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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an 25. 2023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면

외삼촌의 장례식

 24시간 근무가 끝나고 퇴근한 날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에게 숙제(라고 쓰고 자기주도학습이라 말한다. 엄마가 내준 수학, 영어 하루치 분량 끝내기)하라고 재촉했다. 그 사이 서둘러 청소를 하며 어질러진 집을 치웠다. 그 사이 퇴근한 지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이젠 잘 시간이다. 그렇다고 자리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진 않는다. 10여분 넘게 뒤척이다 까무룩 잠이 든 지 얼마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사촌동생이다.      

동생 : 형, 00여.

나 : (잠에 취한 목소리로) 으응, 잘 지냈냐? 웬일이여?

동생 : 응,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목소리가 조금 침울했음)

나 : 뭔 일 있냐? 뭔데?

동생 : 엄마가 그러는데 대전 외삼촌(외삼촌이 두 분이라 우리끼리는 거주 중인 지역을 앞에 붙여서 불렀음)이 오늘 아침 갑자기 돌아가셨다네.

나 : (깜짝 놀람) 어? 어쩌다?

동생 : 회사 출근하셨는데 몸이 안 좋아서 집으로 오는 중이셨데. 그런데 집 앞에 주차하고 내리지를 못하셨다고 해. 119구급차가 와서 병원 가셨는데.....(중략)

나 : 알았다. 어디로 가면 되냐?

동생 : 대전 00 병원에 계신데.

나 : 넌 언제 오냐?

동생 : 엄마가 낼 대체근무자 구하신다고 해서 아마 저녁 7시 넘어서나 도착할 것 같아. 형은 차 많이 막힐 텐데 내려올 수 있어?

나 : 응. 가야지, 사람 사는 도리는 해야지, 쉬는 날이라서 괜찮아. 이따 보자.. 버스로 가든, 차로 가든 어떻게든 가야지.     


아, 오늘은 금요일, 실질적인 설 연휴 첫날인데, 사촌 동생과 통화하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비행기와 기차는 안 되고 남은 건 버스와 자가용뿐이었다. 서둘러 고속버스 예매 앱을 설치하고 대전행 버스를 검색했다. 아뿔싸, 2시간 뒤인 15:30에 1자리, 21:00 출발하는 1자리 빼고는 모두 매진이다. 일단 15:30 출발 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T맵을 실행해서 대전까지의 거리와 예상 도착시간을 찾아봤다. 이런, 우리 집에서 대전까지는 169km에 4시간 40분 걸린다고 나온다. 씻고 옷을 입으며 아이들 점심을 챙겼다. 6학년, 4학년이니 아내가 집에 오는 오후 4시까지는 아이들만 집에 있어도 괜찮다. 어떤 걸 이용할지 고민하다 버스터미널까지 이동시간이 애매해 결국 차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섰지만 동서울 요금소를 지나기도 전부터 꽉 막힌 상태였다. 어느새 도착 예정시간은 훌쩍 늘어나 저녁 7시로 바뀌어 있다. 가는 내내 10km 뻥 뚫렸다가 다시 막히고 조금 원활하다 다시 막히는 것의 반복이다. 아이고, 주유 게이지가 바닥에 가까워져 간다. 어쩐지 어제 주유소 가서 기름을 넣고 싶더라니, 하필이면 한시가 바쁜 이때 기름마저 떨어져 간다.      


정확히 5시간이 지나 대전 00 병원에 도착했다. 광주에서 출발한 아버지와 누나 일행은 30분 전에 이미 도착했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멀리서 불경을 읽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어, 외삼촌은 천주교 신자인데, 웬 독경 소리가 들리지? 혼자서 괜히 의아했다. 분명 명판에 외삼촌과 사촌 형제들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맞았다. 그런데 여러 명이서 낮은 소리로 불경을 읊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여기가 아닌가? 동명이인인가 싶어 조의금을 내기 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외삼촌 장례식장이 맞았다. 알고 보니 같은 성당의 신부님과 신자들이 10분 정도 모여서 일종의 장송곡을 부르는 소리를 불경 읊는 소리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음의 높낮이가 거의 없어서 마치 절에 가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불경을 읽는 소리처럼 들렸다.   

  

영정사진 속의 외삼촌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뭐가 그리 좋으셨을까? 간단한 묵념 후 마주한 외숙모는 펑펑 울고 계셨고 사촌형제(딸 셋, 아들 하나)들은 모두 눈이 벌게져 있었다. 외숙모에게서 들은 외삼촌의 死因은 거의 심근경색 증상과 일치했다. 아직 칠순도 안 되셨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죽음에 외숙모와 사촌형제들은 슬픔과 어리둥절함이 뒤섞인 회색 빛의 모습이었다. 연휴 첫날인데도 의외로 3~40명 넘는 분들이 접객실 안을 가득 메웠다. 아버지, 누나와 함께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마치 자판기처럼 저절로 음식이 테이블에 놓였다. 돌아가신 분은 돌아가신 분이고 산 사람은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음식을 보니 자연스레 손이 움직인다. 텅 빈 속을 채우기 위해 기계처럼 밥을 먹었다. 그러다 누나와 나눈 얘기가 머릿속에 남았다.     


누나 : (눈물을 글썽이며) 그래도 외삼촌 갑자기 돌아가시는 거 보니까 참 세상 사는 거 부질없다. 아등바등 살면 뭐 해? 이렇게 죽으면 아무 소용없잖아.

나 : 누나, 그래도 아무렇게나 대충 살면 막상 죽을 때 후회한다. 

누나 : 그건 또 그렇지.

아버지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띠며 우리 얘기를 듣고만 계셨다)     


3시간의 조문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방관으로 일하며 많은 죽음을 겪었지만 아무래도 가까운 이의 장례식에 다녀와서인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특히 누나의 말처럼 애쓰고 살면 뭐 하나, 죽으면 다 끝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잘 살아야지 하는 두 가지 생각이 자리를 바꿔가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3~40km에 한 번씩 마주치는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문득 슬퍼졌다. 운전하는 내내 돌고, 돌고, 돌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 하루를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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