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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y 25. 2023

엄마가 울면

 돌봄 1,2,3반에서 분반한 아이들이 내 몫으로 넘겨지면서 나도 나름의 시간표를 만들었다. 

오전에 30분 책읽기.

이후 색칠 공부, 만들기.

놀이 시간에는 각 반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와 따로 떨어져서 각자 놀기. 

책읽기는 10시 30분 정각에 끝난다. 사실 아이들이 집중을 잘 하는 날이면 오분 정도 더 시키고 싶지만, 10시 20분쯤 되면 아이들이 하나 둘 묻는다.


“선생님, 지금 몇 분이에요?”

“10시 24분.”

“지금은 몇 분이에요?”
“10시 26분.”

내가 괜히 시간을 적게 말할거라고 믿는 아이들이 있어서 손목의 스마트 워치까지 보여준다. 1학년 아이들은 교실 시계는 아직 읽는 법을 모른다. 

“선생님, 10시 29분 되면 알려주셔야 해요.”

“알았어. 책 읽고 있어.”

10시 29분이라고 알려주면, 이제 아이들은 책을 덮고 초를 센다. 독서에 집중하면 아이들이 시간만 신경 쓴다고 한 소리 해야 하지만 (벌칙으로 십 분 더 읽어!) 사실 독서 시간의 목적은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가만히 앉혀두는 것이다. 게다가 이 교실은 오래 비어 있어서 동화책도 다 낡았고 만화책은 얼 마 있지도 않다. 좀이 쑤시면서도 마지막 일 분을 참는 아이들의 노력을 봐서 30분 정각이 되면 바로 휴식시간을 준다. 

십오분 쉬고 나면, 색칠공부 혹은 만들기 시간이다. 남자아이들은 색칠공부를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만들기를 좋아한다.

문제는 준비된 거라곤 프린터와 에이포 용지밖에 없을 때 만들기 시간은 아주 복잡해진다.

포켓몬 색칠공부가 하고 싶다고 하면 일단 구글에 들어가서 아이가 원하는 포켓몬 그림을 찾아야 한다. 

진혁이는 포켓몬을 색칠하고 싶다고 해서 한참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찾아줬는데, 막상 갑자기 자동차를 색칠하고 싶다 해서 자동차를 찾아줬다.

“아녜요, 선생님 저 그냥 흔한남매 할래요.”
후. 진혁이 뒤로 색칠공부 프린트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줄 서 있다. 흔한 남매를 찾는데 또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림을 저장해서 프린트하려니 오른쪽 클릭이 안 된다. 내 계정 블로그에 담아간 후 오른쪽 저장해서 프린트를 해 준다. 뒤에 서 있던 태용이는 카트라이더를 색칠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검색 시작이다. 


다행히 교실에 모니터가 두 개 있다. 그래서 하나는 색칠공부용 그림 찾기로 사용하고 하나는 종이접기나 만들기 동영상 틀어놓는 용으로 사용한다.

요즘 만들기는 종이에 그림을 프린트해서 인형놀이처럼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 서랍장, 방, 팝업같은 걸 만든다.

수진이나 민영이같은 아이들은 만들기를 좋아한다. 만들기는 그림이 여러개고 풀로 붙이는 게 많아서 완성하려면 유튜브 동영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모니터 하나는 텔레비전 화면 위에 띄워준다. 물론 이것도 아이들이 원하는 만들기 그림을 찾아야 한다. 오전에는 줄줄이 서서 뭘 만들건지 계속 고른다. 

“선생님, 전 화장실 만들고 싶어요.” 수진이가 말해서 화장실 만들기 프린트를 해줬다.
“선생님, 전 휴지곽 종이접기 할래요.” 민영이는 또 종이접기를 하겠단다. 

“민영아, 화장실 만들면 안 될까?” 내가 양 옆에 자기 프린트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줄줄이 달고 물어보니 민영이가 입술을 쭉 내밀며 휴지곽이 만들고 싶단다.

“그래, 그럼 텔레비전 화면에 화장실 만드는 동영상 틀어놓고 민영이는 선생님 옆에서 휴지곽 종이접기하자. 모니터에 보이는 동영상 잘 따라해야해.”
이렇게 다른 동영상이 양 모니터에서 나올 땐 둘 다 계속 멈추고 재생하고를 반복해야한다. 틈만 나면 앞으로 돌려달라고하는데, 그 와중에 색칠 다 했다며 새 프린트 뽑아달라고 진혁이가 다시 온다. 

“선생님, 못 봤어요. 앞으로 돌려주세요.”

“저 이번엔 아까 있던 포켓몬 색칠할래요.”

아까 있던 포켓몬이 뭘까. 포켓몬 수십개를 클릭해봤는데. 아무려나 놀이시간은 이런 이유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혹시나 색연필같은 걸 가지고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날까 계속 교실도 주시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11시 반이 되어갈 무렵이면 난 푹신한 선생님 의자에 목을 파묻고 쉬고 싶어진다. 그 때쯤 아이들은 색칠공부 세 장은 끝내고, 만들기도 슬슬 끝나간다.

각자 만든 걸 가지고 와 보여주면 박수를 치며 칭찬한다. 수진이가 열두번 정도 동영상을 다시 보여달라 하더니 멋진보라색 공주님 화장실을 만들었다.

“내일은 거실 만들래요.”
“그래, 선생님이 미리 그림 저장해 놓을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수진이는 내일 또 다른 만들기 그림을 찾아 오래 고민할 것이다. 매일 그런다. 

민영이도 분홍색 종이접기로 휴지곽을 만들었다. 뚜껑과 상자가 있어서 작고 귀엽다. 

“선생님, 이거 집에 가져갈 거예요.”
휴지를 세 장정도 뜯어서 민영이에게 주니 상자 안에 넣고 휴지를 뽑았다.

“엄마가 울면 제가 이걸로 엄마 눈물 닦아 줄 거예요.”

민영이 어머님은 베트남에서 왔고, 민영이가 하교할 때면 자전거를 타고 마중나오신다. 그럴 때 민영이는 엄마 뒤에 올라타서 내게 손을 흔든다.

“저번에 엄마가 막 울어서, 저도 보고 있는 데 그냥 눈물이 났어요.”

민영이는 휴지 끝으로 눈을 문지르는 시늉을 한다. 

“다음에 엄마가 울면, 이걸로 닦아줄 거예요.”

민영이는 분홍색 작은 상자를 구겨지기 않도록 살살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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