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의 시작.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고 새로운 아이들이 왔다. 한국장학재단의 근로 시작일이 개학일보다 조금 늦었기에 난 이주 정도 짧은 방학을 얻었다. 방학이 끝나고 처음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너무 작아서 새삼 놀랐다. 머리가 아주 동그랗고 목이나 손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은행잎만한 아이들 손을 너무 세게 잡는 게 아닐까 싶어 교문까지 바래다줄 땐 손에 땀이 났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부쩍 포동포동하고 길쭉해진 동현이와 시현이를 생각하면 이 아이들도 연말쯤에는 부쩍 자라있을 것이다.
강 선생님이 떠난 돌봄 1반에는 이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머리가 길고 키가 큰 분이다. 이 선생님은 많은 서류와 복잡한 행정, 돌봄 3반과 연계형 교실까지 함께 있는 이 학교의 돌봄교실에 당황한 상태다.
“나 진짜 이 일 못 맡을 것 같아. 미치겠어.”
일하면서 미치겠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건 강 선생님만의 특징이 아니었구나. 돌봄 1반을 맡게 되면 누구라도 저 말이 나오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매뉴얼은 없고 높은 책임과 민원을 담당해야 하니 그럴만도 하다. 책임을 맡지 않을수록 좋은 곳에서 가장 높은 책임을 맡고 있으니. 아무려나 난 하던대로 보조 선생님 일을 했다. 새로운 서른 댓 명의 1학년 이름을 외워야 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는 게 내가 잘 하는 일이다.
돌봄 1반 선생님만 새로오신 게 아니라 부장 선생님도 새로 오셨고, 그 분도 당황하고 계신다. 한국장학재단의 근로장학생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부장 선생님은 돌봄교실의 인력 체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리가 아프다. 근로생만 해도 안전교육이수서, 동의서, 출근부, 시간 배분 등 온갖 행정이 뒤따라온다. 이미 1 학년의 담임인데다 선생님이 처음 부임한 학교의 돌봄교실 행정까지 맡게 되다니 남몰래 연민의 마음을 보냈다. 그러고보니 지난 부장 선생님도 젊은 분이셨지. 짬이 찬 교사라면 절대 맡기 싫어하는 게 돌봄교실 행정일 거라 짐작해본다. 나와 두 명의 장학생을 앉혀두고 부장 선생님은 물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는 게 있나요? 전 지금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머리가 아파요.”
우리라고 아는 게 있나요. 난 이미 돌봄교실에 일 년 반째 근무 중이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할 줄 아는게 많아보이면 몸이 피곤한 법이다. 근로장학생이나 오전 시간제 돌봄교사, 자원봉사 인력들이 돌봄교실의 대체 인력이지만 이들을 고용(나 포함 이들 중 제대로 된 근로계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하는 건 일을 줄이기보다 더 늘리는 일이다. 처리해야 할 서류 작업이 엄청 늘어난다. 근로장학생 같은 경우는 한국장학재단의 기준과 행정을 병행해야 해서 더 복잡하다. 그래서 굳이 근로생 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느끼듯이 돌봄교실은 온갖 서류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오년 쯤 뒤면 그 서류를 파기하느라 또 파쇄기를 엄청나게 돌려야 할 것이다.
아무려나, 변화는 근로생들에게도 있었다. 한국장학재단이 출근부를 대폭 개편한 것이다. 출근부는 장학재단 어플에 근로생이 그날 일단 시간을 입력하는 것으로, 여기 일한 시간을 기준으로 월급이 나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기존에는 당일 입력해야하지만 최대 3일 지나기 전까지 근무시간을 입력하는 게 원칙이었다. 이번에 장학재단은 어플에 위치 추척 시스템을 도입했다. 부정 근로를 막기 위해서다. 이제 출근부를 입력하려면 위치 추척 시스템을 켜고 출근 시간에 출근 장소에서 입력해야 한다.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스운 건 늦게 출근이 입력되면 그대로 시급에 반영되지만 늦게 퇴근하는 건 반영이 안 된다. 퇴근은 출근부 설정에 입력한 대로만 인정한다. 할 말이 많지만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아무려나, 자신의 사정은 정말 자기밖에 모른다. 내가 장학재단에 정내미가 떨어질 때 돌봄1반의 이 선생님도 부장 선생님도 자기가 속한 구조에 욕지기가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새학기가 지나간 오후의 돌봄교실. 행정부장 선생님이 근로장학생들과 부장 선생님을 행정실로 불렀다.
“그동안 이 일이 구분이 안 돼서,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이제 돌봄교실은 돌봄전담사가 다!, 부장 선생님은 학급 일만 딱! 각자 확실하게 자기 일만 하는 걸로 합시다.”
새 학기 행정실의 목표는 확실한 업무 구분이었다. 적절한 매뉴얼 없이 업무를 각자 해결하라는 말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자기가 알아서 눈치껏 해결하란 말과 다름없게 들린 건 내 착각일까?
행정부장 선생님은 주먹을 쥐고 굳건하게 말했다.
“절대 서로에게 피해주지 맙시다!”
이것이 새학기 돌봄교실의 마음 가짐. 올해는 내가 알던 돌봄교실과는 다르게 돌아갈 거란 예감이 들었다. 사실 선을 확실하게 긋고 원칙대로 가는 건 사실 돌봄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일이다. 돌보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황이 있고 돌봄노동자는 그 맥락과 성격에 따라 그때그때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원칙이 있다면 그 순간 아이에게 필요한 일을 하자는 게 그마나 비슷할 것이다. 고학년이 일찍 와서 들어갈 반이 없으면 2,3반이 열려있는 데도 추운 복도에 세워둘 건가? 점심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이 있으면 그 아이는 그 시간동안 가만히 굶게 둘 건가? 내가 맡은 반 아이가 아니라면 우산 없는 채로 집에 가게 내버려 둘 수 있는가? 적은 예산과 부족한 지원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서로에게 피해주지 말고 아이들을 돌보라는 건 사실 불가능한 얘기다.
근로자들끼리 서로 일정 부분을 양보하고 품앗이하지 않는 이상 돌봄교실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어른의 사정보다 아이들이 더 중요할 때 이야기다. 각자 자기 선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가 돌봄보다 중요하다면 그런 식으로도 돌봄교실은 굴러갈 수 있다. 단지 아이들이 소외되고 돌봄의 질이 더 낮아질 뿐이다. 그러면 아이들을 위해서 돌봄 선생님들은 서로 추가 노동을 감내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각자의 일은 각자에게 맡기면서 확실한 구분을 두고 일해야 하나…선생님들이 일선에서 스스로의 윤리와 싸우는 동안 근로자에게 어떤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지시하지 않아도 돼서 좋은 곳은 따로 있다. 이 모든 시스템을 만들고 잘 운영하는 건 결국 교육부의 책임이다. 연계형 교실까지 생각하면 지자체의 책임도 있다. 그 먼 곳까지 생각하다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책임을 묻고 있단 느낌이 든다.
절대 서로에게 피해주지 말고 일하기. 그건 어떻게 하는 걸까. 일단 뭐가 피해고, 피해가 아닌지조차 모르겠지만 난 다른 장학생을 따라 반쯤 주먹을 들어보였다. 언제나처럼 눈치껏 일하란 뜻이겠지. 아이들이 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