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칠마루 May 22. 2023

다시 시작된 상담 대장정

1년, 2년 글쎄

2019년 10월에 큰 아이의 상담이 마무리된 후 3년 반 만에 상담센터를 찾았다. 다시 찾은 상담센터는 예전과 같아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바뀐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3년 전의 내 기억 속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실이 많은 10층 새 건물에 입주한 상담센터였는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 건물의 모든 층에는 상가가 가득 들어찼고 엘리베이터 역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몇 군데 생긴 스크래치에 도장이 벗겨진 흔적이 있었다. 큰 아이와 우리 부부만 나이를 먹은 게 아니었다.      


다행히 큰 아이는 상담센터의 소장님과 약 10년 전부터 상담을 해왔기에 바로 상담 약속을 잡을 수 있었지만 요새는 워낙 예약이 밀려있어 새로운 상담자를 받기 힘들다고 한다. 다른 상담 선생님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연차가 있는 상담 선생님들을 선호하는 부모님들이 많아 소장님께 일이 몰린다고 했다. 상담을 한 어제도 저녁 9시에 일이 끝난다고 하니 정말 힘드시겠구나 생각했다.     


이곳의 상담은 1시간 동안 이뤄진다. 40분은 아이와 상담을 하고 나머지 20분은 부모와 얘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대신 어제 상담은 아이는 25분 나머지 시간은 모두 부모 상담으로 이뤄졌다. 부모 상담이라 해서 특별한 건 없고 3년 반만의 상담이라 그동안 지냈던 일을 얘기하고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는지, 어떤 식으로 아이에게 접근하는 게 좋은지를 서로 묻고 답하는 식이다.      


어제 상담 내용 중 기억나는 대로 써본다.     


아내 : 아이가 얇고 60cm쯤 되는 기다란 젤리를 먹고 싶어 하는데 치과 교정치료를 받고 있어서 전부 다 먹을 수 없다. 7~8cm 정도만 줄 테니 맛만 봐라. 이렇게 말했는데 아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엄마는 맨날 안된다고 해, 이것도 저것도,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이런 말을 하는데 어이가 없더라고요     


상담 선생님 : 네, 이야기할 때 전부를 보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전두엽이 발달되지 않아서 그래요, 꼭 경주마처럼 극히 일부를 보며 마치 그게 전부인 양 착각하죠. 그게 ADHD 특성이고요, 시간이 지나니 몸도 커졌지만 아이의 특정 기질이 더 두드러진 게 보이네요     


아내 : 할머니와 며칠 동안 있으면서 잘 지냈어요. (30년 넘게 교직에 계신 장모님은 경험이 풍부해서 아이의 ADHD를 우리보다 먼저 알아채셨다) 할머니는 아이가 부정적인 시각을 고쳤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이건 저희 부부가 어떻게 아이를 가르쳐야 할까요?     


상담 선생님 : 저 역시 ADHD 아이를 키워봤잖아요, 어머니.. 이건 어쩔 수 없어요... ADHD를 겪는 대부분의 아이가 부정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요, 그건 고칠 수 없어요, 다만 부정적으로 상황 해석하는 걸 막을 순 없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그냥 아이의 말을 들어주세요, 대신 아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맞장구치면서 그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어때라고 환기시켜 주는 것도 좋아요. 순수하게 이 상담의 목적은 아이와 부모님 모두 상담받는 이 시간만이라도 숨쉴 수 있게 서로의 숨구멍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렇게 상담은 끝이 났다. 1번 만의 상담으로 아이가 극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내와 내가 시간이 나는 한 꾸준히 이곳을 찾아와 아이와 상담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우리 부부도 숨쉴 수 있다. 아마 ADHD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숨쉴 수 있다는 이 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상담의 큰 목표는 아이가 학교 다니는 게 무섭고 힘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하루가 지난 오늘 큰 아이가 무사히 학교를 마치고 왔을지 궁금하다. 전두엽이 다 자라는 25살 정도가 될 때까지는 이런 좌충우돌의 모습이 반복된다고 하는데 큰 아이는 나중에 얼마나 효도를 하려고 벌써부터 엄마가 펑펑 울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면 “제가 언제 그랬어요?”라며 부정이나 하지 않으면 좋겠다. 암튼 힘을 내서 상담 대장정을 이어 나간다.      


추신

상담 때마다 둘째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갑니다. 집과 상담센터의 거리는 왕복 140km쯤 되네요, 어제 저녁 7시에 상담을 마친 후 저녁을 먹고 집에 오니 시곗바늘은 9시를 가리킵니다. 형을 위해 군말 없이 따라온 둘째가 대견하면서도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상담비, 기름값, 외식비, 센터 왕복에 걸리는 시간 등 여러 가지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래도 큰 아이를 위해 한 걸음씩 움직여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매거진의 이전글 큰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