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소나무같은 삶

by 형준

변화는 왜 두려울까?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거나, 현재에 안주하는 내가 싫다거나,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거나, 모종의 이유로 변화가 불가피함에도, 왜 변화는 수용의 대상이기보다 거부의 대상일까?


삶에는 관성이 있다. 좋든 싫든 지금 굴러가고 있는 이 삶이 그저 그대로 굴러갔으면 하는 마음. 또 그것에서 비롯되는 관성. 또 관성에서 기인되는 또 다른 관성. 관성은 관성을 만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던가. 하루하루가 무사히 반복되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일종의 체념의 감정과 태도. 그런 어제와 오늘이 내일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극적인 바람. 그것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일매일은 바뀐다. 그것이 고즈넉한 미풍, 혹은 거대한 쓰나미와 같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매일매일은 변한다. 물론 우리도 바뀐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던가, 환경이 바뀌면 자연스레 사람의 성격이나 마음가짐, 태도 따위 또한 반드시 변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변화의 씨앗이 어디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변화를 통한 성장은 오롯이 내면의 탐구로부터 진전된다. 외부 세계의 변화에 따른 변화는 그저 급류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소나무처럼 세상을 살아가려면 내면에서부터 비롯되는 자아의 탐구는 필연적이다. 속도의 문제지, 세상은 언제나 급류였다. 그것에 휘둘리거나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수십 억 인구 중 살아있는 나를 느끼려면, 반드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살아야한다. 나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가치와 지위에 얽매여 사람이 아닌 기계로 다시 태어나고 만다.


자본주의 사회는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또 그것을 충족해야만 거두어주지만, 나는 나에게 조건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주체로써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다. 그런 나에게 사랑을 주고 보듬어주려면, 매일 급류와 같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면의 변화를 위한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꿋꿋히 서야 한다. 두 발로 서서 어깨를 피고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관성의 삶 속에서 새로운 삶를 시도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작지만 거대한 자아의 도약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관성을 만들자. 좋은 것은 습득하되 나쁜 것은 비워내자. 작지만 매일 변화하는 자는 격랑의 파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05 |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