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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ug 21. 2023

아주 조용하고 아주 활발한


사람이 다 그렇듯 아이들도 외향적인 아이와 내향적인 아이가 있다. 외향적인 아이들이 목소리도 크고 활발해 존재감이 더 크다. 나는 내심 내성적인 아이들을 더 좋아한다. 동질감이 느껴진달까. 내성적인 아이들은 목소리가 작아서 대답을 들으려면 가까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난 잠시 기다렸다 대답을 듣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보통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는 걸로 의사표현을 하지만 말이다. 책을 읽거나 색칠공부를 하거나. 뛰어다니지도 않고 말없이 종이접기도 잘한다. 조용한 아이들은 순한 아이들인가. 나는 이 아이들이 순해서 좋아하는 것 뿐일까.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마구 뛰어다니면 난 골치아프다며 눈살을 찌푸리게 되려나. 일을 쉽게쉽게 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의 개성이 사라지길 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용하다고 다 비슷한 건 아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말 없는 아이들도 다 개성이 있다. 양파껍질이나, 빛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구슬같다고 해야 하나. 

돌봄 1반의 놀이 시간. 아이들은 보드 게임을 하거나 블록을 갖고 논다. 규칙은 장난감으로 놀고, 뛰어다니면 안되고, 서로 싸우면 안되고, 큰 소리로 놀아도 안 된다. 2학년 혜수는 준호와 놀고 있다. 말 한 마디 없다. 혜수는 원래 말이 없어서 지금까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행동 말고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준호와 혜수는 수화처럼 손짓을 주고 받더니 조용하고 부산스럽게 교실에서 잡기 놀이를 했다. 하도 소리가 안 나서 한동안은 둘이 노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혜수는 계속 교실 안을 신속하게 반쯤 뛰어다니고 있다. 지금 보니 혜수는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타입이었구나! 혜수의 눈은 반짝거리고 얼굴은 웃고 있다. 아주 조용하고 아주 활발한 아이었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특성이었나.


집에 갈 시간, 나는 혜수의 손을 잡고 교문까지 바래다 줄 준비를 했다. 내가 신발을 신는 사이 혜수는 몸을 들썩이더니 금세 내 손을 놓고 복도를 팔짝팔짝 뛰어갔다. 

“선생님이랑 같이 가야지!”

혜수는 뒤를 쫓아가면서 내가 외쳤다. 혜수는 그대로 복도에서 운동장까지 달렸다. 뛰어가는 뒷모습이 강아지같았다. 강아지가 사람이 된다면 말을 많이 할 거라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 혜수를 보며 들었다. 기분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꼭 말로 할 필요는 없지. 혜수는 말을 하고 싶은데 부끄러워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라기보다, 그저 소리내어 말을 하는 일에 큰 미련이 없어보이는 아이였다.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말 없이 에너지가 넘치는 혜수가 있다면, 민주는 말도 없고 가만히 있는다. 민주는 1학년이고, 역시 말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아침에 인사할 때가 아니면 고갯짓도 아주 미미한 정도라 나는 민주가 매우 내성적인 성격일 거라 짐작했다. 교실에서는 맨 끝자리에 앉고, 독서 시간에 책을 가져와야 할 때도 가져오지 않고 말 없이 앉아 있다. 세 번 정도 말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전담사 선생님도 굳이 책을 가져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독서 시간은 교실이 조용해야 하는 시간인데 민주는 그 부분에서 아주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십 분 동안의 독서 시간에 책을 안 가져오면 민주는 무얼 할까? 나는 민주를 속내를 궁금해하며 지켜보다 민주가 가만히 앉아 있기를 정말 잘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민주는 연필으로 장난치지도 않고, 발을 흔들지도 않고, 옆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삼십 분동안 가만히 앉아서 시선은 책상 위의 양 손에 고정한 채 가끔 손가락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무척 지루하다. 특히 갓 여덟 살이 된 아이들은 더 그렇다. 내향 외향을 떠나 아이들은 그 시간이 지루해서 책을 읽거나, 만들기를 하거나(내향), 다른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속닥거린다(외향). 민주를 지켜보는 내가 심심해서 조용히 말을 걸면 민주는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피하거나 손가락으로 더 고개를 수그린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에 저렇게 몰입할 수 있다니. 민주는 지루해보이지도 않았고, 진지했다. 오히려 내가 말을 걸면 열심히 진행 중이던 손가락 공상이 방해받은 것처럼 보였다. 독서 시간이 아니어도 민주는 대부분의 활동(미술 수업이나 만들기 수업)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민주의 만들기는 다 내가 만들었다. 수업 시간 동안 민주는 부산스러운 교실 구석에 앉아 침착하고 고독하게 빈 책상 들여다보기에 심취했다. 이건 이거대로 신기한 특징이네. 순수한 시간 흐름 즐기기라고 해야 할까. 민주는 어린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내 이론을 벗어나고 있었다. 민주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지루하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늘 바쁘게 뭘 하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탓에 인생이 피곤한 나는 민주의 기술이 부러웠다. 


“선생님, 민주 알아요?”

민주는 돌봄 2반이고, 미술 수업이 끝난 뒤 돌봄 1반에 가니 민영이가 내게 물었다.

“민주 알지. 조용하지.”

“제 친구에요. 다문화 센터에서 맨날 얘기해요. 우리 집에도 놀러오고 저번에 민주네 집 가서 놀았어요.”

아니, 민주가 친구가 있다고? 두 달이 되도록 민주가 아무하고도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내게 민주는 선택적 함구증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그저 고독한 영혼의 여덟 살짜리 공상가처럼 보였다. 민영이는 활달하고 말도 잘 하니, 민영이가 말하고 민주는 들어주는 역할일까? 처음 듣는 소리에 대체 민영이는 민주랑 어떻게 노는 걸까 궁금해하며 민영이와 할리갈리를 했다. 


오후가 지나 아이들이 하나 둘 하교하는 시간, 나는 업무 일지를 가지고 행정실을 오갔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뒤에서 누가 빽 하고 크게 외치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빠가 데리러 오신대!! 나랑 집에서 놀고 가자!!!!”

깜짝 놀라 뒤를 보니 민영이와 민주가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민영이 목소리는 아닌데, 그럼 방금 저 우렁찬 목소리가 민주 입에서 나왔단 말인가. 민주가 말하는 것도 처음 봤고 웃는 것도 처음 봤다.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민주는 고독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아 보였다. 친구랑 있어서 마냥 좋은 여덟 살처럼 보였다.


괜한 걱정을 했구나. 어쩐지 멋쩍은 기분이 되어서 돌봄1반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늘 예상을 벗어난다. 타인이 내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한데, 왜 아이들이 그럴 때면 항상 놀랍고 새로운지. 나는 내적 이론을 하나 더 추가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어른)과 있을 때보다 친구와 있을 때 더 신나고 활기차다는. 어릴 때는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선생님 소리를 듣는 지금 받아들이려니 서운한지. 말도 잘 듣고 가만히 있고 선생님들을 좋아해주기까지 바라다니.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나이든 자로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다. 나는 그저 민주와 혜수가 고독한 몽상가이자 아주 조용하고 활발한 저 에너지를 잘 간직해주기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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