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타이어 창고 화재
119안전센터의 일과는 아마도 전국 대부분이 비슷할 것이다. 09시~18시까지는 행정업무(소방서는 의외로 행정업무가 많습니다) 및 훈련을 한다. 그 후 저녁을 먹고 각자 운동(근력, 유산소, 크로스핏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한다)을 한다. 그리고 22시~23시 정도가 되면 모든 일과를 마치고 쉰다. 다만 한 가지 큰 전제가 있다. 센터에 출근한 이후로는 늘 출동대기 상태임을 잊지 않는다. 언제, 어느 일을 하고 있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밥을 먹고 있을 때도, 운동을 하다가도, 심지어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르다가도 포식자를 조심하는 토끼처럼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출동벨 소리가 울렸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내가 출근한 오늘 하루, 나와 동료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화재출동이 있던 그 날도 저녁 11시까지 조용한 하루였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았더랬다. 긴장이 다소 풀린 것을 누군가 알아챈 것일까? 23시 48분이 되자 출동벨 소리에 앞서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화재출동 시 방화복을 입는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출동벨을 울리기 전 상황실에서는 신고자와의 통화를 미리 방송한다). “창고에서 불이 났어요, 빨리 와주세요.” 방송을 듣는 순간 몸이 순식간에 출동 모드로 바뀐다. 내 담당 업무는 물탱크차(일반 덤프트럭 크기와 비슷함, 물 6톤 적재)와 굴절 사다리차(사다리를 36m까지 펼칠 수 있음) 운전원이다. 인원이 없어서 두 차를 중복으로 맡고 있다(팀 인원은 5명인데 차량은 3대가 배치되어 있다, 필요인원 9명 중 5명만 근무중인 이상한 곳이다, 사람이 부족한 것이 소방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출동 내용에 따라 물탱크차와 굴절 사다리차 중 하나를 타고 나가는 체계다. 이번엔 물탱크차를 타고 가라는 출동 지령이 내려왔다. 장소는 00시 00읍 타이어 창고다. 15분쯤 걸려 화재 현장에 도착하니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불을 끄고 있는 5톤 펌프 차 2대와 지휘차, 조사차가 타이어 창고 바로 앞에 배치된 상태고 나머지 4~5대의 물탱크차량은 현장과 약 50m 떨어진 거리에서 차례대로 대기중이다. 현장에서 대원들이 물을 뿌려 불을 끄고 있으면 펌프차에 실려있는 3000리터의 물은 5분 안에 금새 동이 나기 마련이다. 그 때를 대비해 여러 대의 물탱크차량에서 불을 끄고 있는 펌프차로 물을 보낸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면 이해가 쉽다.
사진에는 조그맣게 보이지만 경방 대원(공기호흡기를 메고 화재현장에서 진압활동을 하는 대원을 가리킨다)들이 굴삭기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남은 불씨를 끄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굴삭기는 혼자서 30명분의 일을 하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다(화재 시 상황실에서 지역별 중기협회를 통해 굴삭기 기사를 수배한 후 현장까지 도착하는데 빠르면 30분에서 2시간까지의 시간이 걸린다. 화재현장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화재 발생시간이 언제인지에 따라 굴삭기가 현장에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굴삭기가 없었다면 공기호흡기를 멘 채로 무거운 짐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들고 옮겨야 한다. 물건이 불씨 위를 덮고 있을 경우 물을 뿌려봤자 옆으로 흘러 불은 꺼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다. 그렇기에 고물상이나 물건이 켜켜이 쌓인 창고 화재의 경우 차곡차곡 쌓인 온갖 물건을 치우면서 위에서 아래로 불을 꺼야 하므로 잔불정리하는데 최소 2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그렇게 힘들고 지칠 때 굴삭기가 나타나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든다. 작업시간도 단축되니 금상첨화다.
그렇게 한밤의 화재출동은 다행히도 4시간만에 마무리되었다. 창고 안의 물건은 다 타버려서 아무 것도 건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화재출동을 끝마쳤다. 이번 출동은 난 누구인지, 왜 소방서로 출근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