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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Sep 27. 2023

선생님은 잊어주세요


일한 지 1년 반이 다 되어가니 나름 요령이 생겼다. 목소리는 커지고 호통치는 실력도 늘었다. 아이들이 흥분하기 전에 미리 조절해야 하는 순간이 언제인지도 알았다. 여러 반을 통들어 삼사십 명의 이름은 외워서 그때그때 부를 수도 있다. 오전에는 빈 교실에서 세 시간 정도 1,2학년 아이들을 도맡아 보고, 오후에는 돌봄 1반에 가서 보조로 있다. 일찍 가는 아이들이 없는 1반은 적당히 평화롭다. 책정리나 서류 정리 등 잡무가 없을 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받아쓰기 채점과 아이들 놀아주기. 


한때 1학년 진영이와 늘 손을 잡고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하던 잘생긴 요엘이. 코로나 거리두기를 이유로 계속 떨어지라고 할 때면 진영이와 꼭 붙어서 ‘하지만 선생님, 저희는 서로 사랑하는걸요!’라는 눈빛을 보내던 요엘이는 2학년이 되더니 변했다. 진영이와는 다른 돌봄 반으로 나뉘었고 키도 컸고 한층 독립적으로 변했다. 선생님 눈을 피해 낙서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꺼내고, 집으로 갈 때 가방과 겉옷을 챙겨주는 나를 데면데면하게 쳐다본다.


“교문까지 선생님이랑 같이 나갈까?”

“아니요, 혼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2학년은 아직 내가 바래다 주어야 하는 학년인걸. 여러 번 묻는 나를 요엘이는 계속 거절했다. 책가방 끈이 꼬여 내가 풀어주려하자 요엘이가 부담스럽다는 듯이 몸을 뺀다. 


“선생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전에는 날 보면 늘 인사하고 빨대 뜯는 것도 내가 도와줘야 했는데. 선생님과 진영이와 토끼 게임을 하고 놀던 좋은 기억을 다 잊은 거니! 학년이 변했다고 이렇게 아이들이 빨리 선생님 손을 떠나고 싶어하나. 시원섭섭한 기분으로 교문으로 달리는 요엘이를 지켜보았다. 그만큼 요엘이가 잘 자라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지. 아이는 자랄수록 선생님과 어른은 멀리하고 친구들을 가까이 한다.  


1학년은 아직 선생님의 손이 타길 원한다. 서유는 내가 돌봄 1반 문만 열면 신나서 뛰어온다. 어서 놀자고 보드게임을 펼치고, 쓰레기를 비우러 가면 늘 따라온다. 다섯시 반, 가장 늦게 하교하는 서유는 내가 같이 갈까 묻지 않아도 하교할 때면 늘 내 손을 꼭 붙잡고 나간다. 


“전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날 좋아한다니 기분은 좋다만, 서유를 아끼는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굳이 나를? 나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수록 잘 크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른이야 아이를 아끼고 보살필 의무가 있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아이들이 어른을 필요로 한다 해서, 좋아하기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른과 아이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애정을 바랄수록 어른은 못나지고 아이는 힘들어진다. 아이들의 임무는 잘 먹고 잘 자라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말을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고...이런 건 전부 어른과 사회의 편의를 위해 기대되는 역할일 뿐이다. 아이들은 작고 약하고, 어린 시절의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쉬운 대상이다. 때묻지 않은 아이에게 특별한 애정을 받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어른들에게는 있는 게 아닐까. 아이는 어른에게 관심이 없고, 어른들에게 사랑받고자 노력해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랑받길 원하는 건 사실 늙고 외로운 어른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데, 서유가 상당히 나랑 노는 걸 좋아하니 그것도 의아하다. 그러나 이 역시 지나가는 애정일 뿐이지. 요엘이처럼! 이러한 애정에 일희일비하는 건 프로답지 못하다. 나는 아이들이 외로울수록 어른에게 애정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착한 아이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생활로 마음이 꽉 차서 어른에게 관심가질 빈 공간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내 삶에서 나를 돌봐줬던 여러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자라면서 어렴풋한 기억으로 돌봄교실을 떠올릴 것이다. 아, 나도 거기 다녔었지. 하는 정도로. 선생님은 얼굴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살핌은 받는 당사자에게 대가를 바랄 수 없는 일. 거름처럼 잘 스며들어 사라질수록 선생님은 맡은 일을 잘 한게 아니려나. 


다섯시 반까지 나와 둘이서 엄마를 기다리던 서유가 드디어 하교할 시간. 멀리서 서유 어머니는 양산을 쓰고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손을 꼭 잡고 교문까지 가니 서유가 내 다리를 잡고 말했다. 


“선생님, 나중에 저희 집에 와서 저랑 놀아요.”

“알았어, 그렇게 할게.”

“약속이에요! 꼭이요!”


엄마의 손을 잡고 날 뒤돌아보는 서유에게 어서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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