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뒤의 작은 숲길이든 청계천을 따라 옛 서울 둘레를 한 바퀴 돌든, 일단 발걸음이 닿으니 걷고 보는 느낌이었달까.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인 것도, 그리 세지 않은 햇볕에 바람 쐬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생존에는 버거운 한국의 사계절을 가장 운치 있게 체험하는 방법 또한 마냥 걸어보기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말라 부스러지는 낙엽 위에 소복이 덮인 눈을 밟고 있자면, 일 년의 흐름이 이런 것이구나 싶은 거지.
그러다 보니 취직 후의 시기에 되려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업무시간으로 정의되는 하루에서 한두 시간씩 마냥 걸을 수는 없다 보니, 눈 깜빡하니 겨울이 지나고 눈 깜빡하니 한 여름이 되어버리는 것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학생 때야 등하교하며 걷기도 하고 체육시간도 있었지만, 이젠 그럴 여유가 어딨어. 직장인은 어디 일과 중에 정규 산책시간 안 넣어주나? 업무 효율이느니 뭐느니 하면서 말야.
점심때 자칫 루트를 잘못 잡았다가 괜히 시간 넘기지 싶고. 짧은 길일 줄 알고 나섰다가 오후 내내 지치고 졸릴지 또 누가 알아. 점심시간의 짧은 모험은 감당 안 되는 날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날은 대개 쓸데없이 걸었다고 후회하기 마련이다. 유사한 예로 야식을 먹은 다음날 아침 이라던지. 밤늦게 까지 영화 보다가 아침에 아슬하게 일어난다던지 등등이 있겠다.
그래서, 이 정도면 기분 전환으로 걸어볼 만했노라, 기록을 남겨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더 늦기 전에 말이야. 지금이야 좀 빨리 걷던가 뛴다던가, 하면서 시간 맞출 순 있잖아.
점심시간 중 먹고 난 뒤 여유시간은 대략 40분. 이 밥 먹고 난 뒤의 비는 모호한 시간.
가는데 17분, 오는데 17분. 오차 2분에 오후 일정 준비 4분.
17분 안으로 쪼개 낸 엄선된 산책 루트라면 마음의 한쪽, 발바닥 한쪽 끝의 허전함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도심 곳곳과 마음 닿는 공원,
점심 또는 저녁, 혹은 야근까지 고려한 다채로운 시점,
사는 곳 근처부터 사무실이 밀집한 공간까지.
짧게 걷던 기억들을 오려 담아 기록을 시작해본다.
마냥 시간이 아니라, 신발도 기록을 남겨야 되려나. 그건 고민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