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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Mar 26. 2023

믿었던 도끼에 제대로 찍힌 내 발

小貪大失

지난 2월, 부산으로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여행일기를 쓰려했으나 여행이 마무리될 무렵 급한 일이 생겨 한동안은 다른 소재로 글을 쓰게 됐다. 암튼 여행 마지막 날,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채우며 세차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18시에 부산에 사는 친구 가족과의 저녁 약속도 있어 괜히 바빴다. 주유소 어플을 켜고 약속장소에서 가까우며 휘발유 가격이 싸고 세차가능한 주유소를 찾았다. 아직 시간은 17시 15분,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45분이나 남았다. 충분히 기름 넣고 세차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속장소에서 3km 떨어진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먼저 넣고 자동세차를 하려 했다. 아니 이게 웬걸, 저녁 6시도 아닌데 벌써 마무리를 하고 있는지 세차장 쪽에서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혼자서 마음이 급해졌다.


원래 주유하러 가면 현대기아차(주유구가 차량 운전석)가 과반이 넘는 우리나라 사정상 주유소 주유기의 오른편 쪽은 항상 붐비지만 GM이나 르노차량의 경우(모델에 따라 다름)에는 대부분 주유구(기름을 채우는 곳)가 조수석 쪽에 있어 주유소 주유기의 왼편을 이용하게 된다.      


그림(차 주유구, 주유소 주유기)을 참고하세요

qm6 주유구, 자동세차기, 주유소 주유기

그런데 그날따라 오토바이 한 대와 르노 SM3가 셀프주유기 2대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한시가 급하지만(마음은 벌써 기름 넣고 세차 끝났음) 오토바이와 SM3가 기름을 다 넣을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했다. 보통 때라면 그들이 마무리하고 차를 뺄 때까지는 기다렸을 것이다. 항상 서두르면 탈 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자동세차기 쪽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자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는 세차장 쪽으로 먼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뿔싸, 후진 중에 룸미러 사각에 있는 전봇대를 못 보고서 가볍게 부딪혔다. 그냥 후방 카메라만 확인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급한 마음에 사이드미러만 보고 후진하다 생긴 사고였다. 다행히 가족 중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ㅁㅁㅀㅁ하ㅓㄹ맹ㅎㄹ" 아내와 아들의 타박이 바로 시작되었다. 내 잘못이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운전경력 20년이 넘었는데 혼자 후진하다 전봇대와 접촉사고를 낼 줄이야.... 차에서 내려 확인하니 뒤 범퍼 운전석 부분이 조금 찌그러지고 트렁크 덮개 아랫부분의 도장 부분이 10cm 정도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르노차량이 수리비가 비싸지만 180만 원 정도면 수리가 될 것 같았다(범퍼 교환 100, 트렁크 덮개 판금 및 도장 최대 80). 이건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수리할 게 아니고 여행 끝나고 집으로 올라가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1달 가까이 미루다 3월 21일 친구의 소개로 집에서 15km 거리의 공업사에 차를 맡겼다. 실은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 내 뒤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런 소원을 비는 내가 괘씸했는지 들어주시진 않았다.


차를 수리하기 위해 고를 수 있는 방법은 정석과 편법 두 가지가 었었다.      

1. 르노 AS센터에 수리 의뢰 → 센터에서는 근처의 도봉사업소로 차를 보냄(트렁크 덮개 판금과 도장 때문에 센터보다 더 큰 사업소로 보냄) → 르노 정품 사용 → 보험 할증이 되지 않는 200만 원 안쪽으로 마무리 → 다만 총수리비의 20%인 40만 원 내외를 내가 부담     

2. 친구(소방관 입사 동기, 소방관 들어오기 전 00 손해보험 사고 보상 5년 근무, 차량 사고 전문가, 친구의 얘길 들어봐도 수리비는 200만 원이 되지 않음)가 아는 공업사에 수리 의뢰 →  자가 부담하는 수리비를 조금이라도 줄임    

  

꼼짝없이 내 용돈(한 달 용돈이 20만 원입니다. 요새 유부남들 정말 힘들게 삽니다)에서 해결해야 했기에 선택은 당연히 2번이었다. 주변에서도 아는 공업사에 수리를 맡기면 자부담 수리비를 최소한으로 줄여준다는 얘길 들은 적도 있기에 내심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공업사의 대표가 친구와 같이 00 손해보험에서 근무했던 선배라기에 더욱 믿음이 갔다. 그렇게 차를 맡기러 공업사에 들어갔다. 차량 등록증을 내고 이것저것 얘기할 때였다. 괜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때 차 맡기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게 더 나을 뻔했다.     


대표 : 고객님, 일단 00 친구라고 하니 엔진오일은 서비스로 갈아드리겠습니다. 아마 차 수리는 금요일에서 토요일 오전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자부담 수리비를 말하지 않고 엔진오일 서비스를 얘기하는 게 이상하긴 했다)

나 : 사장님, 그래서 견적은 얼마나 나올까요?(원래 이게 순서 아닌가? 당연히 수리 맡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수리비가 제일 궁금할테니 말이다)

대표 : (일부러 즉답을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글쎄요, 견적은 제가 확인하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나 : (순간 대답을 왜 피할까하고 의아했으나 친구의 소개로 알아서 잘 해줄거라는 생각에 아무 말 안 함) 그럼 전화 주세요, 수리 잘 부탁드립니다.      


이틀 후, 공업사의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QM6 뒤 범퍼가 재고 부족이라 토요일 오전에나 수리가 마무리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 통화에서도 수리비 얘기는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조금 의아했지만 그래도 참았다. 설마 친구 소개로 갔는데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다. 이틀이 지난 토요일, 차를 찾아가라는 수리기사의 전화가 왔다. 수리비를 물어보니 총 205만 원의 비용이 들었고 자부담 수리비는 41만 원이란다. 듣자마자 속으로 각종 동물 욕이 나왔다. “아, 낚였구나” 친구 소개를 믿고 차를 맡겼더니 제대로 호구 인증당한 셈이었다.     


들끓는 속을 가라앉히고 수리된 차를 찾기 위해 공업사로 갔다. 내가 예상한 자부담 수리비는 20만 원 내외였다. 그런데 그 두 배인 41만 원을 지불하자니 너무 아까웠다. 일부러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수리된 차를 확인하고 있으니 공업사 대표가 날 알아보고선 아는 체를 했다. 사무실로 들어가 수리내역을 확인하니 기가 찼다. A4 네장을 차지한 수리내역을 보니 후방 카메라 모듈까지 교체한(후방카메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단지 트렁크 덮개에 달려 있었을 뿐, 판금 도색하는데 그것까지 교체할 줄이야, 이걸 확인하는 순간 수리비를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짐작하게 됨)게 있어서 군말 없이 자부담 수리비로 40만 원을 결제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대표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후배 소개로 왔으니 만원을 빼준다며 웃으며 얘기했다. 성질 같아서는 그냥 확....(이만 줄임). 공업사를 소개해준 친구 얼굴이 생각나 아무 말하지 않고 나왔다. 그 친구에게 공업사 소개해줬다고 고맙다며 커피 쿠폰까지 보냈는데 이게 뭐냐고요! 친구에게는 아주 아주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며 살짝 얘기할 예정이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었다. 괜히 수리비 아껴보자고 편법을 쓰려다 제대로 임자 만난 셈이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만 45년 살아오면서 내가 편법을 쓰려고 할 때마다 제대로 된 적이 몇 번이라도 있었던가" 싶었다. 하긴 편법을 쓸 때마다 좋은 결과를 얻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다들 그렇게 잘 살던데, 난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았다. 차라리 정석대로 그냥 르노 AS센터에 맡길 것을 하고 혼자서 멋쩍게 웃었다. 그랬다면 과잉 수리는 없었을텐데,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오늘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오늘의 교훈 : 괜히 편법 쓰지 말자. 정석대로 가자! 小貪大失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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