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인생의 반, 그 절반의 초입부터 지금까지 쉬어버린 인간이 있습니다. 네, 백수입니다. 보기 드문 종자는 아닙니다. 요새 모 프로그램의 청년 취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반 이상이 ‘그냥 쉬고 있음’이라고 했다던 괴담이 카더라 통신을 타고 들려오지 않던가요?
이렇게 ‘쉰 인간’들을 ‘취준생’이라 분류하기도 합니다. 다른 표기지만, 알맹이가 그리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졸업 후 4개월을 흘려보낸 인간도 쉰 인간이든, 취준생이든 둘 중 하나로 불리겠습니다.
사실 뭐도 하고 뭐도 했는데, 구태여 말하기는 퍽 민망해집니다. 두어 번의 면접을 봤으나, 최종 1승을 이루어내지 못한 이상 그 어떤 과정도 기록할 만한 일이 되지는 못하니까요.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스펙이랄 게 없으니 그냥 ‘쉰 인간’이라고 하렵니다.
하지만 ‘취준생’ 입장에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말이라도 남기고 싶어 집니다. 이 글이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요.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뭐라도 남겨 보려는 일차적 목적은 4개월간 '취준생'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버텼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또 버텨볼지, 근본 없는 의지라도 다져 보려는 발악입니다. 그러니 독자분들께서도 공감해 주시든, 또 다른 반성의 기회로 쓰시든, 본인 상황은 아니니 지나가시든, 마음대로 받아주시면 됩니다.
면접장의 평가자들에게 저라는 존재를 팔아넘기려니까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순간의 답변에 점수를 매겨 걸러낼 테니까요. 고르고 골라 내놓은 대답은 결국 그들이 원하던 ‘정답’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자리를 벗어난 순간,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걸쩍지근한 느낌이 이어졌습니다. 저를 표현했던 몇 마디에서 그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셀링 포인트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절한 마음만 앞세우지 말았어야지.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볼걸. 이따금 후회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이 나를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일이 다 끝난 후에도 답을 찾지 못한 상황이 오히려 우습습니다. 애초에 제가 갈만한 곳이 아니었나 봅니다.
제 간절함에는, 사회가 인정하는 일꾼으로, 이곳에서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돈 벌고 싶음’이라는 간단한 말로 요약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간단한 생존 욕구를 ‘지원 동기’ 칸에 수용할 인심 넉넉한 회사가 있다면 충성하겠다고도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사회인이 아닌 ‘취준생’이 사는 곳은, 이런 날것의 욕망이 과히 비치지 않게, 적당히 감추어내는 요령이 필요한 현장입니다.
이런 변수들을 모두 고려하여, 우리는 앞으로 더욱 ‘진정성’ 있는 지원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생존을 위한 과정이 이렇게 버거우면, 생존의 터는 얼마나 괴로울까요? 발 디딘 장소도 피가 터지는 곳일지 겁이 납니다. 어떻게 해야 이겨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감히, 벌써부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처지가 못되거든요. 일단 더 총체적인 괴로움은 미래의 자신에게 떠넘겨 둬야 버티겠습니다. 예,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니까, 할 수 있겠죠 뭐. 저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