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측정받는 날이다(일선에서는 체력측정, 체력평가 등 다양하게 불린다). 종목은 2008년 바뀐 이후로 악력, 배근력, 제자리멀리뛰기, 앉아서 윗몸 앞으로 굽히기(좌전굴), 윗몸일으키기, 20m 왕복 오래 달리기 총 여섯 개로 이뤄져 있다. 내가 일하는 지역은 관서가 많아 보통 3개 관서를 한 권역으로 지정해서 약 800명~1,000명 정도가 3일 동안 체력검정을 치르게 된다. 다만 현재 소방관으로 재직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무원 신규 임용시험 때처럼 온몸과 마음을 다해 시험을 치르는 건 아니다. 그때처럼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지 않지만 평가라는 이름이 있기에 대충 하는 것도 아니다. 재직하는 동안 체력검정 시험에선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는데 이번 시험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소방관 체력검정 종목 6가지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40대 중반이 넘은 내 나이 때문이다. 50대가 넘은 나이에도 마라톤이나 철인 3종경기를 나가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이젠 열심히 운동하고 나면 어딘가 꼭 아프다. 예전이라면 괜찮았을 텐데, 지금은 문제가 생겨 아픈 부위의 운동을 쉬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이를테면 자전거와 등산을 몇 달간 열심히 했더니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등산을 하지 않게 된다. 턱걸이와 상체 운동에 집중했더니 어깨 통증이 생겨 6주 정도는 턱걸이를 쉬어야만 한다는 등의 일이 점점 많아졌다. 최근 1년을 되짚어보면 정작 어느 한 군데라도 아프지 않고 운동했던 게 넉 달 정도다. 나머진 항상 어느 부위던지 불편해서 그 부위는 운동을 쉬거나 가볍게 해야 했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이젠 내가 40대 중반이 넘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직업을 계속하려면 체력은 필수기에 어떻게든 여기서 더 뒤처지지 않고 1cm라도 앞지를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계속 궁리 중이다.
둘째로는 코로나로 인해 3년간 체력검정을 안 했더니 4년 만인 올해 체력검정을 시작하자마자 부상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일하는 센터에서도 두 명이나 부상을 당했기에 센터장님(경찰로 치면 지구대장)이 체력검정 전날 특별히 당부하셨다.
“살살해라, 평가받다 다치면 안 되잖아. 다들 몸 생각하고 적당히들 해, 다치지 말고 알았지?”
3일간의 체력검정 기간 중 마지막 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오랜만에 각종 체력 측정기구를 보니 10여 년 전 소방관 임용시험을 치르기 위해 땀 흘려 운동하던 때가 절로 생각났다. 그 생각에 연이어 다시금 센터장님의 특별 지시 역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그래, 오늘은 열심히 하다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가자, 다치지 말자”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난 5년 동안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난 뒤 훈장처럼 허리디스크를 얻었다. 그래서 제자리멀리뛰기 종목은 일부러 평가를 치르지 않았다. 예전처럼 모래판에서 뛰는 멀리뛰기는 모래가 충격을 흡수해 괜찮았지만 2019년부터는 고무판(체대 입시처럼 고무판에서 뛰면 자동으로 기록이 측정됨, 충격흡수 전혀 안됨)에서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는 걸로 바뀌었고 점프 후 착지할 때의 충격으로 허리 부상을 입은 사람이 꽤 많았다. 나 역시 2019년 고무판에서 뛰어보고는 허리가 아파 2주 정도 고생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보나 마나 이번에 고무판에서 멀리뛰기를 할 경우 틀림없이 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오를 것 같아 과감하게 포기했다.
체력검정 점수표
악력 56.9kg, 배근력은 181kg, 윗몸일으키기는 52개, 유연성(좌전굴, 작년에 좌전굴이 허리에 안 좋다는 말을 듣고 이제 하체 스트레칭은 포기함)은 15cm, 제멀은 포기, 마지막 왕복 오래 달리기는 딱 52개만 뛰었다. 뛰다 보니 점점 몸이 풀려가며 기분은 좋아지고 숨은 가빠졌다. 실내 체육관치고는 바닥이 조금 미끄러운 편이어서 뛰는 내내 계속 고민했다. 이걸 더 뛸까, 그러다 미끄러지면 안 되는데 여기서 멈출까? 최선을 다하면 내 목표인 78개는 충분히 뛸 수 있겠는데 이걸 그냥 해? 말아? 아무 생각 없이 뛰어도 숨이 가빠오는데 이런 고민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계속 갈등하다 결국 다치지 말자, 안전하게 가자라는 생각이 이겼고 그냥 편하게 웃으며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오늘의 목표인 다치지 않고 체력검정받기는 달성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다치지 않고 몸성히 집에 돌아오니 아쉬움이 계속 남아 저녁에 천변 산책길을 따라 2km쯤 걷다 다시 1.5km를 달렸다. 전력질주와 가볍게 뛰기를 반복하는 동안 오늘 체력검정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과 그래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서로 싸움을 시작했다. 승자는 없었다. 대신 이젠 기록에 집착하지 말고 일하는 동안 다치지 않고 운동하자라는 목표가 생겼다. 어찌 됐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체력이다. 목표 체중은 72kg(지금보다 –4kg), 근육량은 36kg(증량 3kg), 심폐지구력은 아픈 무릎을 생각해 사이클 인터벌로 가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