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 2021년
첫 영어공부의 시작은 중1 때였다. 지금과는 달리 1990년에는 중학교 1학년이 되어야 처음으로 영어 수업이 있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배우는 걸 이해하는 것만 해도 버거웠다. 그러다 운 좋게 학교에서 심화반에 뽑혔고 중 2 때부터 Man to Man 기초영어라는 교재로 영어문법 공부를 시작했었다. 관계대명사, 분사구문 분명 수업을 들을 땐 이해가 되는데 독해할 때 영어 지문으로 보면 왜 그리 어려운지, 학교에서 하는 수업이니까 그냥 수업에 참석만 할 뿐이었다. 심화반 수업을 할 때마다 나름 공부 좀 한다는 전체 20등(한 학년이 450명 정도였음) 이내의 아이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잘도 대답을 하는데 난 그 수업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렇게 반에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맨투맨 기초 → 맨투맨 종합 또는 성문 기초→성문 종합으로 넘어가지만 난 그냥 거기서 영어공부를 멈췄다. 그리고 중3이 되어 연합고사를 치르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2달간의 여유가 있었다.
맨투맨 기초-기본 그림
(책의 제목부터 시작해 내용까지 딱딱하다 못해 부러질 것 같음, 몇 장 넘겨보고 바로 책 던짐, 너무 어려움, 하지만 위의 두 책은 내 또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거의 10번 이상은 독파했을 당시 영어교재의 양대 산맥이었음)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아이들은 겨울방학 동안 학원을 다니며 나름의 공부를 해야 했다. 그 2달을 신나게 놀아버리면 그만큼 뒤처지게 되고 그 격차는 학교 다니면서 쉽게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놀기 시작하면 고등학교 3년을 내리 놀아버릴 수 있기에 겨울방학 동안 놀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엄포도 상당했었다. 그래서 방학 동안 시내의 유명한 학원 중 하나를 골라 영어와 수학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내 성격이 특이해서인지 남들이 선택하는 유명 강사 대신 아침마다 학교 정문 앞에서 나눠주는 학원 소개 광고지를 보고 순전히 내 맘에 드는 학원과 강사를 골랐다. 그 결과 60% 이상의 아이들이 다니는 A학원을 가지 않고 비주류 학원에서 김수원(지금도 광주 쪽에서 수업하고 계신 듯하다. 김수원의 영어교실이라고 홈피도 있음, 유니크 쏙쏙 영문법 저자임) 선생님에게 유니크 기본 영어(지금은 이미지를 구할 수 없음, 대신 다른 책을 소개함)라는 책으로 공부를 했다. 학원을 다니면서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고등학교 진학을 대비해 신경 써서 공부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가서는 교과서 중심으로 영어를 배웠다. 그러다 고 2 때부터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영어 선생님을 만나 2년 동안 각종 문제집과 영어 원서를 보며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단, 그 실력은 수능에 나오는 영어 문제를 풀 정도의 수준이었다(아쉽게도 문법 실력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최남열 선생님의 특훈은 금호고 문과 아이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었다. 일단 2학년 초부터 시작해 수능 보기까지 매 학기마다 단어장을 사서 외웠고 방학 때마다 영어 원서 1권(시내 서점에 가서 본인 마음에 드는 영어로 된 책, 주로 소설이 많았고 책이 두꺼울수록 숙제 양이 많아지니 얇은 책 위주로 골랐음)을 정한 다음 해석한 것을 노트에 적어 제출해야 했다. 그 외에도 선생님께서 영어 원서를 읽다 문제 지문으로 출제될 만한 것들을 따로 스크랩해서 프린트한 다음 시시때때로 특별 숙제라는 명목 하에 주기도 하셨다. 그 양도 꽤 많았다. 그 역시 해석한 후 노트에 적어 제출할 것들이었다. 마감기한까지 숙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선생님의 사랑 어린 체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과 3개 반 130명 정도를 담당하셨던 최남열 선생님은 항상 문제풀이를 시키기 전에 우리를 한 번 훑어보시고는 문제 수준에 맞게 아이를 지목하셨다(어려운 문제는 공부 잘하는 아이를 지목하고 중간 수준의 문제는 중간 정도의 아이를 시키셨다). 학생들 이름과 개개인의 영어 성적이 모두 선생님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행여나 “이 지문 해석할 사람”하고 물으실 때면 다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얼른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친다면 그리고 그 문제를 충분히 풀만한 수준이라면 바로 선생님의 지목이 이어졌다.
영어 선생님 : 000, 너 이 문제 읽고 해석해봐
나 : 몇 문장 읽고 해석하다 막힘....
영어 선생님 : 00, 예습 제대로 안 했네, 앞으로 나와
나 : (앞으로 나가서 손바닥 5대 맞음)
영어 선생님 : 들어가, 다음부터 예습 제대로 해라
나 : 네
워낙 학생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주신 선생님이기에 맞아도 기분이 언짢아지는 일은 없었다. 아마 나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문과 아이들 모두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랬기에 선생님이 이끄시는 대로 밀도 높은 수업도 곧장 따라갈 수 있었고 그 결과 내가 다니던 학교는 영어 성적만큼은 광주 시내에서 Top 5 안에 들게 되었다(원래 종합 성적순으로는 광주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 중간 정도 하는 학교였다. 하지만 영어 성적만큼은 수준급의 학교였다, 최남열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은 정년 퇴임하셨겠네요, 몸 건강히 지내시길 제자는 기도합니다) 그렇게 수능시험을 치렀다. 점수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망쳤습니다. 다만 영어 점수는 자신 있게 공개할 수 있어요. 영어 선생님의 열정적인 수업에 힘입어 2개 틀렸습니다.
대학에서는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냥 실용영어라는 강의에서 일반 원어민과 하는 학원 수업과 비슷한 강의를 들었을 뿐이었다. 2년 후 군대에서는 영어 순해라는 문법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말년에 3번 정도 완독 했다. 그렇게 지내다 2000년 초반에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이하 영절하)”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그 이후로 문법 공부는 접었다. 그 책에 나온 6단계의 공부 방법 중 3단계(1단계는 영어 테이프 1000번 이상 듣기, 여기서 1000번은 상징적인 수로 그만큼 많이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테이프를 받아 쓴 다음 원어민과 같은 속도로 따라 읽는 게 2단계입니다, 3단계는 궁금한 영단어를 Collins Cobuild사전에서 찾은 다음 손으로 받아쓰고 따라 하고 사전에서 모른 단어 나오면 다시 받아쓰고 따라 읽고 무한 반복)까지만 하고 영절하에 나온 공부방법을 그만두게 됐지만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제대하고 토익 점수가 총 580→660→780까지 수직 상승했다. 그중 LC가 420 이라면 RC가 360 정도로 듣기는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문법 공부를 소홀히 해서인지 읽기 점수는 형편없었다. 영절하에 나온 공부법으로 해본 결과 듣기 실력은 확실히 올라갔다.
그렇게 복학 후 4학년이 되었다. 나름 영어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문법은 공부하지 않았기에 토익 800점을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토익 800점이 넘어야 취업서류를 낼 수 있는 유한킴벌리, LG전자 등을 어쩔 수 없이 놓치게 되었다. 물론 지원서류 낸다고 다 붙었던 건 아니지만 800점을 못 넘은 토익 때문에 지원을 못한 것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그렇게 토익 800점을 넘지 못한 점수에도 대기업 C0와 외국계 회사 B00, 벤처회사 총 3군데 회사를 갈아치웠고 회사 다니는 동안 공부를 하지 않아서 토익 실력은 퇴보하는 듯 했다. 1~2년에 한 번씩 꾸준히 시험을 쳤던 결과는 의외였다. 770점 정도가 최고로 평균 700점 대의 성적을 올렸다.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학교 다닐 때와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보니 점수가 3~4년 전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았던 신기한 경험을 했다.
5년의 회사 생활 후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2009년과 2010년의 소방관 필기시험에는 영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토익 800점이 넘으면 가산점 5점을 받을 수 있었다. 2008년 12월에 치렀던 토익 시험에서 800점을 간신히 넘겨 가산점 5점을 꽉 채울 수 있었다. 그때 어떤 교재로 공부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MBA 준비한다고 영어공부를 했던 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필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량진의 공무원 학원에서 이재훈 선생님(지금도 영어 수업을 하시는 중, 공무원 수업 대신 G-TELP 등을 강의하시는 듯함, 그분 특징이 토익, 공무원 시험 따로 공부할 필요 없다. 영어 공부는 하나라는 게 지론임, 확실히 그 말이 맞음)을 통해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어 문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그리고 학원 교재, 수능 영어 특강, EBS 교재를 보면서 문법을 외웠다. 그렇게 공부해서 결국엔 소방관 시험에 최종 합격을 했고 합격하고 3주 후에 치른 토익 시험에서는 835점을 받았다. 역시 그동안 부족했었던 문법 공부를 보완하니 인생 최고의 점수가 나왔다.
그 뒤로 거둔 토익 성적은 다음과 같다. 2021년 초, 마지막으로 치렀던 토익 시험에서는 토마토 토익 기초 편(LC, RC 포함)과 해커스 토익 단어장을 2달간 3번 정도 봤다. 책을 10번쯤 봤더라면 850도 넘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듣기 점수보다는 읽기 점수가 훨씬 높게 나왔다. 22년 동안 토익 듣기가 많이 변했다. 그동안은 미국식 영어만 접했는데 새로 바뀐 토익에서는 영국식, 호주식 영어가 등장했다. 특히 영국식 영어는 정말 어려웠다. 난 어렵게 느꼈지만 시험장에서 보니 문제 듣자마자 바로 답을 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부러웠다.
이렇게 나의 영어 공부 및 교재 변천사는 끝이 났다. 2021년 토익시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이젠 토익점수보다도 Free talking 실력을 기르고 싶다. 해외여행 갔을 때 버벅대지 않고 영어로 말하고 싶다. 차후 어떤 계획을 세워 공부할지는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