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Mission 두 아이와 함께 청와대 관람
오늘의 교훈 2가지
맑고 추운 겨울 아침, 이 날은 2주 전에 청와대 관람을 예약했던 날이었다. 원래 1월 중순에 가려고 했으나 1~2주 전에 관람 예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깜빡 잊고 있다가 1월 말에야 겨우 관람 예약을 마쳤다. 요즘 아이들은 40대 중반의 내가 어렸을 때처럼 밖에서 노는 법이 드물다. 겨울방학이어도 학원 가는 걸 빼고는 집에서 뒹굴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청와대를 가보자고 말했다. 둘째 녀석은 듣자마자 대찬성이었다. 첫째는 잠시 고민하다 맛있는 우동을 사준다는 말에 혹해서 간다고 약속했다. 아내는 출근해서 강의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삼부자만의 간단하고도 험난한 반나절 여행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아래는 청와대 관람 계획 예상시간표다.
09:00 집에서 출발 → 10:30 을지로3가역 동경우동 도착 → 11:15까지 다 먹기 → 다시 지하철로 경복궁역까지 이동 → 청와대까지 1km 걷기 또는 경복궁 동편 주차장에서 무료 셔틀버스 타기 → 12시 청와대 관람 시작(본관, 관저, 녹지원, 영빈관) → 이후 아이들 상황에 따라 경복궁 등 관람
아내가 출근하고 아침 8시가 되었다. 9시가 넘어야 일어나는 아이들을 서둘러 깨웠다. “얘들아, 아빠가 맛있는 우동집 알아놨다. 우동 먹으러 가야지!” 둘째는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뒤따라 첫째도 일어났다. 속으로 감탄했다. 원래 두 녀석 모두 한 번에 일어나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말을 잘 듣는다. 시작부터 출발이 좋았다. 씻고 옷 갈아입고 준비하는 과정이 15분 만에 끝났다. 난 그 사이 이부자리를 개키고 얼른 청소기로 바닥을 밀었다. 오늘은 적어도 1만 걸음 이상을 걸을 예정이라고 선포한 김에 외투를 가볍게 입어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기온은 딱 0도지만 11시에는 8도로 올라갈 전망이었다. 아이들이 입으려는 오리털 파카를 놔두고 플리스 점퍼만 입혔다. 나 역시 얇은 외투 하나만 걸쳤다. 밖에 나와보니 그리 추운 것도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00역에서 내려 4호선과 3호선 지하철을 탈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서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아이들과는 주로 차를 타고 이동해 왔다. 어쩌다 한 번 버스를 타는 게 전부였다. 그럴 때마다 내 카드로 다인승 처리를 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역에 도착해서 개찰구를 통과하려니 “어라, 카드가 1장밖에 없었다.” 더구나 얇은 외투로 바꿔 입고 오는 바람에 지갑 역시 벗어놓은 외투에 남아 있었다. 수중에 있는 것은 핸드폰과 카드 1장뿐이었다. 그 카드 역시 현금 인출 기능이 없는 단순 신용카드였다. 1회용 교통카드를 사기 위해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는 없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서두를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에 다시 갔다 오는 건 나쁜 선택이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했다.
나 : 얘들아, 아빠가 지갑을 놔두고 와서 지금은 지하철을 탈 수 없어.
작은 녀석 : 왜요?
큰 녀석 : 카드로 교통카드 사면 되잖아요.
나 : 여기 교통카드 판매기는 현금으로만 살 수 있어서 그래, 잠깐 비켜서서 생각해 보자.
아이들 : 다시 집으로 가야 되는 거예요?
나 : 잠깐만, 생각 좀 해보자(사실 나도 많이 당황스러웠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카카오뱅크의 스마트출금서비스가 떠올랐다. 그걸 이용하면 다시 집에 가서 지갑을 가져올 필요 없이 근처 편의점의 현금지급기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었다) 밖에 나가서 얼른 현금 찾아오자. 1층 출구에서 20m만 걸어가면 편의점에서 돈 찾을 수 있단다.
아이들 : 네.
다행히 역 앞의 편의점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었고 아이 둘의 1회용 교통카드 구입까지 마무리했다. 편의점까지 가는 동안 아이들에게 여러 이유로 인해 계획된 일정이 틀어지더라도 짜증 내지 말고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는 말을 했다. 실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짜증 내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한 내게 100점을 주고 싶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곳곳에 놓여있는 인명구조기구를 궁금해하길래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별 일없이 을지로3가역까지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두 번째 목적지인 동경우동이 있는 8번 출구로 올라가는데 바람이 씽씽 분다. 싸늘하다. 내가 춥다면 아이들도 추울텐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두 녀석 모두 춥다고 외친다. 아뿔싸,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아이들 감기 걸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빨간 등이 켜졌다. 긴급 상황이었다. “얘들아, 추우니까 뛰자, 출구까지 아빠랑 달리기 시작”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옷을 얇게 입었으니 몸이라도 움직여 체온을 올려야 했다. 8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서둘러 우동집 안으로 들어갔다. 개업시간이 되자마자 들이닥친 그날의 첫 손님이었다.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원래 음식을 늦게 먹는 아이들이라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는데 배가 고팠는지 11시가 되기도 전에 다 먹어치웠다.
다시 경복궁역으로 가기 위해 우동가게 밖으로 나오니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아빠가 잘못 생각해서 너희들 옷을 얇게 입혔다. 아빠 잘못이다, 얼른 지하철 타러 가자” 다행히 애들도 군말 없이 잘 따라주었다. 경복궁역까지 가는 동안 지하철이 따뜻하니 30분 정도 지하철을 더 타고 있을까, 경복궁역 근처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는 게 나을까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교통카드만 챙겨줬어도 그냥 지하철을 타고 있으련만 1회용 교통카드로 다시 요금계산 후 재구매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냥 근처 카페에서 몸을 녹이다 청와대 관람시간에 맞춰 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따뜻한 지하철에서 내려 찬 바람이 부는 출구를 통과해야 한다. 출구로 나가기 전 운 좋게 지하에 카페가 밀집된 곳을 찾아 그리로 들어갔다. 따뜻했다.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아이들을 앉히고는 무적의 장비인 스마트폰을 쥐어주며 “게임해”를 외쳤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아이 모두 “아빠 최고”란 말이 바로 나왔다. 혹시나 감기 걸리면 안 되니 일부러 아무것도 안 마신다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게 했다. 나 역시 따뜻한 카페에서 차분하게 차 한 잔 하며 이후 청와대까지 걸어갈 것이냐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1만 걸음을 걷자는 오늘 여행 취지에 맞춰 1km 걷기로 결정했다. 대신 인터벌 달리기가 포함된 걷기다. 11시 35분쯤 나와 경복궁역에서 청와대로 1km 인터벌 달리기와 걷기를 시작했다. 둘째는 신이 나서 달리고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첫째를 억지고 잡아끌며 나 역시 달리기 시작했다. 7~80m 달리고 멈추었다 걷기를 반복하니 어느덧 청와대 앞이다. 이상하게 귀에 인이어를 꼽은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여기는 중요한 곳이니 이렇게 지키고 있는 아저씨들이 많다”라고 애들에게 알려줬다. 아이들 역시 신기한 듯 청와대 주변을 경비 중인 경찰들을 둘러보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많은 인원이 지킬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묻어놓았다.
드디어 오늘의 목표인 청와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작았다. 40% 이상의 공간을 관람불가로 지정해 그저 최근까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였던 곳일 뿐이었다. 그나마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의 초상화를 본 것이 제일 나은 정도였다. 그 외에는 소감이랄 게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나니 꽤 지쳐 보였다. 그래도 내친김에 안국역 근처 카페촌과 헌법재판소까지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둘째가 말했다. “아빠, 다리 아파요”, 이에 질세라 첫째도 “아빠, 배고파요” 헐, 너희들 우동 먹은 지 2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배고프다고? 햄버거를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 네이버 검색을 했다. 집 근처에 노브랜드 버거가 없었는데 마침 종각역 근처에 있는 걸 찾았다. 그런데 그곳까지 약 2km 걸어가야 한다. 맛있는 햄버거가 있다며 애들을 살살 구슬렸다. 그리고는 노브랜드 햄버거 가게까지 또 걸었다. 1만 2천 걸음, 오늘의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아이들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외대역으로 가서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오늘 하루 실컷 애들을 놀렸으니 저녁에 꿀잠 재울 생각에 흐뭇했다.
오늘의 교훈 2가지 : 겨울철에 애들 옷은 절대 얇게 입히지 말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서 짜증 내지 말고 침착하게 생각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