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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세 May 25. 2023

쉰 인간을 사랑하는 일

인간은 지나가는 누군가의 관심으로도 연명할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삶은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이 보여주는 세상은 새롭고 벅찹니다. 가장 가까운 예시를 들자면, 당장 스스로에게, 혹은 사회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믿어주는 사람은 부모님이 유일할 것입니다. 그들의 책임과 희생정신에 무한한 존경과 감사가 샘솟습니다.   


 그런데 잔뜩 '쉬어버린 백수 인간'의 연명에, 부모님의 관심은 예외적 요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서로의 숨통이나 조이지 않으면 다행일까요. 최소한,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타고났음에도 이런 불손한 사상을 품고 있는 자식이라 죄송하다는 말까지 서두에 깔아 둬야 하는 관계잖아요.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 빠져있을 때,  

'나'라는 인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은 맥락 없는 기만 같아서, 그 긍정마저도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할 수 있다니요, 아직 많이 남았다고요, 이제 시작이니까 버티라고요? 

미안하지만 당황스러우니까 그냥 관심 두지 말아 달라는 말을 씹어 삼킬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인생 흐르는 대로 살기가 목표인데, 생판 남이 그렇게 말하면 괜히 꼬아 듣는 심보라고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숨 막히는 상황은, 부모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백수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들은 어느새 저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나 봅니다. 변명하자면, 그저 버텨 오는 시간이라 구태여 힘듦까지 나누기는 원치 않아 말을 아껴왔습니다. 그들도 저에게 그랬을 겁니다. 저보다 오랜 기간, 더 오랫동안.


 그만큼 생략된 말들이, 생략된 시간들이 지금은 좀 버겁습니다. 그들도 진작에 감당하기 어려웠을 텐데, 우리는 언제쯤 적당한 거리감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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