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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pr 28. 2023

하트세이버를 아시나요?

13년 근무하며 3번 받음

하트세이버란?

2008년부터 적극적인 응급조치를 위해 시행된 제도로 갑자기 심장이 멎은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귀중한 생명을 살린 구급대원 및 일반 시민 중에서 선정되는 이를 말한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구급대원으로 5년 동안 약 5400건 정도의 구급활동을 하며 하트세이버 표창을 딱 3번 받아봤다. 워낙 출동이 많은 수도권 소방서였지만 이상하게도 잦은 출동과는 달리 하트세이버 표창과는 인연이 없는 편이었다. 상복이 많은 이들은 3년 만에 4개의 표창을 받기도 하던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2016년, 2017년, 2019년 세 번의 표창을 받게 된 출동내역을 기억을 더듬어 쓴다.     


1. 2016. 5. 4.(표창일은 5월이지만 서류 준비하는데 1달, 심사 후 표창받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출동은 2015년 11월 또는 12월이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신고였다. 신고 내용대로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이미 40대 남성 환자분이 1층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1년 반째 호흡을 맞춰온 후배와 환자를 태우고 환자를 처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인 00 대학병원(환자가 있는 곳에서 24km, 신호 무시하고 최대한 빨리 가면 25분쯤 걸린다. 보통 40분 정도 소요, 막힐 땐 측정 불가)으로 구급차를 몰고 있었다. 구급대원이라면 자기가 담당하는 곳의 지리와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교통량을 감안해 수시로 바뀌는 최적의 길을 알아서 선택해 환자를 이송한다. 마침 15시경으로 한가한 시간이었기에 가슴이 아프다는 환자를 위해 고속도로를 100km/h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처치실에 탄 후배에게서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배 : 반장님, 얼른 차 세워주세요

나 : 어, 뭐라고? 여기 고속도로 한가운데야.... 갑자기 차 세우라고?

후배 : 환자분 상태가 안 좋아져서 빨리 제세동기(지금은 심장충격기라는 명칭을 쓰고 있음,  정확하게 따지자면 심장의 떨림을 없애준다는 제세동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함) 써야 합니다. 얼른 세워주세요

나 : 잠깐만(비상등을 켜고 차를 갓길로 세웠다, 운전석에서 내려 처치실로 들어갔다)

후배 : (차가 멈추자마자 심실세동중인 환자에게 전기충격을 주려고 준비 중임-차가 움직이고 있을 때는 정확한 심전도가 측정되기 어려움, 그래서 차가 멈춰야 함) 이제 shock 줍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압박해 주세요

(심실세동이란 정상인처럼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지 못하고 바르르 떨고만 있는 상태,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으니 피가 돌지 않음, 심전도를 체크하기 때문에 구급대원이 바로 알 수 있음)

나 : (환자에게 가슴 압박 중)

후배 : (모니터를 보며 의료지도 의사와 통화 중) 현재 50대 남성 환자, 가슴통증으로 병원 이송 중 심실세동으로 인해 고속도로 중간에서 차를 세우고 shock 1회 준 상태입니다. 현재 가슴 압박 중이며....   

  

5분 정도 지나 환자의 심장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흔히 ROSC라는 표현을 씀). 예쁘게 뛰는 모습의 심전도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00 병원으로 출발해 무사히 환자를 인계했고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 환자는 건강해진 몸으로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보충설명 : 하트세이버 표창을 받기 위해선 구급대원이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병원에서 회복 후 건강하게 퇴원했다는 명확한 증거(심전도 자료 등)가 필요합니다.    

 

2. 2017. 5. 2.(2017년 3월 어느 편의점에서)     


펌뷸런스라는 말이 있다. 화재진압대에서 주력으로 쓰는 5톤 화재진압용 펌프차와 앰뷸런스를 합친 소방에서만 쓰는 용어다. 펌프차에도 구급장비를 준비해 구급차가 없을 때 펌프차에 있는 구급장비를 써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든 출동 체계다. 실제로 구급출동 시 종종 펌프차가 같이 출동할 때가 있다. 무거운 환자를 이송할 때, 교통사고 현장에서 주변을 통제할 때, 오랜 시간 심폐소생술을 할 때(10분만 해도 등에서 땀이 주르륵 납니다. 생각보다 힘들어요) 등 펌프차가 구급차와 더불어서 출동할 일은 의외로 많다.

    

그날은 펌뷸런스 대원이었다. 음식이 목에 걸려 숨쉬기가 불편하다는 환자는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호흡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 의식을 잃었다. 하임리히법으로 목에 걸린 음식을 제거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출동은 소방관 6명이 20여 분간 차례대로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급박한 현장으로 돌변했다. 거기에 구급차 1대가 더 지원출동을 해야 했다. 약 40여 분간의 구급활동 끝에 상태가 호전된 환자를 00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렇게 두 번째의 하트세이버 표창을 받게 됐다.     


3. 2019. 6. 28.(2018년 12월 축구장에서 생긴 사고)     


정말 이 환자분은 로또 당첨 대신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는 걸로 그동안 쌓아온 복을 받지 않았나 싶다. 환자는 축구 경기 도중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고 운 좋게도 상대 팀원 중 한 명이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소방관이었다. 환자는 쓰러진 지 1분도 되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받을 수 있었고(호흡이 멈춘 지 4분이 지나면 뇌세포의 손상이 시작된다고 배웠습니다) 이후 구급차 2대가 현장에 도착해 최적의 시기에 제대로 된 처치를 받았다(의료지도 의사 선생님과 통화 후 심정지에 필요한 약물 투여, 심장 압박, 기도 확보 등 병원 가기 전 받을 수 있는 응급처치를 전부 받았음). 심정지로 쓰러졌는데 1분도 안되어 심폐소생술을 받고 10분도 되지 않아 약물투여까지, 정말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최적의 코스를 제대로 거친 환자다. 평생 받을 복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누린 환자였다는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내게 있어 세 번의 하트세이버 표창 일화는 끝이 났다. 마지막 표창인 2019년 이후로는 안타깝게도 내가 본 심정지 환자들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날씨는 따뜻해지고 야외활동할 일은 점차 많아진다. 별 준비 없이 혹사했다가는 겨우내 움츠렀던 몸이 과부하로 인해 심장에 무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때를 대비해 시간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및 참고자료

https://www.korea.kr/news/visualNewsView.do?newsId=14890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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