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은 Oct 25. 2024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텔레비전에서 <사랑과 전쟁>이나 <가요무대>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면, B씨는 주로 이불 위에 앉아 성경책을 읽는다. 볼펜을 들고 밑줄을 치며 열심히 읽는다. 아니면 책장에 꽂힌 낡은 소설책을 읽기도 한다. 빠른 속도로 볼펜이 움직이는 걸 보면 과연 읽는 걸까 보는 걸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몸짓이 상당히 지적이다. 독서를 즐기는 B씨는 멋있다.


온갖 물건으로 가득찬 붙박이장을 정리하니 오래된 B씨 가족의 물건들이 나왔다. 앨범 몇 권을 찾아 보여주니 B씨가 무척 좋아했다. 어머니와 남동생, 아들까지 가족 사진이 전부 담겨있다. 이제 성경을 읽지 않을 때면 B씨는 앨범을 펼쳐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누구에요?”

“남편.”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B씨가 멍하니 나를 쳐다봐서 여러 번 다시 물어봤다. 

“이모. 소개!”

“남편 분은 좋았어요?”

“아니.”


흠, B씨는 대부분 질문에 단답으로 말해준다. 어떤 건 대충 익숙한 대로 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건 정말 내 질문을 알아듣고 진심으로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는 육감으로 나와 B씨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B씨와 남편 사이야 내가 알 수 없으나 두 분이서 아들도 낳고 오래 지냈으니 B씨에게 중요한 인물일 것이다. 어쨌거나 남편 분은 돌아가셨고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계속 물으면 내 세속적인 관심사 충족을 위해 B씨를 이용하는 것 같아 찝찝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항상 들었다. 

어디서 살았나요? 어릴 때는 무엇을 했고, 무얼 좋아했고, 뭐가 하고 싶고, 꿈은 뭐였고…듣고 싶은 이야기가 한 둘이 아니었다. B씨가 성경책을 좋아하듯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B씨가 나보다 얼추 세 배는 더 살았으니 이야기가 많아도 한참 많을텐데 듣지 못하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B씨는 독서만큼이나 검은 수첩에 볼펜으로 이것저것 쓰는 걸 좋아했다. 나는 B씨와 필담을 시도했다. 내가 질문을 적고 물어보면 B씨가 답을 적었다. 말로 질문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B씨는 살던 집 주소와 다니던 학교 이름까지 줄줄 잘 적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 : 생선

제일 좋아하는 사람 : 아들 ㅇㅇㅇ

친구: 박순정

박순정이라는 이름은 여러 번 썼다.

“순정 씨는 누구예요? 뭐하고 놀았어요?”

내 질문에 B씨는 웃으며 순정이라는 이름만 계속 불렀다.

“순정아~~~~!!!!!”

엄청나게 좋아했나보군. 순정씨는 B씨가 이렇게 애타게 그리워 하는 걸 알려나. 글은 단순한 명사의 나열이었지만 다 조합해 보면 B씨가 어떤 사람인지 조각보처럼 맞춰볼 수 있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자기소개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B씨의 남동생은 공공 근로가 끝나면 집에 와 방 안에 앉은 B씨와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날 쓴 B씨의 수첩과 앨범을 보여주며 무얼 했는지 말해주기도 했다. 


“B씨가 옛날에 전남 OO면에서 살았대요.”

“에, 옛날에 광주 살다가 이사 갔어요.”

“그랬구나.”

“그때 총 막 쏴가지고 사람 죽여서. 무서웠어요.”

“광주 살 때요?”

“에, 옆집 아줌마가 나가면 안 된다고 잡아당겨서, 담벼락에 숨고. 헬기 날아다니고 총 쏘고.

계속 꽈광 소리 나고. 엄청 무서웠어요.“

“1980년에 광주에 계셨군요!”

“에, 그래서 다 같이 OO면으로 갔어요”


B씨한테 광주가 기억나냐고 물으니 고개만 젓고 대답하지 않는다. 심심찮게 책을 읽으면서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를 다룬 글도 많이 보았고, 영화도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B씨 가족과 같은 사람들도 그 격랑 속에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뭉뚱그려진 시민의 이미지 속에 B씨와 같은 발달 장애인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80년 광주에 없었고, 여러 방면으로 재현된 이미지들이 이 기억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 때 재현되는 시민과 민중은 대다수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없었을리 없는 데 말이다. 그 사람들은 어디 있었을까? 어떤 경로를 따라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까? 당장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이주민부터 장애인, 빈곤 등 계급, 연령을 넘나드는 여러 약자들이 모여사는데 옛날에나 지금이나 하나의 군중은 있을 수 없었겠구나!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건 결국 이렇게 한 가지 지배적인 이야기에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한다는 걸 B씨의 이불 위에 앉아 깨닫는다. 

장애를 다룬 이야기에도 뻔한 서사가 있기 때문에, 나는 B씨의 인생사를 생각하려는 내 회로를 멈추느라 애써야 했다. 발달장애 여성이 겪는 취약함과 차별, 착취에 대해 너무나 많이 들은 이야기, 시사 고발 프로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내 상상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B씨에게 여러 소외와 힘듦이 있었음은 어렵잖게 알 수 있었지만, 내가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차피 말해주지 않은 것을 내가 지레짐작해봤자 무례한 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B씨 옆에 앉아 같이 앨범을 보다보면 장애인을 다룬 지배적인 서사들도 어쩌면 한 쪽만 강조해서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앨범 속에 B씨의 사진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도 가고, 아들과 함께 웃고, 교복도 입고, 그냥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모습이다. 이 역시 좋은 장면만 편집한 것일 수 있지만 그러라고 있는 게 앨범 아닌가. 누구나 살면서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이 온다. 


B씨의 과거와 별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와 상관없이 B씨에게 궁금한 건 항상 있었다. 어제 저녁에 무얼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꿈은 꿨는지. 내가 마음에 드는지…


“우리 글을 써 보는 건 어때요. B씨 살아온 이야기를 쓰는 거죠. 제가 도와줄게요.”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은 양치와 머리감기로 한 바탕 눈치싸움을 한 뒤, 지쳐 누워 내가 B씨에게 말했다. 싸움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 둘이서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시간이 온다. 보드게임이나 공기 놀이 같은 것. 

B씨는 수첩에 뭔가를 쓰다가 나를 흘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럴 때는 B씨가 내가 왜 이러는지 전부 알고 있지만 그냥 모른 척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정욕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중생아…이런 눈빛이다.

사실 생활에 있어서 글쓰기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내가 계속 조르는 건, 그냥 B씨의 삶에 무언가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스스로의 인생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기록하려는 행위다. 그게 명사로 가득찬 수첩이건 나처럼 브런치에 구구절절 털어놓건 그 자체로 고유한 기억을 담고 있다. 

그래서 B씨가 글을 썼으면 좋겠어.

나는 B씨에게 당신의 인생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 

하지만 내가 차차 알게 된 건, 이들이 그들 삶의 중요성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는 일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할까. B씨는 늘 현재를 산다. 이 역시 멋진 점이다.

어떤 건 그냥 흘려보내도 괜찮을 지 몰라. 인간이 늘 현재를 살 수 있다면 글이 뭐가 중요하랴…라는 생각까지 도달할 때 쯤에 나는 모든 언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B씨와 실뜨기를 하며 놀았다. 그게 훨씬 즐거웠다.


그래도 나는 가끔 B씨가 혼자 지난 기억 속 인물들을 하나씩 수첩에 써 보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맥락은 오직 B씨만이 알고 있을 터였다.

이전 08화 여행할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