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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Sep 04. 2023

내가 자랄 때.


초등 돌봄교실이 생겨난 건 2004년부터다. 올해로 19년차로 접어든다. 그 사이 태어나는 아이들 수는 더 줄었고,양육과 돌봄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내게 돌봄 노동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건, 돌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과 중 하나일 것이다.

19년 사이 초등학교의 시설도 꽤 좋아졌지만, 분위기는 비슷하다. 계단을 올라갈 때 들리는 발소리, 텅 빈 교실의 적막함, 소란스러운 교실에서도 누구는 친구와 떠들고 누구는 혼자 만화책을 읽는 풍경. 학교는 사라지지 않는 학교만의 분위기가 있다.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아직 동심을 간직한 건물이다. 일하다 보면 가끔 내가 자라서 떠난 곳을 다시 돌아왔다는 기분에 묘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이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렇게 시간은 흐른 거구나! 


고학년들이 모여 있는 연계형 교실에서 일할 때 나는 마음을 좀 더 다잡아야 한다. 열 살을 지나면 아이들은 말도 잘 통하고 인생의 고뇌와 외로움을 서서히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무 바닥으로 되어 내 열 살 시절과 별 다르지 않은 책걸상을 갖고 있는 이 연계형 교실에 앉아 있을 때면 학생으로 학교에 다시 온 기분이 든다. 내가 어릴 때 돌봄교실을 다녔으면 어땠을까? 공공 돌봄센터나 이런 곳을 다니면서 자랐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내가 98년생이니 초등학교 입학 즈음 돌봄교실이 만들어졌을 테지만, 나는 공적 돌봄을 받으며 크지 않았다. 부모님 둘 다 맞벌이였고, 여러 이유로 같이 지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저학년 때는 외가, 친가 조부모님이 나를 돌봐주었고 고학년 즈음부터는 네 살 위의 언니랑 둘이 살았다. 외롭고 음울한 시절이었으나 어른의 감시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던 때이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놀다가 동네를 좀 배회하고, 운 좋게 친구를 만나면 놀았다. 공원에서 혼자 계속 흙을 파다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혼이 나고, 밤늦게까지 뒷산을 쏘다니고 탄천 강변을 바라보며 언젠가 크면 이 구질구질한 삶을 떠나고 말리라 다짐한 기억도 있다. 놀이터는 많았고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놀다가 싸웠다가, 때렸다가, 맞았다가, 그 아이들 엄마한테 혼도 나고, 나중에 살아가며 필요할 마음의 굳은 살을 잘 기르며 보냈다. 세상이 내게 친절하지 않을 때를 견디는 맷집이 생겼다고나 할까. 내가 혼자라는 쓸쓸하고 자유로운 느낌에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내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익숙했고, 내 나이가 몇 살이건 미성숙하다거나 누군가 옆에서 챙겨주어야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굳이 시키지 않는 나이롱 선생님이 된 거겠지. 그 때는 학교에 보안관이 없었고 운동장은 늘 열려 있었고 놀이터는 공공 장소였다. 


나와 고학년 아이들의 나이차는 열두어살 정도. 별로 많은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도 많이 변했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 선생님이 지도하고, 교문을 나서는 걸 확인하고, 운동장을 줄이고 체육관이 만들어졌다. 운동장은 이제 공공장소가 아니다. 보안관 선생님이 드나드는 사람을 확인한다. 이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새 친구를 만나기보다는 실내 공간에서 더 자주 만날 것이다. 돌봄을 받는 동안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통제 아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활동을 하고, 뛰어다니지 말고, 큰 소리를 내며 격하게 노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몇 시간 지나 지루해하거나 갑자기 큰 목소리를 내고 내 눈치를 보는 아이들을 보면, 그리고 습, 소리를 내며 자제하는 나를 보며 가끔 이게 맞을까 의문이 든다. 

아이들을 한 공간에 사고 없이 모아두는 것, 안전을 위해 아이들의 행동을 계속 통제하는 게 돌봄이 할 수 있는 최선일까? 학부모와 선생님이 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은 돌봄 교실이 어떤 모습이기를 원할까. 보호하면서도 자유롭게. 한 반 당 수용 인원이 적고, 돌봄 전문 인력이 많아진다면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돌봄교실이 앉아 있는 활동, 영상 컨텐츠 관람 위주인건 그게 한 명이 스물 댓명의 아이들을 그나마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 유년기는 지났고 그게 더 좋았던 시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정보가 많아진만큼 불안이 커진 세상에서 아이들은 나와 또 다른 방식으로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지만, 그건 받아본 적 없는 걸 줘야 하는 것처럼 물음표투성이다. 통제 아닌 돌봄, 자유롭되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거리, 이런 게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은 어디 있을까. 내가 어린이였을 때 원했던 건 사랑과 독립이었다. 둘 다 딱히 성인이 된다고 얻지는 못했다. 얻은 건 다른 거였다. 더 위로 올라간 시선, 다른 위치, 뜻밖의 책임. 뒤죽박죽 어린 존재들을 향한 느슨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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