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남산까지, 둘러보는 길
왜 도시 한복판에 이토록 비효율적으로 공간이 설계되었나 궁금할 때가 있다.
비싼 땅이지 않을까, 더 높은 건물이며 부가가치가 높은 건물을 올리고 싶진 않았을까. 이는 서울로 2017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보다 선명해진다. 어딘가 부족한데 싶은, 시선의 한쪽만 가득 채운 빌딩의 무게감. 강남대로, 서초대로의 좌우를 그득 채운 안정감과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의문이면 더 걸어 나서는 이유로는 충분하다.
왜 저기가 비었냐가 아니라, 저 높은 빌딩들과 시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길래, 이곳에 저지대가 형성되었나 하는 호기심. 자연스레 서울로의 끝단에서 성곽길을 따라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여기가 서울에서 어떤 곳이었나 작은 영감을 받게 된다.
그런고로 이번 길은 살짝 올라가 본다, 서울역에서.
서울역에서 힐튼 호텔 방향으로 올라와, 남산의 옛 성곽과 마주하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서울 곳곳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다. '이 방향이면 몇 미터 앞에 무어가 있습니다' 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위로 가는 길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묘하게 걸음이 안 이어지는 경사와 더불어, 가림막이 되어주는 나무도 적은 이 길을 따라가기에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다만 이정표는 이 방향으로 따라가세요,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 저 표지판에서 드러나지 않는 정반대 길을 택해보면 작은 모험을 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그리곤 만나지 못했을 법한 다른 것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남산공원 이름이 써진 공원 입구라던지, 요새 가장 아끼는 성벽 옆길이라던지.
물론 다시 길을 죽 가다 보면, 지도까지 그려진 새로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덕분에 휴대폰에 의존해 길을 찾지 않고서도 조용히 걸음에만 집중할 수 있다. 서울은 참 친절한 동네야.
마냥 저렇게 올라가다 보면, 독일 퓌센의 옛 성곽을 따라 걷는 느낌이 든다. 돌로 쌓인 성벽은 어느 나라 가도 특유의 무게감이 있나 보다.
풀내음 맡으며 주욱 걷다 보면 남산 둘레길 진입로를 마주하게 된다. 잠깐 눈이 닿던 것은 되려 그 옆의 속도를 줄이시오. 점심시간에 이곳까지 걸으러 오는 사람은 어떤 의미로든 속도를 줄여가고 있던 사람 아닐까. 차량뿐만 아니라 사람도 잠시 느슨히 쉬고 가라는 게 아닌가 괜한 훈훈함이 감돈다.
남산 둘레길로 진입하면 쉼터며 꽃에 장승이며 소형 폭포 등 마음 비우기 좋다만, 시간은 마음 한편에 두고 있어야 한다. 힐튼 호텔 부근서 둘레길 진입로까지 딱 16분 40여 초. 느긋히 숨 돌리며 걷기는 여기까지고 다시 내려가야 할 시점이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 반대편으로 건너 내려오면, 서울 전경이 사뭇 다르게 보인다. 내려가는 길의 서울역 부근은 되려 굳건하고 땅에 잘 다져진 느낌이다. 서울로에서 볼 때와 남산에서 내려다볼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래서 파죽지세라는 말이 나온 걸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그 기세가 맹렬하다며 산 위에 진을 친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 남산 둘레길에 제갈량을 모신 사당도 있더라. 한국에 왠 이게 있었나 싶었는데 말이야.
개인적으로는 여름 중 비 내린 직후 가장 걷기 좋은 곳이었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여름 내음 나는 곳. 물론 반차 내고 더 걷고 싶어 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17분으로 끊어 걷기엔 아쉬움이 살짝 남는 경로. 다음 주말을 기약해본다.