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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동쓰 Mar 12. 2023

갑과 을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스스로 파악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내가 하는 행동을 객관화하여 바라본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인간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인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잊지 않고 살고자 한다. 

 

 바로 그런 인간. 지금도 심심치 않게 뉴스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다양한 갑질의 이야기.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볼 때면 망설임 없이 비판을 넘어 비난의 자세로 넘어가곤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재판관이 되고, 그 순간만큼은 완전무결한 성인이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다소 무섭기도 하다. 

 

 은행 창구에서 일을 한 지도 어느덧 7년이 넘었다. 반복적인 업무의 과정 속에 나를 숨기는 기술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렇게 감정은 문드러져 갔고 이제 더 이상 쓰라릴 것 없는 수준에 다다랐을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 속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철저한 을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마치 컴퓨터가 이진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듯 세상사도 갑과 을로 모든 설명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갑질 사건에서 저마다 재판관이 되었던 그 사람들이 나에게 오는 사람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 가끔은 소름 돋는 일이기도 하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한 치라도 우위를 점하는 위치에 갔을 때 인간은 그 우위를 잃지 않기 위해 확실하게 활용한다. 이것이 지난 7년의 결론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모든 게 갑과 을의 노골적인 관계가 노출된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노출이 되지는 않았을 뿐 적어도 이 기울어진 관계가 만드는 시스템은 변하지는 않는다. 그 관계 속에서 일련의 모든 과정이 만들어진 게 현대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비단 내가 하고 있는 일 뿐만이 아니다. “계약”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이상 항상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 당장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 커피숍에 들어가도 그 순간 구매자는 갑의 위치로 가고 판매자는 을의 위치로 가게 된다. 다만 올바른 인성이라는 최소한의 양심이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당신이 집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 TV를 보며 갑질에 끌끌 혀를 찼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갑의 위치를 누리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인간은 현대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 이게 인류가 생존하기에 어쩌면 가장 적합한 시스템인 것이고 그 결과 인류는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남은 것이다.

 

 다만 그렇게 감정 노동자들은 죽어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들 역시 죽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견뎌야 한다. 그것이 을이 갖는 무게감이고, 이 무게감을 견뎌내야 을이 더 많은 순간 갑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은 공평한 것일까. 갑이라고 하여 항상 갑인 것은 아니며, 을이라고 하여 항상 을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직장에서 퇴근하는 순간부터는 갑의 생활이 열리는 순간이다. 비록 감정 노동자로서 갑과 을의 사태에 분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때 뿐인 것이다. 


  오늘도 퇴근 후 TV를 켜고 내가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시청한다. 이기는 날만큼은 세계 4대 성인을 넘어서는 인자한 성인 그 자체가 되지만 지는 날은 그야말로 이성을 잃어간다. 그렇게 선수며 감독이며 할 것 없이 그들을 향한 ‘폭풍 갑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을 찾아 커뮤니티를 돌아다닌다. 그렇게 나는 집단 갑질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나는 사악한 갑질형 인간이 되고 이는 반복된다. 

 

 그렇게 분풀이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오늘도 배려 넘치고 을의 위치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착하디 착한 완전무결의 인간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스스로를 향한 위안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이 되며 객관화된 사람이라고 자위하지만 결국 또 반복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역시 반성하는 척할 뿐 또다시 기회를 틈타 갑질을 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고 약육강식 시대를 거치며 생존법을 터득한 인간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나 역시 생존의 결과물일 뿐인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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