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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Jul 09. 2023

인사하고 싶은 마음


오전에는 분반한 아이들을 담당하고, 오후에는 돌봄 1반으로 돌아가서 보조 선생님으로 일한다. 오후 시간에는 하교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열다섯 명 미만으로 각 반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 1반에 가면 아이들이 받아쓰기를 하고 있거나 각자 놀이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1학년 민규를 만나니 왼쪽 다리에 파란 깁스를 하고 있다. 민규는 나이에 비해 키도 크고 씩씩해서 잠시 눈을 떼면 책상 위에 올라가 있거나 소파 위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민규 너만 아니면 여긴 조용해. 네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선생님은 힘들어.”

이 선생님이 민규에게 이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민규는 위풍당당하게 교실을 활보한다.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라는 느낌의 자신감이다. 그러다 보니 민규가 옆 책상 아이의 풀을 밀어 떨어뜨리거나, 자주 다툰다. 그런 민규를 내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보니 민규는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나빠.”

내가 열 번 정도 민규 이름을 부르며 말렸더니, 민규는 눈을 세모로 뜨고 나를 노려본다. 

“선생님은 맨날 내가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하고. 진짜 싫어.”

그래, 누가 너를 말리겠니. 난 민규의 당당함에 두 손 들었다.


하교할 때 민규는 깁스 밑 모양에 맞춰진 신발을 신어야 한다. 깁스 바닥에 있는 모양대로 맞춰 끼워야 하는 건데 모양이 구불거리는 곡선이라 어떻게 해도 자꾸 비뚤어진다.

“저 혼자 잘 할 수 있어요.”

민규가 말해서 내버려두었더니 한참 못 끼우고 있어서 내가 대신 끼워준다. 어머니는 이미 교문 밖에 와 계시다 하고 민규는 빨리 나가야하는데 이 신발이 도통 맞질 않는다.

“선생님, 좀 빨리 해봐요! 아, 나 빨리 가야하는데.”

“민규야, 네가 발을 좀 더 들어야지.”

민규를 앉히고 겨우 깁스용 신발을 신긴 뒤 얼른 복도를 걸어간다. 민규는 투덜거리면서 당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걷는다. 복도를 걸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늘 민규네 할머니댁 이야기. 할머니는 닭 키우는데요, 닭이 엄청 커요, 달걀도 엄청 크고…


운동장 계단까지 같이 오면 교문이 보이기 때문에 여기서 민규 손을 놓고 보내준다. 민규가 가는 걸 보려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민규는 한 손을 살짝 들고 어깨에 딱 붙이더니 가만히 있는다. 

“안 가고 뭐해? 어서 가야지.”

바쁘다고 날 재촉할 땐 언제고 안 가고 있는 민규가 이상해서 내가 물었다. 

민규는 손을 툭 내리더니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저기서도 나 봐 줬으면 해서...그래서 여기서 내가 먼저 인사하고 있던 건데.”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에 난 당황했다. 민규는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더니 이내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 마음도 모르고 재촉해서 미안해. 라고 말할 틈은 없었고 사과한다 해도 민규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사고 치고, 뛰어다니고, 다투고, 천하에 자기만 있는 것처럼 당당해 보이는 아이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그 속의 마음은 늘 내 예상보다 더 섬세하고 여리다. 엄마가 멀리서도 점처럼 작은 나를 발견하고, 나만 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 민규의 엄마는 민규의 이 두근거리는 사랑을 알고 있을까. 사람은 언제부터 저 섬세함을 잃고 급하고 무심한 어른이 되는 걸까. 어쩐지 반성하는 기분이 된 나도 터덜터덜 돌봄교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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