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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Sep 12. 2023

가만 내버려 두세요

민원



오전에 돌봄 2반으로 출근하니, 시간제 선생님이 날 불렀다.


“선생님, 어제 여기 계셨죠? 지유가 국어 숙제 하라고 하니까 뭐라고 했어요. 안 가지고 왔다고, 집에 가서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시간제 선생님의 책상 위에 지유의 국어 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로서는 기억나지 않았다. 돌봄 2반에서 두세시간 있었지만 워낙 많은 아이들을 보다 보니 정신 없이 지나간다.

지유가 공부 시간에 학습지를 풀다가, 당연히 풀지 않고 돌아다녀 나와 실랑이를 좀 하고, 입술이 댓발 나온 채 놀이 시간까지 의자를 끼긱거린 건 기억이 난다.


“국어 숙제를 안 한거를, 내가 문제집을 안 줘서 못 풀었다고 엄마한테 말했나 봐요. 왜 그랬냐고 나한테 전화가 온 거야. 그런데 선생님, 아니잖아요. 아니라고 해도 듣지를 않아요.”


시간제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숙제를 가지고 지유가 말을 잘못 전달해 선생님께 연락이 온 게 벌써 두 번째란다. 다음 번에는 가만 안 있을 거야. 선생님은 내게 말했지만 지켜본 바 학부모 민원 앞에서 시간제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돌봄교실에서 지유의 악명은 이미 높아져 있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지 않고, 친구들 머리를 잡아당기고, 말 없이 사라지는 등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유의 어머님이 상당히 쉽지 않은(선생님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장난 아닌’) 학부모이기 때문에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가 쉽지 않다. 


날 쓸모없는 사람이라 부르며 가슴에 비수를 꽂은 기현이처럼 지유도 반항적인 아이지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 아이다. 누군가 바다와 같은 사랑으로 품어준다면 사랑스러운 아이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저임금 단기 노동자와 인력 부족의 세계인 돌봄 교실에서 그런 꿈같은 사람은 없다. 여러 번 말이 잘못 전달되어 애꿎은 질책 민원을 받은 선생님들은 대책으로 지유를 가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이들과 말썽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관리만 하기로 한 것이다.


“하기 싫다고 하면 그냥 두세요. 나는 더 손 안 댈 거야.”


지유는 이제 2학년인데 기초 덧셈에 상당히 약하다. 가르치려면 오래 붙잡고 원하지 않아도 시켜야 한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지유는 감당할 수 있어도 지유 어머니까지 감당할 수는 없으므로, 손 대지 않는다. 


지유가 반항적인 태도가 잦아 계속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면, 연계형 교실의 나연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 허리까지 길게 기른 머리를 늘 양갈래로 땋고, 고기 반찬을 꼭 빼고 먹는 독특한 아이다. 인사도 곧잘 하고 말도 잘 듣는다. 그래도 온라인 수업 시간에 다른 창을 켜놓을 때가 있어 내가 몇 번 뒤에서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주의를 줄 때면 오전반 선생님이 나를 불러 다시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쟤는 그냥 내버려 둬요. 신경쓰지 마.”


그러고보니 선생님들이 나연이에게는 출석 체크만 할 뿐 굳이 말을 걸지도, 크게 신경쓰지도 않는구나! 아이가 얌전해서 내버려 둔다고 하기에는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몇 달이 지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연계형 오전반 선생님도 김 선생님도 나연이 부모님의 민원에 상당히 시달린 뒤 손대지 않기로 정한 것이다. 나연이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무얼 원하는지는 알겠는데, 정작 나연이가 바라는 게 그런 손타지 않음인지는 모르겠다.


연계형 아이들 영어를 봐주는 시간이면 나연이도 내 주변을 맴돌다가 문제집을 슥 들고 온다. 


“선생님, 저도 같이 하면 안 돼요?”

“안 돼, 김 선생님이 나연이는 혼자 할 수 있다고 해서 선생님이 봐 줄 수 없어.” 


사실 나연이는 주영이, 희수, 규민이 셋으로 이뤄진 영어 수업 시간에 참여하고 싶다고 여러번 말했다. 김 선생님께서 허락하면 같이 하려 했으나 선생님은 거절했다. 


“너는 안 돼. 돌봄에서 공부 안 봐 줘. 가서 너 할 거 혼자 풀고 있어.”


연계형 교실이 공부 위주로 돌아가는 만큼 혼자 자리에 앉아 있는 나연이가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김 선생님의 방식은 많은 숙제와 스파르타식 열정으로 돌아간다. 공부 시간에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 정해진 문제까지 풀게 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돌봄 교실은 학원도 공부방도 아니니 부모님이 나연이를 그렇게 가르치기 원하지 않는다면 가르치지 않는 수밖에. 사실 돌봄 교실은 학부모들의 의사와 선생님들 편의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떻게 지낼지를 결정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다. 내가 본 바로 잦은 민원은 아이들을 더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로 만들기보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거리를 두는, 손 댈 용기가 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받을 수 있던 살뜰한 관심의 기회를 잃었다고도 생각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더 새로운 걸 배워갈 수 있는 기회라고 할까. 아이를 더 나은 상태로 이끌고자 하는 돌봄은 적절한 훈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 기회를 잃는 게 아쉽지 않다면, 그 역시 학부모의 선택이겠지. 어쨌거나 나연이는 자라날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나연이를 더 알아갈 기회가 없는 게 아쉬웠던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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