 가까운 곳을 찾아가 헌혈을 하고 있다.
헌혈하기 전 전자문진을 할 때 약을 먹은 곳에 체크를 하게 된다. 그러다 알게 됐다. 탈모약을 먹으면 헌혈할 수 없다는 사실을. 탈모약은 가임기 여성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정말 신경 써서 보관해야 한다 그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헌혈에도 영향을 미칠 줄이야, 탈모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약을 먹어 황량해진 정수리를 밀림으로 바꿔보려던 계획은 금세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렸다. 그래, 이까짓 머리가 무슨 대수라고, 어차피 난 결혼도 했고 아들도 둘이나 있다. 정수리가 조금 훤해져도 나만 떳떳하면 되지 뭐, 속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이게 마음속에선 한 번씩 고민이 될 때가 있다. 어쩌다 한 번씩은 탈모약을 먹어볼까 혼자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도 있다. 흔들리면 안 돼, 탈모약 안녕!!!!!
이미지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