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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Sep 25. 2023

그냥 보는 일

돌봄=보는 일?


연계형 오전반 선생님이 유치원 과학교사 정규직으로 떠나고, 새 시간제 선생님이 왔다. 이 분을 B 선생님이라고 하자. 김 선생님은 B 선생님이 영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B 선생님은 맡은 업무, 아이들 보기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방학 중 연계형 오전 돌봄은 크게 할 일이 없다. 아이들 수는 네다섯 명, 방학 숙제와 김 선생님이 내준 문제집을 풀고 나면 자유 시간이다. 네다섯 명이면 보통 보드게임을 하거나 할리갈리를 하고 논다. 아이들이 서로 익숙하다보니 적당히 잘 조율하면서 놀 줄 안다. 가끔 수진이가 동떨어져 있으면 내가 체스를 하며 놀아주지만 오늘은 네 명 다 평화롭다. B 선생님은 책상에 앉아 있고, 나는 아이들과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책을 읽었다. 교실 책장에서 꺼낸 . 상당히 너덜너덜하다. 조금 읽었을 때쯤 B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일하는 중이니 책은 읽지 말고 아이들을 봐 주세요.”


이런, 책을 덮고 아이들을 보았다. 할리갈리는 잘 진행되고 있었다. 다투는 일도 겉도는 아이도 없으니 내가 딱히 손 댈 일은 없었다. 어린이들끼리 잘 놀고 있을 때 어른이 끼어드는 것도 좋을 건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B 선생님도 출석 체크를 끝냈으니 할 일은 없었다. 선생님이 무언가 하시면 내가 도와야지. 내가 먼저 하지는 않았다. 나는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B 선생님은 한 시간이 넘도록 책상에 바로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스마트폰도 하지 않고 정자세로 계속. 그래서 나도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들이 노는 걸 보았다. 십 분이 지나자 무척이나 지루하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B 선생님은 ‘아이들 보기’라는 단어에 충실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신기한 분일세. 


오전의 두 시간 반 동안 연계형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교실 청소, 문제집 검사, 출석 체크, 아이들에게 할 일을 주거나 노는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조절하기. 사실 문제집 검사는 순전히 김 선생님 열정으로 시작된 일이니 꼭 시간제 선생님 업무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지난 오전반 선생님이 늘 불평하던 것도, 문제집 채점과 학습 지도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이건 내 일도 아닌데!). 안 그래도 시급도 적은데 일을 더 떠맡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 


B 선생님은 단칼에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아이들을 거절하고(그건 내 업무가 아니야), 교실 한가운데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로 두 시간 반을 채웠다. 청소도 전혀 하지 않고 아이들 공부를 봐주지도,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아 김 선생님의 공분을 샀으나, 아이들 지켜보는 일에는 충실했다.


잘 노는 아이들을 두고 두 명의 간수처럼 묵묵히 앉아 있으려니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B 선생님이 일을 하고 있는 건 맞지만, 돌봄은 이렇게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아니지 않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그걸로 충분한 걸까? 오전반 선생님의 시급과 한달 갱신 계약서를 생각하면 B 선생님은 받는만큼 일했다. 김 선생님은 B 선생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B 선생님이 자기 맡은 바를 다 하지 않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일의 핵심이 교도소 간수와 달리, 일하는 시간에는 아이들을 아끼고 신경쓰기라고 생각했다. 이걸 받아들이면 할 수 있는(해야 할 것 같은) 일의 범위는 계속 늘어난다! 청소, 먹이기, 말걸기, 정리하기, 놀아주기, 지시하기, 공부 가르치기…어디까지가 돌봄 선생님의 업무인지 선이 정해져 있지 않고, 참고할 지침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돌봄은 가사노동과 잡무와 감정 노동이 한데 뒤섞인 복잡하고 세밀한 일이다. 잘 돌보려면 기술보다는 시간이 쌓여야 한다. 쉽게 정의할 수 없고 그래서 대중도 없다. 선을 긋는 건 선생님 각자의 몫이다. B 선생님은 확실한 선을 그었고, 김 선생님은 선긋기보다는 아이들을 중시했다. 둘 다 같은 일을 맡았는데 방식은 참 다르구나. 김 선생님처럼 일한다면 얼마 못가 지쳐 그만둘 것이고, B 선생님처럼 일한다면 아이들은 최소한의 살핌만 받을 것이다. 


B 선생님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낀 건 돌봄이 그냥 지켜보는 일은 아니라는 것. 돌봄의 뜻이 사전에 나온 대로 ‘관심을 가지고 잘 보살피는’일은,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지켜보는 걸로는 할 수 없다. 한 명도 아니고 열댓 명의 아이들을 어떻게 잘 보살필 수 있을까. 성과를 평가하기도 어렵고 계산할 수도 없는 이 일. 누군가를 잘 보살필 일을 시급을 받고 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야. 돌봄이 돈으로 따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돈으로 내 일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도. 왜 내 마음은 이리 작아서 늘 시급과 아이들을 향한 에너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느라 어영부영 일하고 있는가. B 선생님이 없거나 말거나 늘 그렇듯 보드게임을 하며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누가 내게 선을 좀 그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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