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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Oct 09. 2023

이제 진짜

그만둘거야

인력 부족으로 오전마다 남는 빈 교실에 1,2학년 아이들 열 두어 명을 맡게 된지 네 달. 이제 정말 그만둘 때가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선생님 전용 의자의 푹신함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다. 전담사 선생님 없이 나 혼자 아이들을 보려니 훨씬 긴장됐고 에너지도 많이 들었다. 교실은 낡은 그림책과 책걸상이 다였다. 놀 만한 장난감이 없으니 돌봄 1,2,3반에서 얻어와야 했는데 장난감을 가져왔다 다시 가져다놓는 상황에서 정리도 되지 않고 아이들이 갑자기 없어져있기도 했다. 아예 장난감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할까? 그러면 여덟 아홉 살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으니 색칠 공부나 만들기를 인쇄해 주어야 했고, 열댓 명이 줄줄이 내 인쇄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더 정신이 없어졌다. 아이들에게 계속 할 일을 만들어주어야 했는데 틀린 그림 찾기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하기 싫어했고, 쉬운 건 너무 빨리 했다. 


통제를 해야해. 자리를 정해주었다. 계속 싸우는 두 명은 서로 말 걸지 않게 하고 붙으면 너무 신나 마구 흥분하는 둘도 떨어뜨려 놓고, 이 말랑이 장난감은 너무 좋아해서 흥분하니까 가지고 오지 못 하게 하고, 저 애는 색칠 공부 그림을 고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빨리 재촉하자. 나는 무언가 해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허락했다가, 안된다고 말을 바꾸기 일쑤였다. 어떨 땐 너무 좋아해서(아이들이 흥분하면 교실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어지니까), 어떨 땐 너무 어려워해서, 어떨 땐 너무 쉬워서. 이유도 갖가지였다. 그러나 공통점은 내가 아이들을 통제하기 힘들어지면 그만하게 하는 것이었다.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선생님 좋자고 아이들의 욕구에 무신경하게 만드는 게 좋은 돌봄인가 고민하던 나는 어디갔나. 나 역시 한 달쯤 지나자 편한 방법을 썼다. 자리에 앉혀두고 영상물 보여주기. 넷플릭스 키즈 컨텐츠를 훑으면서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편했다. 드디어 푹신한 의자에 머리를 얹고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의 그 집중력 역시 몇십 분을 채 가지 못하고 금세 흐트러졌지만 말이다.


세 시간 동안 내가 가장 신경썼던 건 아이들이 큰 소리 나지 않게 하기, 뛰어다니지 않게, 자리를 비우지 않게 하기였다. 그 이유는 돌봄 1반 선생님이 큰 소리가 나면 한 소리 하러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뒤탈이 나지 않으려면 그 세 개가 제일 중요했고, 놀랍게도 그 상태만 유지하는데도 계속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내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관심가져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내 일을 평가하는 건 선생님과 학부모지 아이들이 아니었으니까. 


오전 세 시간 이후로는 다른 대학생 근로장학생이 와서 맡았다. 오후에 나는 돌봄 1반에서 보조로 일하느라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나가며 보기로는 티비 화면이 켜져 있는 걸로 보아 오후 장학생도 역시 영상물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둘이라 나는 더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전날 내가 만들어둔 규칙이 바뀌어 있기 일쑤였다. 책상을 움직여서 놀면 안돼, 하루에 색칠 공부는 세 개만 할 거야. 이 장난감은 가지고 오지 마. 라는 규칙을 정해두고 나가는데, 오후 선생님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돌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선생님은 해도 된다고 했는데요!”

아이들이 책상 세 개를 옮기고 의자를 뒤집는 걸 말리다 그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났다. 규칙이 일관적이지 않고, 방식도 오전 오후가 다르니 아이들을 통제하는 건 더 어려웠다. 나 혼자 너무 과하게 하나? 그냥 이 아이들 하고 싶어하는대로 내버려 둘까? 물론 내 눈에는 위태위태 해 보이지만, 굳이 손 쓸 필요는 없는 거 아닐까? 돌봄1반 선생님은 서류 업무로 바빴고, 다른 선생님들은 관심이 없고, 오후 근로장학생 선생님과는 출근 시간이 달라 만날 시간이 없었다. 고충을 말할 데가 없군. 오후 선생님은 나와 달리 근로장학생의 역할이 최소한의 자리 지키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혼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엄마의 마음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면, 오후반 선생님은 명절에 잠깐 온 사촌 언니같았다. 나도 저렇게 일해야 하는데. 왜 나는 저렇게 마음 편히 엉망인 교실을 두고 보지 못하나. 쓰레기통은 꽉 차서 넘쳤고, 아이들 책상 속도 잘린 종이와 다 칠한 색칠 공부 등으로 지저분했다.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키는 사람은 없고, 내가 치운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텐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먼저 한다는 건 어쩐지 손해보는 기분이었다. 오후반 선생님도 청소는 하지 않잖아. 이런 식으로 나를 합리화하고, 이게 옹졸하고 비겁한 일이라는 생각에 다시 기분이 찝찝해졌다. 지저분한 교실에서 신난 아이들을 왜 신경쓰지 않는지 화가 났고. 이 고충을 해결할지 말지는 내게 달려 있었다.누가 알아주건 봉사의 마음으로 열심히 하거나, 아니면 내가 냉정한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이며 대충 일하거나.


 돌보는 건 책임지고 관리하는 일이다. 이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않다. 조절하고 기준을 세우고, 협업하고 상황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일이 잘 돌아가는지, 아이들이 잘 자라는지,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소통이 없으면 답답하고 고립된 기분을 느끼며 일하게 된다. 옹졸해진 나는 사소한 하나하나가 신경에 거슬렸다. 예를 들어 왜 돌봄 2반 선생님은 세현이와 현우를 내 교실에 같이 두었지? 지난 학기에 둘은 서로 다툼이 잦았고, 학교폭력이라는 말도 나오고 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역시 내 교실에서도 계속 갈등이 있었다. 돌봄 1,2,3반의 쉽지 않는 아이들은 어쩐지 전부 여기에 있는 기분이구나. 이는 의도적일까 아닐까. 아니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지금 아이들이 다투지 않게 하는 것.


 세현이를 때리려는 현우를 막았더니 현우가 눈물을 흘리며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아파, 하지 마. 놔.”

현우를 내게서 떨어뜨리고 다시 선생님 의자에 앉았다. 나는 무척 지쳐있었다. 현우는 울다가, 갑자기 내게 와 안기려 했다. 이 역시 막았다.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내게 안기고 싶다 해서 받아주면, 현우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이다. 진정될 때까지 내게 안기려는 현우를 밀어내는데 이번에는 다른 아이들이 갑자기 내게 와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왔다. 세현이는 내 무릎에 앉으려고 했고 나윤이는 색칠 공부를 더 인쇄해달라고 왔다. 느낌으로 나는 아이들이 지친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애정이건 분노건, 선생님은 감정에 휘둘릴수록 좋지 않다.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현우를 자리에 앉히고 블록을 갖고 놀게 했다. 이제 정말 그만둘 때가 되었다. 그건 아이들이 나를 힘들게 해서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다웠다. 하지만 관찰자에서 책임자로 위치가 바뀌니, 내 안에서 무언가 변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지시하고, 내 말을 듣는 걸 당연하게 요구하는 권력의 맛. 어쩐지 아이들이 더 내 말을 잘 들었으면 하는 욕심, 자꾸 시시콜콜한 잔소리로 아이들에게 명령하는 내 모습, 나는 아이들이 아니라 푹신한 선생님 의자에 앉은 내 모습이 싫었다. 더 오래 있다간 이 작은 권력의 지팡이에 너무 익숙해질 것 같았다. 권력과 같이 오는 책임도 부담스럽고. 아이 한 명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보살핌의 방법은 학교 시스템 안에서는 요원한 일이었고, 더 오래 일하면 나는 결국 학교 방식에 익숙해지고 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고, 관성에 기대지 않는 좋은 선생님이 될 자질도 없었다. 


쉬는 시간, 세현이는 내 무릎에 앉아서 포켓몬 색칠 공부 그림을 골랐다. 

“선생님, 내일 오면 자동차 색칠 공부로 할래요.”

“그래, 그래. 너 원하는 걸 해줄게.” 

아이들은 내 마음을 약해지게 했다. 보고 있으면 이대로 계속 일하고 싶었다. 돌봄은 그 자체만으로, 다른 걸로는 채울 수 없는 충족감을 내게 줬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에게 그걸 주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만족감. 그건 시급이나 노동 시간, 강도같은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전자의 만족감을 얻기위해 후자를 희생해야 하는게 지금의 돌봄 노동인가. 나는 희생할 생각이 없었다. 일은 일.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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