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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세 Jul 20. 2022

새로운 중고 시대

<체르노빌의 목소리> & <세컨드 핸드 타임>

    1987년 우크라이나의 도시였던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 국가의 우두머리, ‘러시아’는 사건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거짓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그 위선의 대가는 국민이, 주변국이, 전 인류가 치러야 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은 불신의 씨앗은 훗날 소련 체제 붕괴에 불을 지핀다.


무엇을 위해 남편이 죽는 걸까? 신문에는 체르노빌뿐만 아니라 공산주의가 폭발했다고 하던데. 소비에트가 끝났다고 하던데.

    위는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저서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내용을 인용했다. 공산주의와 소비에트가 ‘끝났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문장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 역시 이 사태를 소련 붕괴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라 단언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미국과의 군비경쟁 등, 각종 요인으로 연방의 중심 ‘러시아’에 대한 불신이 커지던 가운데,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가 터진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이후 국가 내부적으로는 쿠데타가 일어나며 소련 공산당의 위신이 무너진다. 이렇게 냉전 체제를 이끌던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막을 내린 것이다.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였지만 우리는 남아있다.’ <세컨드 핸드 타임>에서 이 문장과 함께 ‘구소련과 러시아 연방의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 설문조사’를 언급했다.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를 묻는 항목에 사람들은 각각 브레즈네프(56%), 레닌(55%), 스탈린(50%)을 긍정적 3순위로 꼽았다. 반대로 고르바초프(66%), 옐친(64%)이 부정적 평가 1위와 2위에 올랐다.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에 잔류하는 소비에트 정신과 함께 변화에 대한 반작용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과거를 그리는 인물들과 혐오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주장을 논박하듯, 소설 내부에서 대립적으로 병치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지난 70년간 실험적으로 소련 체제에 적용되었고, 그들식의 발상·사고·행동이 같은 시간대에 융합되어 여전히 혼란한 사회를 이어간다. 러시아인은 물론 벨라루스인, 투르크메니스탄인, 우크라이나인, 카자흐스탄인 등 모두 국적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옛 소련의 호모 소비에티쿠스(Homo Sovieticus)로 명명된다. 구소련이 붕괴한 뒤 새 시대를 향한 희망으로 부풀었던 거품이 다시 한번 꺼진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겪는 개인의 삶은 변화한 듯,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공산 정권을 무너뜨리고 얻은 자유가 곧 행복을 뜻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를 급히 따르며 발생한 빈부격차, 미디어 재벌 등 사회를 좀먹는 부작용으로 극명해진다. 공포스럽고 극단적인 정치는 과거와 다를 바 없는 푸틴의 독재로 이어지니, 오늘날 해당 국가들의 젊은 세대는 다시 과거 시대를 그린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들은 마르크스·레닌 티셔츠를 입고, 스탈린을 위대한 정치가로 꼽고 소련의 모든 것을 또다시 소비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 흐름에 편승한 결과, 소련 시대 실패했던 공산주의 실험 반향이 다시 그림자를 드리운다. 전후 인과 관계, 맥락적 파악 없이 휘둘린다. 그것이 과거로부터 여전히 반복되는 경제난, 불안한 정치 상황 등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줄 대안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저들 국가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많은 체제와 관습들은 어떤 역사적 인식과 사고 과정을 거쳐왔는지 반성해본다.

내가 발 붙인 이 사회 체계도 비판적 사고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강제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현실 아닐까? 그런 알맹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지향하는 이념의 방향성이 다르다고 한들 삶의 본질 자체는 똑같지 않을까? 이렇게 책을 읽으며 타자를 바라보듯 우리의 현재를 해석할 수 있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역시 분열된 세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마냥 어느 한쪽을 절대악으로 몰아가 앞으로의 처신을 그 판단에만 내맡기기에는 일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세컨드 핸드 타임> 내용에 이어 다뤄보겠다. 사건의 조금 더 다양한 면을 들여다보며 인류 공동체에서 결코 잃지 말아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p.s. ‘중고 시대’의 뜻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글을 읽다 보면 의미를 알 수 있다. 확실한 정답은 마지막에 공개하니, 궁금하면 끝까지 읽어주시길…!





갈 곳 잃은 사람들의 역사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에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36시간 이후에 대피령이 떨어진다. 약 1200여 대의 버스를 나눠 탄 시민들은 강제로 피난했고, 현재까지 3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나 기나긴 ‘임시 피난’ 상태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까지 체르노빌의 ‘프리피야트’라는 도시는 방사능이 과거보다 개선되어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첫 번째, 또 다른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생활공간적 역할이 회복되었다. 이 극히 소수인 고령자들을 지칭하는 단어 ‘사모셀리(Самосели, 러시아어로 사모숄리-Самосёлы)'는 ‘스스로 정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그들은 체르노빌의 마을, 프리피야트에 거주한다. 아직 방사능 오염지역으로 분류되는 그곳으로 다시 향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생의 시발점인 뿌리이자 정체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프리피야트 거주민들에게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본래의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기로’ 한다.

    두 번째, 프리피야트는 당시 상황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최대 24시간 동안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다. 하지만 관광 목적의 출입 시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절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써야 한다. 당연히 여기저기 묻혀 있는 방사는 폐기물을 건드려서도 안 된다. 철저히 인솔자의 말에 따라야 한다. 끝날 때는 방사능 물질이 묻었는지를 철저히 검사한다.

    향후 프리피야트의 거주민들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면 그때는 완전히 관광지로만 남을 것이다. 더는 반대할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재난에 의한 아픔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명목 하에 운영되다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가 검토될 수도 있다.


    키예프 여행사가 체르노빌 여행 상품을 선보였다. 일정은 죽은 도시 프리퍄티에서 시작한다. 다층 건물과 베란다에 걸려 새까맣게 변한 빨래와 유모차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한때, 경찰서와 병원, 공산당 시 위원회가 있던 건물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곳에는 지금도 공산주의 시절의 표어가 걸려 있다. 방사선조차도 거부한 글귀다. (…)
이것이 헛소리라고 생각하는가? 틀렸다. 핵 관광은 특히 서양 여행객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세상살이가 너무 평범하고 지루하기에 사람들은 요즘 보기 드문 새롭고 강력한 체험을 하기 위해 온다. 사는 게 진부해졌다. 그래서 뭔가 영원한 걸 맛보고 싶어 한다. 핵 메카를 방문해 보라. 상품 가격도 매우 매력적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407~408페이지)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맺음말 대신 2005년 발행된 벨라루스의 신문자료를 인용한다. 위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이제 체르노빌 사태가 남긴 아픔은 과거 유물로 박제되었다. 그곳이 박물관이 되든 관광지가 되든, 여러 사람이 값을 내기만 하면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프리피야트의, 나아가 체르노빌이라는 공간의 ‘본질’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누군가가 지키고 있는 이상,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 가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를 진정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의문은 계속된다. 이대로 체르노빌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관광지로만 남아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게 될 것인가? 폐허가 된 고향을 지키는 것처럼 시간이 돌고 돌아서도 잃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역사가, 어떤 아픔이 그 땅에서 벌어졌는지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진정으로 그곳을 돌보는 사람 없이, 방사능 오염의 ‘충분한’ 정화 없이, 생명 없는 유령 도시의 빈 껍데기에 억지로 활기를 불어넣는 행위만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그 메시지는 공허해질 것이다. 언젠가 정말 ‘일탈적 체험 공간’으로 전락한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




중고 시대 사람들의 운명

운명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역사는 우리 모두의 삶이다. 나는 운명을 보존하면서 역사를 들려주고 싶다. 한 사람을 잃지 않도록…
체르노빌에서는 ‘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 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가끔 내가 미래를 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21페이지)

    격변의 시대 이후 21세기를 맞은 작가 알렉시예비치는 시대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이방인의 신분에 처했다. 그녀는 20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작품 활동과 동시에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정권을 활발히 비판하는 정치 활동을 펼친다. 가장 최근 소식은 지난 2020년 9월, 독일로 비공식적 망명을 떠났다는 것이다. 도서 전시회 참가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귀국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동년에 발생한 벨라루스 시위를 지지한 이후의 일이다.

    벨라루스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함께 ‘독립국가연합(CIS)’로 묶여 있다. 대통령 루카셴코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지지 아래 정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1994년 첫 당선 이후로 20년까지 6선에 당선되었다. 2020년 선거 결과에 따라 동년 8월 9일, 벨라루스에서는 그의 26년 장기집권과 투표 결과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는 시위가 발생한다. 한편 루카센코 대통령은 시위대의 민주주의 운동을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강경하게 대응한다. 특히 알렉시예비치에게는 기록 말살형이 집행되고 있다. 작가가 떠난 틈을 타 그녀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름 자체가 벨라루스의 공교육 커리큘럼에서 사라졌다.

    반성 없이 되풀이되다 곪아 터진 역사는 체르노빌 사람들의 고향을 앗아갔고, 망명을 떠난 작가의 디아스포라로 이어진다. 보통의 ‘작은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동질감과 함께, 우리는 그런 호모 소비에티쿠스들과 산다. 상처가 여물지도 않은 사회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각종 폭력을 겪었던, 혹은 겪을 수도 있는 존재로서 말이다.




맺음말

    1917년 혁명 직전 작가 알렉산드르 그린은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는 글을 썼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는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 핸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세컨드 핸드 타임>, 19페이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발전 이론을 받아들인 레닌은 제국주의 최고 단계가 자본주의며,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전 단계라 주장했다. 그 이론은 실패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믿고 싶을 정도로 희망적인 이야기다. 과거로 대체된 미래를 살아갈 것만 같은 오늘날, 역사는 과연 발전하고 있는가? 인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아니면 같은 오류를 그저 반복하며 점차 고여 가고 있을 뿐인가?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속에서 그 이면에 구축된 세계의 분열을 또 한 번 마주한다. 러시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신 냉전체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어쩐지 낯설고도 익숙한 느낌을 풍긴다. 지식과 이념이라는 색안경은 쓰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달라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물들인다. 그렇게 우리가 경계할 대상은 모호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본질은 ‘장사’에 있다. 이 상황에서 권력을 갖고 계산을 따질 여유가 있는 이들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장난질에 놀아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각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속도로 치솟고 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의 3월 말 조사를 보면 3월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83%로 2월(71%)에 비해 12% 포인트(p)나 뛰었다. 우크라이나 여론조사기관 ‘레이팅스’의 조사에서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91%로 나타났다. 지난 1월 말, 국민의 32%만이 젤렌스키가 전쟁 지휘관의 역량이 있다고 답했던 조사 결과와는 확연히 달라진 수치다. 2018년부터 꾸준히 50~60% 지지율을 유지하던 푸틴 역시 마찬가지 수확을 얻은 셈이다. (뉴스 발췌)

    이렇게 전쟁은 명분이라는 무기를 소진될 때까지 휘두를 것이다. 종전 소식이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생겨날 또 다른 ‘호모(Homo)’ 소비에티쿠스, 망명 작가, 실향민, 난민… 갈 곳 잃은 인류의 역사는 그런 장사치들에게 빼앗긴 과거이자 미래의 삶을 대변한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그 본질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 양 진영 논리에 휩쓸리다 다시 도래할 ‘중고(second-hand)’시대를 맞이할 때, 적어도 ‘새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가지는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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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https://namu.wiki/w/2020년 벨라루스 시위

https://en.wikipedia.org/wiki/Svetlana_Alexievich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12201032512047002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4041618451535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3897#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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