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가기

by 김나은



더위가 한층 잠잠해진 이후로 나는 B씨를 데리고 자주 밖에 나갔다. 허리 디스크 통증으로 일할 때가 아니면 거의 누워있는 나에겐 B씨와 있을 때가 가장 많이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외출을 하려면 공들여 기반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B씨는 지난 몇 년 거의 한 발자국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준비하다보면 외출이란 보기보다 준비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일단 적절한 신발이 있어야 한다. 신발장에 B씨의 것은 낡은 빨간색 신발 하나뿐이었다. 길게 구부러진 발톱을 넣고 신기에는 크기가 작아 슬리퍼처럼 뒤축을 구긴 채 신은 지 몇 년은 되어 보였다. 골목은 전부 가파른 내리막길이고, B씨의 보행이 쉽지 않다는 생각하면 좋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별 수가 없었다. B씨 혼자서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는 걸(안 나간걸까, 못 나간걸까?) 생각하면 남동생에게 새 신을 사달라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신발을 찾아서 현관에 놓아두면 이젠 적절한 옷이 있어야 한다. 계절 별로 적절한 옷을 찾는 건 항상 어려웠다. B씨에게는 상의, 하의, 원피스 등 무수히 많은 옷이 있었지만 외투는 거의 없었다. 가을 즈음으로 해서 나갔기 때문에 갈수록 다양한 두께의 겉옷이 필요했는데 가진 외투는 얇은 가디건, 덜 얇은 가디건 두 개 뿐이라 가끔은 그 두 개를 다 입고 나가기도 했다. 남동생이나 아들의 외투가 있었지만, B씨가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입지 않았다. 외투의 빈약함을 가리기 위해 나는 옷더미 속을 뒤져서 뜯지 않은 장갑, 모자, 목도리 등을 찾아냈다. 기온에 맞춰 되는대로 입다 보면 패션 센스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B씨나 나나 아프지만 않다면 어떻게 입고 있든 신경쓰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끔 내가 덜 춥게 느껴지는 날이면 내 겉옷을 B씨에게 입히고 나가기도 했다.


사실 B씨를 데리고 나가기란 늘 쉽지 않아서 그가 찬바람 부는 날 반팔로 나간다 고집했어도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일단 오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열한 시에는 B씨가 일어나야 했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치우고, 준비하고 나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난다. 나가서 천천히 걷고 돌아오는 코스는 어림 잡아도 한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리막 골목길을 가서 오르막 골목길을 올라오는 시간이다. B씨나 나나 걷는 게 시원찮아 그렇다.

의복과 신발과 본인의 의지가 있어도 날씨가 안 좋으면 나갈 수 없다. 그러니, B씨와의 외출이란, 내가 늘 시도하지만, 이런 네 박자가 다 맞춰진 순간에만 일어나는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네 박자의 행운을 얻어 B씨와 내가 반지하 문 밖에 나왔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 빌라 대문 앞에 도착하면 정해야 한다. 이제 어디를 갈까?

문제는 딱히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몸이 아프고 돈이 없는 상태에서 밖에 나와 있다보면 정말 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실내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쇼핑을 안 하겠다는 생각이면 구경할 곳도 사실 없다. B씨는 사고 싶은 게 생기면 무작정 옷 속에 넣고 오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나는 돈이 없을 때는 가게에 들어가지 않았다.

실내가 없다면 차라리 의자라도 많았으면 좋겠다! 특히나 B씨의 집 주변같은 가파른 언덕길에 의자는 노약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물론 주변에 의자는 거의 없다. 길은 자동차나 두 다리가 건강한 사람만 다니는 곳으로 보인다. 나는 B씨 말고도 골목에 살고 있을 많은 노약자들이 아직도 어떻게 이 언덕길을 오가며 사는지 모르겠다.


B씨의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와 이리저리 배회하던 나는 우리를 받아줄 곳으로 주민센터를 발견했다. 앉아 있을 수 있고, 돈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 공공 시설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지만, 할 일 없이 대기 창구에 있는 것도 무료하긴 마찬가지다. 다행히 주민센터 이 층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B씨를 데리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안 쪽에 아이와 함께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거기 앉아 B씨와 그림책을 읽었다.

세 권 정도 소리내어 읽고 나면 이십 분 정도 지난다. 그러면 일어나서 다시 천천히 오르막을 걸어간다.


환대와 거부의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남동생에게 B씨의 이발 비용 겸 용돈을 받은 날, 날씨도 주민센터 아래까지 내려가보았다. 골목에는 철물점과 식당과 카페가 있다. 작은 카페 창문에 수박주스를 판다는 포스터를 보고 처음으로 B씨와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다리도 아프고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내 돈으로 결제하고, B씨는 이발하고 남은 돈을 냈다. 주스가 4500원이라 쓰여서 들어갔는데 마시고 가는 건 500원 추가되어 5000원이었다.

카페는 작은 테이블이 세 개뿐이어서 창가 앞자리에 앉았다. B씨는 순식간에 수박주스를 들이켰는데 중간에 기침을 해서 주스를 흘렸다. 휴지를 가져가려고 하니 너무 많이 가져가지 말라고 해서 세 장만 가지고 왔다.

내 남은 주스까지 B씨에게 주고 자리를 닦고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다 다시 나왔다.


시간을 보니 카페에 십 분밖에 있지 않았다.


왜 그렇게 빨리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분위기의 탓이었으리라. 문을 열고 들어갈 때부터 우리를 보았으나 인사도 하지 않는 느낌. 마시고 가는 건 500원 추가되는데 마시고 갈 것이냐고 묻는 어투에서부터, 휴지를 너무 많이 가져가지 말라거나, 앉아 있는 우리 옆에서 큰 몸짓으로 정리를 하는 카페 주인의 태도에서 우리가 어서 빨리 나가 주었으면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내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카페 주인이 정말로 B씨와 나를 마뜩잖아 한 걸까?

괜히 마음만 불편해진 나는 B씨의 귀한 5000원을 써버렸다는 아쉬움만 남았다.


B씨는 그런 미묘한 분위기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들어가자고 하면 좋아하고, 가자고 해도 잘 따라 나온다.

나는 혼자 다닐 때는 별 생각이 없지만, B씨와 걸을 때는 사람들의 친절에 더 민감해진다. B씨는 여러모로 취약한 사람이고, 언제 도움이 필요할 지 모르는데 사람들이 친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밖에 나올 용기가 줄어든다. 주민센터의 작은 도서관을 자주 찾은 건 도서관의 직원이 늘 B씨에게 밝게 인사해주었기 때문이다. 소리내어 책을 읽거나 한참 앉아 있어도 뭐라 하지 않았다. B씨의 존재는 반기되 무얼 하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 제일 편하다.


늘 그런 환대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카페가 우리에게 불친절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사실 돈을 낸만큼 수박주스를 마셨으니 거래는 잘 이루어졌는데 말이다. 나는 어떤 경험을 기대한 걸까? 내가 편하게 카페에 가듯 B씨랑 카페에 앉아서 밖에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편안함을 원한 게 아닐까? 내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B씨와 갈 만한 곳 리스트에서 카페 이름을 지웠다. 사실 이 리스트에 있는 건 공원과 주민센터와 발달장애인 복지관밖에 없다.


“이제 저긴 가지 말아요.”

“응.”


B씨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올라오는데 누가 나를 불러 명함을 건네 주었다. ‘ㅇㅇ재가요양보호센터’


“할머니랑 한번 오셔서 상담 받아보고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들 B씨를 일흔 살 정도로 보지만 사실 그의 나이는 만 60세다. 요양보호제도는 만65세 이상 노인부터 해당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보호를 받으려면 5년이나 남았다. B씨는 내 할머니가 아니고 나도 손녀가 아니지만 이런 시선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손을 잡고 다니면 누구나 가족으로 생각하는걸까? 나는 가끔 B씨가 정말로 내 가족이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만65세부터는 매일 3시간씩 주어지는 재가요양보호사를 쓸 수 있지만, 사실 B씨의 남동생은 5년 후에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기초수급자 가구원인 B씨인 5년 있으면 무료로 국가가 지원하는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다.


“누나가 빨리 요양원 갔으면 좋겠어요. 매일 밤마다 냉장고 열고 음식 먹고, 계속 티비 틀어서 시끄럽게 하고, 잠도 안 자고. 힘들어 죽겠어요. 5년만 기다리면 돼요, 이제.”


집으로 돌아와 재가요양보호센터 명함을 남동생에게 보여주니 그가 말했다. 낮 시간에 대부분 자는 만큼 밤에B씨는 계속 움직이나 보다. 이불을 덮고 앉아 있는 B씨는 이런 대화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B씨는 요양원에 가도 잘 지내긴 할 것이다. 밥도 제때 나오고 침대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하지만 요양원은 결국 시설이고, 편하게 갇혀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텐데 B씨가 정말 그걸 원할까? 이 방 안에서 다른 방 안으로, 옮겨지기만 하면 B씨의 삶은 다 정리되는 것일까? 세상은 계절따라 변하고 새들도 날아가고 자동차도 지나가는데. 온갖 사람들이 있고,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는 이 시간의 변화를 하나하나 느끼면서 살아가는게 B씨에게는 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건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요소이기도 하고, 그래서 B씨에게도 필요할 것이라고 나 혼자 짐작하는 부분이다. 사람은 집 안에만 있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라는.


“그래도 오늘 나가서 좋았죠?”

“네~”

“내일도 밖에 나갈까요?”

“그래.”


B씨가 내 가족이었다면, 나는 아마 그를 잊고 내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가끔 가족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친적의 이름처럼만 알고 있었을지도. 그냥 놓아두면 잊혀지기 너무 쉬운 사람들이 있다. 남동생의 야속한 말에도 크게 마음쓰지 않는 건 그가 B씨를 책임지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의 시간 동안 B씨가 조금 더 밖에 자주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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