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칠마루 Jan 07. 2023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본 후

1991년 학교 폭력 실제 경험담

넷플릭스에서 더 글로리라는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를 보게 됐다. 한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들에게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하고 가해자들에게 자신이 당한 걸 고스란히 돌려주는 내용이다, 사적 복수의 끝판왕이다. 18년 동안이나 벼르고 별러 복수를 완성해가는 송혜교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를 괴롭히는 가해자들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왜 그랬냐면 그 드라마를 보는 내내 괴롭힘을 당하는 송혜교의 모습이 마치 내 일 같아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약 30년 전에 당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이야기 몇 가지를 써본다.     


등장인물 : 윤 00(가해자, 겉으로 보면 선생님들이 좋아할 만한 얌전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     

아마도 그 일이 빵셔틀의 시작이었다. 3월 개학 후 나와 윤 00가 짝꿍으로 같이 앉게 되었다. 그로부터 1달쯤 지나자 윤 00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부탁이 시작되었다.


윤 : 야, 가서 빵 하나 사와

나 : 싫어, 내가 왜?

윤 : 아, 싫어, 그래 알았어...    

  

그 뒤로 윤 00의 교묘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다른 아이들의 말로는 중 1 때 같이 앉았던 짝꿍도 본인의 심부름꾼으로 만들어 여러 가지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난 중 2였지만 145c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였다. 또 싸움을 지지리도 못해 다른 아이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마치 정글에서 어미를 잃고 길을 헤매는 새끼 사슴이었다는 비유가 적절하겠다. 그에 비하면 윤 00은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빵을 사 오라는 부탁을 거절한 뒤로 내가 화장실을 가거나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울 때면 어김없이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수업시간에 제출해야 할 숙제가 사라지거나 필통의 볼펜이 죄다 부러져서 수업시간에 노트 필기를 할 수 없었다. 그도 아니면 체육시간에 입을 체육복 중 상의나 하의가 없어지기 일쑤였다. 누구인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었다. 주변 아이들은 내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키득대며 웃지만 혼자서 미치고 팔짝 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못난이처럼 당하는 수 밖에는. 그 결과 숙제를 제출하지 못해 매를 맞거나 체육복이 없어서 선생님께 혼나고 노트 필기를 못하니 수업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정글(그 표현이 정확하다. 말이 학교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그 곳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말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준다)에서 힘이 약한 내가,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날 괴롭히는 그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윤 00가 교통사고나 기타 다른 일로 죽어버리길 얼마나 많이 기도했던가! 내가 괴롭힘을 당할 당시엔 이런 일이 그냥 친구 사이의 짓궂은 장난으로만 여기는 분위기여서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지만 이 일로는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오롯이 내 힘으로 이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싸워서 이기는 건 애초에 선택지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아이의 말에 순응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윤 00가 내게 한 일은 위에 써놓은 것을 제외하고도 방석 밑에 압정을 깔아놓는다거나 점심 도시락 중 반찬통을 숨겨놓아 내가 맨밥만 먹게 만드는 일, 소지품에 몰래 가래침을 뱉어놓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고 남들이 장난으로 여길만한, 들켜도 크게 혼나지 않을 그러나 당하는 당사자는 미쳐버릴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졌다. 그나마 2달 넘게 그런 교묘한 폭력에 오로지 비폭력으로 대응한 내가 대견스러웠다. 그와는 달리 속으로는 얼마나 억울했던지 윤 00에게 칼 들고 설치며 화풀이를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국엔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난 윤 00의 새로운 셔틀이 되었다. 빵을 사 오라면 매점에 부리나케 달려가서 원하는 빵을 대령하고 방과 후 다음 날 아침에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하면 집에 가서 초콜릿을 사놓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윤 00에게 초콜릿을 사다 바쳤다. 윤 00은 나를 친구라고 했지만 내게 윤 00은 양의 탈을 쓴 악마였다. 학교 폭력을 당하는 내게 상황을 뒤바꿀만한 힘이 있었다면 당한 것의 배 이상을 그 아이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드라마에 나오는 송혜교의 화상 흔적처럼 남들 눈에 드러날 정도의 폭행은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보다 힘이 없고 약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모든 형태의 말과 행동은 당시 14세 소년의 몸과 마음을 심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그리고 남의 셔틀로 인생을 살아가는 건 같은 동급생 사이에서 큰 수치였다. 크게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지만 저 아이는 “윤 00의 셔틀이다”라는 같은 반 아이들의 시선 폭력 역시 내게 큰 상처를 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중 2 때의 내 마음은 늘 어두웠고 억울했으며 항상 윤 00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상태였다.     


30년이 넘은 지금 그 일을 생각하면 그냥 나쁜 놈이었네 하고 쉽게 넘겨버릴 수 있지만 1991년  당시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드라마에 나오는 송혜교의 복수가 통쾌했다. 비록 날 힘들게 했던 윤 00을 용서하지도 해코지하지도 않았지만, 그 분노를 오랜 시간 간직해 터트리는 송혜교의 모습에 속이 다 후련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그 일과 관련해서 엉킨 실타래가 조금 남아있는 듯하다. 만약 윤 00을 다시 만난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여전히 내게 그때처럼 무례하게 군다면 예전과는 다른 해법을 강구할 것이다. 이젠 더 이상은 나 혼자만 힘들어하지 않을 테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매거진의 이전글 좌충우돌 영어 공부법 및 영어교재 변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