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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Oct 25. 2024

여행할 결심

A씨가 퇴근한 후 같이 집에 도착해서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했다. A씨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린다. 노래를 듣거나 단순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나랑 같이 하는데, 보드게임은 기술적으로 잘 져야 한다. 너무 티나게 져도, 이겨도 언짢아 한다. 

오늘은 앨범을 한 가득 꺼내서 내게 보여줬다. 여동생이 하나, 남동생이 하나. A씨가 첫째다. 어쩐지 첫째의 쿨한 분위기가 난다 싶었다.

앨범에는 주로 동생들 사진이 많다. A씨는 아주 가끔 나온다. 다음은 A씨의 특수학교 졸업 앨범이다.  


“교장 선생님. 좋았어. 다 같이 살았어. 친구도 있고.”


졸업 앨범의 A씨는 지금 나잇대과 비슷해 보인다. 학교는 산골에 있는 기숙사 학교. 문구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다고 적혀 있다. A씨는 여기서 몇 년을 지냈을까?

“나는 2급 받았어. 옛날에.”

A씨가 내게 말한다. 2급이라는 건 장애등급제가 있었을 시절, 발달장애 2급을 받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장애등급제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장애인의 삶을 제약했기 때문에 2019년도부터 폐지됐다. 이제 장애는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나뉜다. 

A씨가 과거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는 걸 알고 나자, A씨와 B씨의 활동지원 시간이 왜 차이가 나는지 알 것 같았다. A씨의 활동지원 이용 시간은 월 90시간이다. B씨의 이용 시간은 최저인 월 60시간이다. B씨의 상태를 본다면 이용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언어 의사소통이 어렵고, 여러 질병이 있으며, 보행이 어렵다. 신체 위생과 생활 공간 전반 관리도 어렵다. 반면 A씨는 보행의 어려움이 크지만 의사 소통과 신체 위생, 생활 공간 관리에 어려움은 크지 않다. A씨의 이용 시간이 월 90시간이라면, 더 큰 어려움이 있는 B씨는 더 많은 활동 지원 시간을 받아 생활의 질을 개선해야 하는게 아닐까? 활동지원시간을 결정하는 공단 직원은 정말 B씨의 상태와 모습을 확인하고 이용 시간을 결정한 걸까? 나는 결국 이들이 과거에 받은 장애 등급이 활동지원 시간의 결정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코디네이터가 내게 A씨와 B씨의 정보를 알려줄 때에 2급,3급이라는 급수를 먼저 말해줬던 게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이름처럼, 학력처럼, 장애등급제는 아직도 장애인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로서 제도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선생님 보고 싶으세요?”

A씨가 담임 선생님 사진을 계속 아쉬운 듯 보고 있어서 내가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멀어. 버스타고 두 시간 가야해. 그래서 이제 못 봐.”

버스로 두 시간이면 자가용으로 하루 정도 다녀 올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주소는 경기도였다.

“그럼 다음에 같이 보러 가요. 다리가 좀 나아지면.”

“그래.”


A씨는 앨범을 좀 더 들여다보다 흥미를 잃은 듯이 돌아 누웠다. 늘어놓은 앨범을 정리하면서 내가 언젠가 A씨를 태우고 그가 졸업한 학교를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A씨가 운전을 할 수 있었다면, 한번쯤은 혼자라도 찾아가보지 않았을까. 나는 운전면허도 있고, 그가 원한다면 충분히 해 줄수도 있지 않을까? 자동차 당일 여행은 쉬운 일이니까. 아니, 그건 어떤 사람들에게 쉬운 일일 뿐이다.

자동차 여행 생각은 이내 접었다. 이 계획에는 A씨의 건강상태와 A씨의 보호자인 어머니의 허락이 있어야 했고, 내 자동차 운전 실력도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활동지원사가 이용인을 위해 운전을 할 경우, 센터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근로계약서의 그 조항을 보고 절대 운전은 안 하겠다고 생각했었다(물론 운전 지원을 원하는/요구하는 이용인은 많다). 그래서 나와 A씨의 삶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무른 마음은 상상에 그쳤다. 내가 많은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겠다고 다짐하면 A씨와 같이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쉽게 그런 마음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바람은 계속 아쉬움으로만 남아있는 것이다. 이런 생활상에 치여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발을 빼는 동안, A씨는 언젠가 앨범 속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갈 수 있을까?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고 해서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갈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그와 내가 익숙하지 않은 장소로 가본다는 상상이 왜 벌써부터 큰 산을 여러게 넘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는지. 그래서 지난 십여 년 간 A씨의 생활 반경은 조금씩 줄어든 것일지도. 세상이 훌륭한 대중교통과 푹신한 평지로 가득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집 안에 누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까? 나만 무료한 것일 수 있다. A씨는 이제 아프고 피곤하다.


“A씨, 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천사소녀 네티 볼래.”


뭉친 고관절을 두드리며 A씨가 말했다. 그건 노트북을 켜고 OTT 사이트에 내 아이디만 입력하면 되는 일이라 매우 쉬웠다. 벌써 1화를 열 번째 보고 있었지만 A씨는 그 익숙함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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