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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ug 30. 2023

팬티는 야한 말


“선생님, 주말에 뭐 했어요?”

돌봄 교실 바닥에서 카드 게임을 하는 평화로운 시간. 하연이가 내게 물었다.  

“그냥 집에서 쉬었지.”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널부러진 빨래처럼 누워 있었다. 

“하연이는?”

“동창회 하고왔어요.”

하연이는 1학년 아니었나. 나도 안 가본 동창회를 여덟 살이 다녀올 만큼 요즘 아이들은 사회 생활이 풍성한가. 

“너희가.. 동창회 할 일이 있나?”

“어린이집 애들이랑.”

하연이는 손을 펴서 동창회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세 본다.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서 아쉬웠는데, 오랜만에 봐서 엄청 놀았어요!”


아이들의 교우 관계란 얇고도 미묘하다. 친구들이 가고 없는 오후에는 세상 둘도 없이 신나게 놀았다가 다음 날에는 다시 데면데면하게 스쳐가기도 하고, 혼자일 때 조용한 아이가 친구만 있으면 마구 뛰어다니기도 한다. 따돌리는 건지 아닌건지 묘하게 대하면서도 계속 무리지어 다니기도 한다. 친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큰 아이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2학년 호원이는 씩씩하고 늦게까지 돌봄교실에 남아 있으면 1학년 세현이와 다정하게 잘 놀아준다. 친구들과 모여 있을 때는 사뭇 다르다. 태훈이, 민혁이와 같이 죽이 잘 맞는 삼총사로 있을 때 호원이는 더 반항적이고 패기 넘치고 소란스럽다. 삼총사 아이들이 다 그렇다. 돌봄 2반의 선생님들이 엄하신 편이 아니라 뻗어나가는 삼총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모이면 교실이 떠나가라 말하고 마구 뛰어다니고, 윤서를 괴롭히는가 하면, 승준이를 따돌리다가 선생님 다리에 머리를 갖다 박는다. 민혁이때문에 머리에서 김 난 적만 여러번이다. 저 녀석들의 세상이구나. 모이면 힘이 세진다가 저런 말인가. 녀석들은 행복하고 선생님은 교실 들어가기가 싫다. 


아무려나 오늘도 셋은 커다란 매트 위에 모여 앉아있다. 무얼하며 놀까 고민하는데 태훈이는 하고 싶은 게 뚜렷하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놀이 하자.”

“그게 뭔데?” 

호원이랑 민혁이는 그 만화가 뭔지 모른다. 알고 있던 나는 괜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그 만화 15세 이상 관람가인 걸로 아는데. 지난 번에는  좀비물 드라마 이야기를 하더니, 아홉 살 아이들이 접하는 컨텐츠가 상당히 우려스럽다.  

“나는 바쿠고 할 거야. 너는 토리야마 하고, 올마이트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태훈이가 열정적으로 블록과 막대기를 가져오며 설명한다.

“이 올마이트 팬티 위에 노란 벨트가 있어.”

“히히, 팬티래.”

민혁이가 팬티에 꽂혔는지 태훈이가 말하는 동안 갑자기 낄낄거리며 놀린다. 호원이가 맞장구 치면서 만화 설명에는 관심도 없다. 

“아, 하지 마. 야한 말 하지마.” 

“팬티가 무슨 야한 말이야.” 민혁이의 놀림에 호원이가 배를 잡고 웃는다.

“그럼! 팬티가 야한 말이 아니야!?!”

언제나 논리적인 태훈이가 화 났다. 

“왜 나 말하는데, 자꾸 팬티 거리면서 야한 말을 하냐고!!!”

태훈이의 화에 민혁이 기분이 상했다. 삼총사가 찬물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잠잠한 교실 안에서 아이들이 블록을 가지고 노는 소리, 작은 부시럭 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평화롭다. 아, 강인한 적을 잠재우기 위해선 내부 분열이 최고구나. 나와 전담사 선생님이 비폭력 방식으로 아무리 말해봐야 꿈쩍않던 삼총사의 에너지는 감정싸움으로 잠시 해체됐다.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인 태훈이와 민혁이도 이런 사소한 걸로 토라지는 건 처음 봤다. 밉다가도 좋아서 서로 마구 뛰는 걸 보는 게 마음 풀리는 것도 있었는데, 역시 늘 좋은 친구 관계란 없다. 아이들은 특히 고무줄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바뀌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실수하고 기분이 상했다가 좋아졌다가 그러면서 타인과 사귀는 법을 알아는 것이겠지. 


“선생님, 저 좋아요.”

현지가 구석에서 블록으로 집을 만들다 내게 살며시 말했다. 

“뭐가?”

“쟤네 싸우니까 좋아요. 조용해서.”

그제서야 교실 안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나만큼이나 삼총사의 활보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시끄럽고  녀석들이 모든 주목을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작은 교실이 그나마 잘 돌아갈 수 있는 건 삼총사를 애써 무시하며 혼자 말없이 잘 놀고 있는 열일곱 명 덕분일텐데. 

“그래, 선생님도.”

팬티가 야한 말이건 아니건 나나(아마 현지도) 이 다툼이 최대한 오래 가주길 바랐다. 삼총사가 각자 더 여러 아이들과 놀면서 저 끈끈함이 옅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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