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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y 23. 2023

혼자 살고 싶어요.

새학기엔 정부 지침이 바뀌었다. 한 반에 열다섯 명 이상 두지 말 것. 정원은 스무 명이 넘는데 열다섯 명 이상 한 교실에 있으면 안된다니. 이 선생님은 분주하게 행정실을 오가며 상황을 해결하려 했다. 방법은 분반하기. 연계형 교실 옆에 남는 빈 교실이 있었다. 돌봄1,2,3반에서 넘치는 아이들을 그 교실로 데려가 돌보기로 했다. 문제는 분반한 아이들을 돌볼 인력이 없다. 이 선생님은 대학생 보조 선생님(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선생님, 이 아이들은 이제 선생님이 다~맡아서, 알아서! 책임지고 보시면 돼요.”


막상 빈 교실에 1,2학년들과 뭘 해야 할 지 몰라 서 있는 내게 이 선생님이 말했다. 알아서 하라가 이번 학기 돌봄교실의 구호인가. 몇 번 언급했지만 난 책임자를 할 인력이 못 된다. 관련 학과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다. 부담감이 확 밀려왔지만 일단 난방을 켜고 책상마다 아이들을 앉혔다. 1반에서 가져온 색칠 공부 종이를 나눠주자 제각각 색연필을 들고 칠한다.

커다란 선생님 의자에 앉아 이렇게 모든 게 나한테 맡겨진 상황에 뭘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학부모와 학생이 돌봄 1반 문을 두드렸다. 

“돌봄 교실 신청을 했는데 우리 애는 어느 반으로 가면 되나요?”

이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와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눴다. 보아하니 학부모는 돌봄교실 신청을 했으나 처리 과정에서 오류나 누락이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고민하던 이 선생님이 일단 학생은 받기로 하고, 어머니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새 학생은 내 교실로 왔다. 

“이름이 뭐예요?”

“강나윤이요.”

나윤이는 오렌지색 체육복을 입은 1학년이었다. 키가 크고 활발한 아이였다. 


다음 날부터 나윤이는 선생님 책상 옆에 있는 빈 책상에 앉았다. 자리를 정해둔 건 아니지만 늦게 오다보니 그 자리를 좋아했다. 

“저번에 엄마가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음? 아니야, 혼난 건 아니고 잠깐 헷갈리는 게 있었던 거지.”

나윤이는 자기가 원래 올 수 없는 곳인데 어머니의 부탁으로 깍두기처럼 들어오게 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눈치로 들었을 때 그런 상황인 것 같긴 했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달랬다. 전 우리 애 여기 꼭 보내야 해요. 라고 말하던 나윤의 어머니도 생각이 났다. 


주말이 끝나고, 나윤이는 오렌지색 체육복을 입고 교실로 뛰어들어왔다. 오전은 책 읽고 색칠 공부하는 시간. 난 내 책상 옆에 앉아 포켓몬을 색칠하는 나윤이에게 물었다.

“주말 잘 보냈어?”

“아니요, 어제 엄마한테 맞았어요.”

이런! 여덟 살 어린 애가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어제 공부를 안 해서, 엄마가 회초리로 막 절 때렸어요. 그래서 제가 하지말라고 울면서 도망갔는데 쫓아와서 더 맞았어요.”

나윤이는 더 말하지 않고 색칠하는 손에 힘을 주었다. 많이 속상했겠구나. 내 힘없는 위로에 나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혼자 살아요?”

“혼자 살지.”

“저도 혼자 살고 싶어요.”

“그런데 혼자 있을 때 불 끄면 무서워요.”

나윤이는 포켓몬 하나를 다 끝내고 새로운 색칠 공부를 골랐다. 이번에는 커다란 드래곤이 그려진 그림이다.선생님도 어두운 건 무서워. 프린터에 뽑힌 그림을 나윤이에게 주었다.

“혼자 살고 싶은데, 아직 무서워서 혼자는 못 살겠어요.”

다리를 휘휘 저으며 나윤이는 계속 이야기했다.

“어른이 되면 나윤이도 혼자 살 수 있게 될 거야.”


어린 아이도 혼자 살고 싶겠지. 난 어릴 때 가출해서 나만의 집을 찾는 게 꿈이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하고 돌봄을 받는 상황에 있는 게 아이라고 항상 좋진 않을 거다. 아이들도 많은 걸 참으면서 어른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둠에 익숙해지고, 무서움에도 익숙해지면서 나윤이는 자랄 것이다. 그 때는 원하는 공간을 찾아 갈 수 있기를. 혼자일지 함께일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불안하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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