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어느 날
첫 시작은 코로나로 인해 2020년 2월에 계획했던 대만 여행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원래는 아내의 휴가(00 대학의 한국어 강사, 일반 학기와 달리 12월에 2주 쉬고 다시 겨울방학 수업을 하고 3월에 시작해 5월 중순에 끝나 10일 정도 쉰다)에 맞춰 19년 12월에 가냐, 아님 조금 더 여유가 있는 20년 2월에 여행을 가냐 시기를 두고 망설였다. 아무래도 여유 있게 준비하고 싶어 20년 2월이 더 나을 것 같아 여행 가기 서너 달 전쯤 항공권과 숙소 예약을 모두 마쳤다. 그런데 그건 나의 크나큰 오판이었다. 어라, 20년 1월 중순부터 심심찮게 사스나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퍼진다고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별 일 없이 가라앉을 거야, 2월 중순이면 여행 가는데 그때쯤이면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다.
방송을 통해 접한 대만과 중국의 경우 코로나로 인해 아픈 사람들이 넘쳐났다. 우리나라 역시 그 위력에 놀라 움츠러들었고 3년 동안 고생을 했다. 아픈 사람들이 넘쳐난다는데 어쩔 수 없이 대만여행을 취소했다. 다행히 숙소는 환불이 됐지만 몇 푼 아껴보려 예매했던 저가항공사 에바항공에서 환불받기까지 아내가 엄청난 고생을 했다. 일단 그곳은 전화연결이 매우 매우 힘들었고 내부적으로 지침이 내려온 건지 상담사가 어찌해서든 환불을 안 해주려고 갖은 애를 썼다고 아내는 말했다. 그 와중에 대만 사람들은 환불을 해주지만 그 외 지역에서 예매한 사람들은 환불받기가 어려웠다는 후기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그렇게 아내와 내가 계획했던 첫 대만 여행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작년 9월 이후부터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가고 싶었다. TV를 보다 채널을 돌릴 때 홈쇼핑에서 여행 관련 방송을 할 때면 아내랑 나는 "우와 멋있다, 가고 싶다”라는 찬사를 쏟아내며 멍하니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러다 작년에 1번, 올해 초에 1번 홈쇼핑 여행상품을 덜컥 예약했다가 취소하길 반복했다. 여행 상품을 보고 있으니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려 홀린 듯 전화예약을 하고 그로부터 2~3일이 지나 해피콜이 올 때면 제정신을 차린 나는 취소하길 반복했다. 원인은 언제나 부족한 통장 잔고 때문이었다. 대출원리금 상환에 연료비, 난방비, 전기요금 등 물가는 무섭게 올라가는데 올해 월급은 1.7% 올랐다. 실질적인 연봉 삭감이다. 주변에선 지금 같은 시기에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 그렇게 말을 하지만 "이 월급으로 살아봐라"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살아보면 알게 된다. 항상 돈이 부족해 허덕허덕 댐을.
안 그래도 체감상 40% 넘게 인상된 대출 상환금에 두 배쯤 오른 난방비 고지서를 보고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지 했으나 결국은 어제 막아놓고 막아놓았던 둑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대만 여행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고는 도저히 못 참고 우리 부부는 거의 동시에 “우리 그냥 여행 가자, 돈 생각하지 말고” 말했다.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들 두 녀석이 귀가 솔깃했는지 “좋아요, 진짜 여행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6년 동안 모아뒀던 청약저축의 배를 갈라 여행경비 삼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그 돈은 절반씩 나눠 여행경비와 기타 생활비로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갖다 쓸 수 있는 여유분이 있어 다행이었다. 여행 시기는 2주 뒤로 잡았다. 싱가포르냐, 전에 못 간 대만이냐 망설이고 망설였다. 검색의 달인인 아내는 항공권 검색에 매달렸다. 난 트리플이라는 어플의 도움을 받아 숙소를 알아봤다.
문제점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미 항공권이 많이 팔렸고 남아 있는 것들은 출발 시간대가 나빴다. 더구나 애들은 모두 여권이 만료되어 새로 발급해야만 했다. 요새 발급기간만 10일에서 2주라던데 애들 여권을 제때 발급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정 안되면 단수여권이나 긴급여권을 발급받는 걸로 하자고 대체방안을 세웠다. 3년 전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 예상비용은 계획보다 초과된 금액만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역시나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라서인지는 몰라도 항공권 출발 시간대, 숙소 모두 만족스러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2시간 넘게 양손에 스마트폰과 탭을 들고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던 나와 아내는 결국 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22시 30분이 넘었지만 잠들지 않고 눈이 초롱초롱한 상태였다. 여행 관련 소식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내 : 얘들아, 갑작스레 여행을 가려고 하니 항공권도 그렇고 숙소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엄마, 아빠가 2시간 동안 알아봤는데 건진 게 하나도 없네. 남아있는 비행기나 숙소는 비싸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것들이야. 그러니까 이번엔 국내 여행으로 가자. 대신 엄마, 아빠가 내년 2월 전까지 꼭 해외여행 갈게.
아이들은 해외여행을 가지 못해 실망한 듯 보였다. 사실 조금 투덜대기도 했다. 그래도 한 살 더 먹은 6학년, 4학년이 되어서인지 나름 엄마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3년이나 참으며 견뎌왔지만 이번엔 여건이 되지 않아 다시 1년을 더 참기로 했다.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내년에는 꼭 여행 가기로 아이들과 약속했으니 다신 그 약속을 물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여행 가기 전에 미리 여권도 만들고 항공권과 숙소도 꼭 좋은 곳으로 선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11월이 될지 내년 2월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여행을 기다리며 조금씩 조금씩 설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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