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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ug 24. 2023

근로장학생


오늘은 아이들 말고 노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노동을 관리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나는 돌봄교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 근로는 정해진 기관에서, 임금은 한국장학재단에서 받는 구조다. 

학기 중에는 주2-3일, 방학 중에는 주 5일 일했다. 일한 시간만큼 한국장학재단 출근부에 입력하고, 시급을 계산해 받는다. 도서관, 평생학습관, 돌봄교실 같은 기관에서는 비용 부담이 적게 인력을 받을 수 있다. 

근로장학생에게 이 일자리는 근무 강도가 높지 않아, 학기별 시간표에 맞춰 근무 일정을 짤 수 있어 좋다. 그만큼 경쟁률도 높다. 각자 학교 내의 기관에서 일하는 교내 근로생은 보통 최저시급과 비슷하고, 돌봄교실 등 교외 근로생은 최저보다 2000원 정도 높은 시급을 받는다. 


본래 근로장학생은 장학재단에 출근부의 시간을 입력하고 시급을 받는데, 3일 이내로 출퇴근 입력을 할 수 있었다. 2021년부터 방법이 바뀌었다. 장학재단 어플에 출근 시 출근 입력, 퇴근 시 퇴근 입력을 해야 하고, 3일이 아닌 당일날 하지 않으면 추후 정정서로 오류를 수정한다. 


문제는 어플을 업데이트 하면서 계속 오류가 생겼다는 점이다. 출근 시간 입력이 안되거나 와이파이 연결이 잘 안 되면 시급이 그만큼 깎인다. 출근 입력을 1분이라도 늦게 하면 그만큼 30분 시급이 깎이지만, 퇴근 시간이 늦어진다고 돈을 더 주지 않는다. 오류가 생기면 정정서를 내야하고, 그걸 위해 부장 선생님께 연락하고 서류를 쓰는 행정이 늘어난다. 어플 사용할 때 위치추척 동의를 받는데, 입력 당시 근로 기관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어플 업데이트 후에 내 피로도는 늘어났고 비효율성은 커졌다. 기분도 상했다. 감시와 의심을 받으며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근로가 끝나도 내 출근부를 관리하고 오류를 정정하는 일에 시간과 감정을 더 써야했다. 

장학재단이 이렇게나 장학생을 근로자로 간주하고 있을 줄 몰랐다. 근로장학생은 장학생이기 때문에 주휴수당, 4대 보험, 근로계약서 등이 없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휴게 시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내가 일한 돌봄교실 같은 경우는 점심 시간에도 아이들이 있었으므로 휴식 시간 없이 계속 일했다. 최저 시급보다 2000원 정도 더 받는 게 장학금인지 모르겠지만, 일은 일이다. 근로를 제공하고 그만큼 시급을 받는다. 생활비가 필요해서 일을 한다. 나는 근로장학생이 근로계약서도 4대 보험도 없는 점에 대해 늘 짜증을 냈는데, 노동자로 인정받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근로장려금, 고용보험, 주휴수당, 그 외 청년 저축성 계좌 등은 근로 임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자취하며 혼자 사는 내게는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지원이다. 

세상이 제 값을 주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다녔는데, 막상 위치추적에 동의하고, 1분 차이로 30분씩 깎이는 시급을 보니 내 일과 장학생이라는 단어 전부에 환멸이 나기 시작했다. 보장되는 것 없이 감시만 더 정교해진다면 일하고자 하는 의욕과 책임감을 방해하는 것말고 어떤 효과가 있을까? 출퇴근 당시의 위치추적만으로는 근무 시간 내 딴 일을 하거나 자리에 없는 부정수급을 막을 수도 없다. 


누가 나를 고용했는지, 얼마나 일할 지 모든게 불분명하다. 한 학기가 끝나면 다시 기관이 장학생을 선발하고, 내가 뽑힐 지 아닐 지는 매 학기 다르다. 일하는 시간, 요일, 업무는 기관과 정하지만 돈은 장학재단에서 나온다. 근로계약서를 쓰기 힘든 구조다. 멀리서 보면 장학재단은 정부의 인력 지원이 필요한 돌봄교실, 도서관 등에 간편한 인력을 제공하고, 외부기관은 인력을 비용 부담 적게 쓸 수 있다. 그 사이에서 근로장학생은 별다른 보장 없이 일하고 쉽게 바뀐다. 


돌봄 교실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바로 자야지 체력이 회복된다던 A씨도 저번에 그만두었고, 헬스장 청소와 이 일을 병행하다 몸이 안 좋아졌다던 B씨도 떠났고, 윤호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다 싸워가지고 그만둬버린 C씨도 없고 근로장학생 중에 나만 가장 오래 남았다. 시간제 선생님들도 매달 다시 써야하는 계약이 끝났는지 아쉬움없이 떠났다. 나는 왜 아직도 여기서 일하고 있나. 늘 내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일했는데, 시급은 그대로고 대신 부정 근로자가 아니라는 걸 매번 증명하는 식으로 시스템이 바뀌었다. 아이들을 다루는 내 기술과 성숙도는 늘었고, 노동량도 늘었다. 인력이 부족해서 이 교실 갔다 저 교실 갔다를 반복한다.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돌려받지 못한 마음만 해도 얼마인가. 계산한 마음이 아니었기에 그걸 돈으로 환산해서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난 그저 이 일이 내가 애써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느끼고 싶었다. 어린 아이를 보살피고, 마음을 헤아리고, 잘 자라도록 도우는 일이 중요하고 귀한 일이라는 느낌. 매일같이 선생님이 바뀌고 인력 공백 메우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안정적이고 오래 할 만한 일자리이기를 바랐다. 


누군가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길 원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일하는 동안 내게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내 눈치와 반성과 감으로 일했다. 관료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이 잘 돌보아지고 있는지 관심 가지는 사람은 없지만, 다른 일에는 관심이 많구나. 나는 이런 환멸을 감내할 만큼 이 일을 좋아했나? 봉사한다는 생각 없이는 이 일 계속 못해요. 라고 말했던 시간제 선생님도 얼마전에 더 안정적인 일자리로 떠났다. 나는 봉사를 할 만큼 아량이 넓지 못했다. 그만두어야지 라고 계속 생각하는 내 머리 너머로 운동장이 보였다. 사랑스럽게 작은 아이들이 실내화가방을 흔들며 뛰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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