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월 어느 날
큰 아이는 ADHD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는 순하고 착한 아이지만 밖에서는 무척이나 욕을 찰지게 하는 아이였다. 욕을 하는 이유는 ADHD 특성상 다른 아이와의 공감이 되지 않기에 본인이 화가 나는 순간 그걸 참지 못하고 욕으로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또, 다른 아이들 앞에서 강해 보이고 싶어 일부러 욕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된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큰 아이에겐 친구들이 웃자고 놀리는 거나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장난이 쉽게 싸움으로 번졌다. 매번 친구들과 놀고 온다며 나가지만 빠르면 30분, 길면 1시간 안에 친구들과 다투고 씩씩대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일들이 여러 차례 반복되니 아이의 주변엔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아이 옆엔 친구가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아이에게서 친구들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이상하게 올해 6학년이 되고 나서 점점 친구들과의 문제가 잦아졌고 학교나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한 번은 급식순서를 기다리다 5학년 때 친구와 말다툼을 크게 해서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저 아이가 친구와 다퉜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었던 큰 아이 문제가 툭툭 튀어나왔고 지금 큰 아이는 친구가 없어 학교에 있는 동안 아무 말도 않고 지낸다고 했다. 물론 그동안 욕하고 조금만 언짢아도 화를 내는 아이의 잘못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혼자서 쓸쓸히 학교를 다닐 큰 아이를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3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하다 퇴직하신 장모님과 이 문제를 상의를 하며 아내는 펑펑 울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그러다 며칠 전 큰 아이가 조퇴를 했다. 이유는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들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 것 같다는 극도의 공포를 느껴 쉬는 시간에 선생님에게 상의하다 선생님도 어쩌지 못해 결국엔 보호자인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이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다. 전화를 들은 큰 아이의 모습은 마치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과 증상이 비슷했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200m 남짓의 거리를 오면서도 큰 아이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런 증상은 작년부터 몇 차례 있었지만 참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선생님께 말했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무서워서 손이 덜덜 떨렸다니, 집에 와서도 아빠인 나를 보고도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랜 후 한숨 재웠다. 애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게 무서움으로 나타날까?ADHD 약을 먹고 있어도 이런 증상을 보이다니 다시 심리상담을 받아야 했다.
아내와 상의 결과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상담해 왔던 선생님께 다시 연락해 예약을 잡았다. 사실 큰 아이는 상담선생님 한 분과 유치원 다닐 때 10개월, 그리고 2학년 때 7개월 정도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상담을 마치고 별일 없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심리상담을 권유하며 교육청과 연계된 기관을 추천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 본 선생님과 다시 시작하느니 아이의 사정을 잘 아는 예전 선생님과 다시 상담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주말 동안 아이를 어르고 달래 어느 정도 심리상태가 좋아졌다고 판단해 다시 월요일에 학교를 보냈다. 2교시가 끝날 무렵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 아버님, 아이가 저번처럼 또 손을 덜덜 떨면서 무섭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나 : 네, 집으로 보내주세요
집으로 온 아이를 안으며 다시 진정시켰다. 심호흡하는 요령을 알려주며 일부러 20번씩 심호흡도 시켰다. 20분쯤 지나자 아이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계속 집에만 있을 수 없어 15분 거리의 세차장에 가서 세차를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기분전환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큰 아이 또래로 보이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통화를 하며 지나가는데 갑자기 큰 아이 이름을 말하며 지나간다.
여자아이 : 야, 너 000이라고 알아? 걔 오늘 (중략)
큰 아이 : (여자아이가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걸 듣고는 성큼성큼 걸어 아파트 현관 안으로 들어감)
학교를 마치고 온 둘째 아이에게 들어보니 쉬는 시간에 큰 아이와 같은 반인 아이 여러 명이 자기한테 와서 둘째 아이에게 “너희 형, 집에서도 이상하게 구냐? 어디 아프냐?” 그런 식의 질문을 퍼부은 모양이었다. 큰 아이가 공포로 인해 조퇴한 게 큰 아이의 반을 넘어 이젠 6학년 전체에 퍼졌고 그게 다시 4학년인 둘째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둘째는 예민한 편이지만 ADHD는 아니다. 그래서 둘째는 학교를 보낼 수 있었지만 차마 큰 아이는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체험학습 신청을 해서 며칠만이라도 큰 아이가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구설수가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말하기 좋아하는 반 아이 몇몇 때문인지, 아니면 선생님의 실수인지 알아봐야 할 것 투성이다. 마음이 힘들어서 무서움을 느낀 아이가 조퇴한 것이 왜 구설수에 오른단 말인가?
상담 선생님의 말로는 25살이 될 때까지는 큰 아이는 이리저리 시행착오를 겪을 거라고 했다. 아내는 그 말을 듣더니 앞으로 13년은 죽지도 못하겠네라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나도 힘든데 아이를 끔찍이 여기는 아내는 오죽할까 싶었다. 전학을 보내야 하나? 조퇴 2번 했더니 학교에 이상하게 말이 퍼져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겪는 문제만으로도 힘든데 다른 일까지 더해지니 엎친 데 덮친 셈이다. 이젠 아이의 앞날을 위해 가족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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