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활동지원 일을 그만두었다. 허리 디스크 통증이 심해져 걸을 수가 없었다. 누구나 살다보면 허리는 한번씩 아프다. 하지만 그게 심한 디스크 질환으로 발전하고 수술을 요하는 고질병으로 발전하면 굉장히 힘든 질병이 된다. 다리를 저리고 아프게 만드는 방사통이 내 왼쪽 다리를 잡아먹었고 일상이 망가졌다. 내 다리의 반은 쥐가 난 것 같았고, 반은 걸을 때마다 전기 충격을 받는 듯 했다. 나는 심하게 절뚝거리며 걸었고 집에서는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하지만 출퇴근을 함께하는 A씨의 활동지원 일을 하다보면 못해도 10000보에서 12000보를 걸어야 했다. 나중에는 A씨가 고관절 통증으로 잠시 앉아 쉬어갈수 있는 게 감사할 만큼 나는 병들어 있었다. 몇 번의 무급 병가를 쓴 뒤 나는 A씨의 활동지원 일을 못하겠다고 센터에게 말했다.
A씨의 활동지원 시간 90시간, B씨의 활동지원 시간 60시간, 총 150시간의 일을 하던 나는 월 60시간으로 근무 시간이 줄어들었다. B씨는 내 집과 가까웠고 오래 걷는 등의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입이 전부 끊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월 60여만 원밖에 못 받더라도 지금 내 상황에서는 감지덕지한 돈이었다. 매달 나가야 하는 월세가 50만원, 당장 움직임도 여의치 않는 내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고, 이 부족한 수입을 조금이라도 유지해 나가야 했다.
센터의 코디네이터는 내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리고 양해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은씨, 알아두셔야 할 것은, 월 60시간을 일하게 될 경우 퇴직금은 나오지 않아요. 사대보험은 유지됩니다. 하지만 퇴직금은 못 받게 된다고 미리 알려드려요. 너무 아쉽네요. 어서 나을 수 있기를 바라요.”
나는 이미 하고있는 일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자책을 느끼고 있어서 일단 감사하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노동법 상으로 월 60시간 일하는 노동자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센터는 내게 월 65시간 이상을 일해야지 퇴직금이 인정된다고 한 걸까? 내가 월 60시간 일하는 건, B씨가 받은 활동지원 급여 시간, 즉 활동지원사가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월 60시간으로 국가가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B씨가 받은, 활동지원의 최저 등급인 13등급의 기준 활동지원 시간이었다. B씨의 인지적, 생활 능력을 보았을 때 상당히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의를 제기할 마음은 없었다. 행정의 복잡함을 몇 번이나 넘어 온 사례관리사와 B씨 가족에게 더한 부담을 가져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월 60시간이 최저 활동지원 시간인 것에는, 활동지원사의 노동권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다 시피 월 60시간은 퇴직금과 사대보험 등 노동 안정성의 최소 조건을 얻을 수 있는 기준이다(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최소 활동지원 시간이 50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면, 누가 굳이 이 적은 돈을 받고 일을 하려고 생각하겠는가? 퇴직금도 나오지 않고,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는데 말이다. 차라리 더 많은 시간을 받고 퇴직금과 더 많은 급여를 보장받는 편이 났다. 나는 최저 활동지원 시간이 월 60시간인 이유에는 분명 이런 노동법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월 60시간만 허용되는, B씨의 활동지원 일만 하려니 센터 측에서는 퇴직금이 보전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러면 뭔가 이상했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노동청에 전화까지 해 보아도 주 15시간 이상, 결국 월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퇴직금을 받는 게 맞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센터에 찾아가 물어보았다. 내가 알기로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저는 받을 수 없다고 말하시나요?
이런 일이 계속되면 알게 된다. 내가 느끼는 부당함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내가 이런 종류의 일에 이길 일은 거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을이었고 그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제가 알기로 요양보호사 업계에서는 이런 60시간 이상 퇴직금이 인정되는 걸로 아는데요. 담당자님께 물어볼게요. 라고 말하며 처음 보는 말단 직원이 내게 말했다.
내게 전화로 퇴직금 불납입에 대해 설명했던 담당자가 내 앞에 앉아 어린 아이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선생님, 생각해봐요. 일 년이 몇 달인가요?”
“12달이요.”
“그러면 우리는 한 달에 몇 주를 일하나요?”
“보통 4주를 일하겠죠.”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그런 대답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한 달에 몇 주를 일하나요?”
“보통 4주를 일하겠죠!”
“아녜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아니에요.”
나는 화가 잔뜩 났다. 그 내용보다는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대하듯 말하는 담당자의 말투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공휴일도 있고, 일 년 동안 근로 시간이 늘 주 5일인 건 아니죠. 공휴일도 있고, 어쩌다 이용자 측 요청으로 쉴 수도 있고요. 그러면 한달 60간이 기준이더라도, 늘 주 15시간을 일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안정적으로 퇴직금을 받으려면 월 65시간을 일해야지만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러니 60시간만 일하는 사람한테는 퇴직금을 적립할 의무가 없어요.”
“하지만 월 60시간은 국가에서 정해놓은 기준이잖아요.”
“맞아요. 법적으로는 그렇게 정해두었어요. 하지만 이건 그냥, 법적인 사각지대인 거죠.”
“사각지대를 잘 이용하시는군요.”
내 말에 담당자는 웃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가 바보인 게 맞았다. 그는 법을 어기지 않았고, 내가 아픈 것은 내 책임이었으므로 불이익 역시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나는 근로기준법이 내게 더 유리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탓에 수치심과 짜증을 느끼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일을 더 하면 퇴직금은 다시 적립될 거예요. 잘 치료받고 더 일할 수 있게 되면 제가 새로운 이용자를 알아봐 드릴게요.”
센터와 활동지원사의 관계가 잘 유지되는 방법은, 활동지원사가 최대한 센터에게 연락하지 않고 맡은 일을 잘하며 센터 직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혹은 체념의 마음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무엇을 요구하건 활동지원사 한 명의 요구에 맞추기에 센터는 이미 너무 많은 활동지원사를 파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센터는 서류 처리와 출근만 잘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전부 활동지원사의 재량으로 남겨둔다. 활동지원사가 받는 바우처 단가에서 25%를 중개 기관인 센터가 운영비로 가져가기 때문에 활동지원사가 더 일할수록 운영비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센터가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욕하기도 쉽겠다만 적은 돈으로 근근히 운영하는 건 센터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정부가 지급하는 바우처 단가가 낮게 책정되어 있는데 그걸 파견인력과 파견기관 두 곳이 나눠 가지니 넉넉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대처할 필요가 없는 민원은 최대한 미뤄가면서 운영을 이어가는 것일테지. 우리 모두 열약한 저임금의 업계에서 분투하고 있으니, 서로 응원하며 잘 해봅시다. 라는 식의 따뜻한 마음을 내가 나의 담당자에게 가진다면 서로 힘이 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위인이 아니었다. 내가 별 말 없이 센터를 나온 건 담당자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내게 반박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을 받을 때 마지막에 들었던 강의가 떠올랐다.
“여러분, 센터가 싫어하는 직원이 되셔야 합니다. 센터가 좋아하는 직원이 되지 마세요. 감사하다고 음료수 사 드리고, 양해 봐드리고 이러지 마세요. 물을 것 다 따져 묻고, 싫은 얘기도 하고 민원도 넣고 해야지만 노동자로서 여러분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거예요.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친절합니다. 그렇다고 센터가 여러분 편인 건 아니에요. ”
이제 나는 그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따져 물으면서 센터가 싫어하는 직원도 되었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대로 했는데 정작 내 권리를 지킨 건 없다는 점이다. 나는 그냥 불편하고 언짢은 직원이 되었고 성과는 없었다. 강사도 말해주지 않은 사실은, 애초에 내가 노동자로서 지킬 수 있는 권리는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